NOTICE  |  말많은마리 070808
2007-1 나임윤경 성평등리더십의이해와실천

어쩌다보니 나 군대 다녀왔네?


0620916 조지은

예리한 친구 해멍의 말. "내가 처음에 알던 너는 좀 더 책에서 보던 말들, 한자어들의 조합을 많이 썼어. 그리고 뭔가 분노에 차 있었어. 딱히 공격적이거나 그랬던 것은 아닌데, 발끈하는 거 있잖아."

나는 정말 화가 나 있었다. 글 읽기와 삶 읽기가 너무나 달랐으니까.

때는 작년 8월 말, 고등학교 방송반의 20기인 내가 졸업하고 나서 22기 아이들의 방송제를 보러 간만에 고등학교에 갔을 때였다. 방송제는 보지 못 했다. 소위 ‘대학 물’ 좀 먹고 나서 나는 이제 더 이상 예전의 20기 조지은이 아니었다. 이미 나는 변해 있었다. 더 이상 선배들의 호령 한 마디에 쫄지도 않고, 방송제 때의 단합을 위해서 일 년 동안 매일 아침 7시 15분까지 와야 한다는 것이 절대적으로 지켜야 할 일이라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아무도 듣지 않는 라디오 방송에 자기들끼리 심취하여 힘들게 80년대 억양을 그대로 답습하던 일들. 내가 변했다는 것을 확실히 모르고 있었는데, 내가 좋아하는 가족 같은 사람들을 보러 학교에 갔다가 그만 알아버렸다. 결국은 그 자리에 앉아있기가 힘들어서 밤에 나와버렸고, (별 이유도 없지만 방송제 전날에는 항상 관례처럼 학교에서 밤을 새워야 한다.) 친구에게 전화해서 그 많은 시간을 함께 했던 사람들과 있는 게 너무 괴롭고 이렇게 괴로워해야 하는 내 자신을 보는 것도 더 괴롭다,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 모르겠다고 울먹였다. “내 친구 같은 경우에는 ㅇㅇ예술대학 동아리에 있는데, 거기가 좀 심하다고 소문이 났거든. 그래서 한 몇 년 정도는 손을 못 쓰고 떠나 있다가 다시 돌아가서 선후배 앉혀놓고 말을 하게 했대. 그러니까 조금 나아졌다고는 하는데, 그 전까지 어떻게 할 수 있을까? 나도 회의적이야. 그래서 내가 동아리 안 하잖아.”

고등학교 1학년 내 하루 생활. 일단 방송반에 들어가게 되면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에 가서 무조건 아이들과 친해지고 사진을 찍어와야 하고, 담임 선생님과 싸울 준비가 되어있어야 한다. "그러나 연애는 안 돼." 우리는 동아리가 아니라 학교 ‘기관’이기 때문에 다른 아이들과 다르다. 아침 7시 15분까지는 방송반에 집합해있어야 하고, 한 명이라도 늦으면 절대 방송실에 들어갈 수 없다. 선배들은 아침에 서둘러오다가 계단에서 발목을 삐끗하여 붕대를 감고도 달렸다는 이야기를 자랑스럽게 한다. 방송실로 올라가는 램프길에서 선배보다 뒤에 있어서도 안 되고, 선배를 보면 무조건 달려야 하며 같은 기 동료가 있으면 끌고 올라와야 한다. 멀리 보이는 선배가 있으면 달려가서 먼저 인사를 한다. 인사는 허리를 최대한 숙여서 90도가 아니라 ‘폴더’를 만들어야 한다. 선배들은 뿌듯해한다. 우리가 인사를 하지 않고 가면 선배의 친구든, 아니면 선배든 모두 사실은 ‘다 보고 있기 때문에 금방 꼬리가 잡힌다.’ 복도에 서있다가 방송실에 들어가면 선배들이 아침 방송을 준비하는 동안 계속 한 쪽에서 두 줄로 서 있는다. 남자 한 줄, 여자 한 줄. 방송하는 것을 배운다는 명목 하에 두 학기 내내 그런 생활을 하는데, 일상적인 것을 얼마나 철저하게 지키느냐에 따라서 군기가 어느 정도 잡혔는지 전체적인 우리의 평가가 난다. 우리보다 4기나 5기 위 정도까지는 정말 때렸다고 하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으니 우리는 정말 좋아진 세상에서 사는 것이다. 행사가 있을 경우에 학원 갈 생각은 애초에 접는다. 그 거대한 입시조차 선배들 앞에서는 무용지물. 한 학년 높은 선배도 학원에 안 간다는데 어찌 감히 우리가? 방송하는 날에는 아침부터 점심까지 계속 굶어야 한다. 안 그러면 마이크에 침 소리가 잡히거든. 입안을 아주 그냥 바짝 말려 놓아야지.

고등학교 2학년 때는 내가 가해자가 된다. ‘너희 왜 인사 안 해? 안 하는 것 보면 다 아는데.’ ‘우리가 그러라고 하기 전까지는 언니 오빠라고 하지 말고 선배님이라고 불러.’ ‘우리가 왜 이러는지 알겠어? 잘 생각해봐.’ 생각하긴 뭘 생각해, 나도 모르는데. 그 밖에도 많은 말들을 했겠지? 지금까지 나열했던 것들을 다 내가 했다고 보면 된다. 후배들에게 이제 말을 놓고 반말 해도 된다고 하는데, 그렇다고 내가 저랬던 것들이 모두 사라지는 것은 아니지 않나? 도대체 왜 그랬지? 왜 그랬어? 그 모든 것의 이유는 ‘우리도 지금까지 그렇게 했어.’ 죄송합니다. 한 편으로는 가해자가 되어 후배들을 압박하면서, 한 편으로는 여전히 선배들 앞에서 ‘여자 국장’이 아니라 ‘부국장’이라고 소개를 해야 말이 되는 친구의 처지에 가슴 아프다. 기수가 높아져도 절대로 넘을 수 없는 선이 있다. 대대로 국장은 남자였고 그들만의 네트워크가 공고하다. 활발하고 선배들과 교류를 잘 하는 남자 아이가 처음부터 ‘국장’이라는 타이틀을 잠정적으로 갖게 된다. 그래도 대학 가면 선배들과 말 트고 친하게 지내며 이 때만큼 좋은 관계가 없다고 한다는 말을 위안 삼는다. 그러나 졸업하고 가보면 남자애들 열심히 뛰어다니는 동안 도시락 챙기고 응원하는 것밖에 할 일이 없다. 왜 그렇게 여자선배들이 학교에 오지 않았는지 그 입장이 되니 알겠다. 놀이 문화에서조차 우리가 할 일들이 다 친절하게 정해져 있는 걸.

여자애들이 소외된다는 것을 느끼고 나서 우리보다 나중 기수 아이들은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여자 엔지니어를 뽑았다. 그런데 나중에 보니 그 아이가 할 줄 아는 것이 없었다. 배우지 못 한 것이다. 왜? 기술 교육을 할 때에는 당연하게도 그 아이만 소외되었기 때문에. 방송반을 담당하는 선생님은 "쓸 데 없이 여자아이들은 많이 뽑아서"라는 말을 하시던 분이었다. 따귀를 양 손으로 마구 갈겨주고 싶었다. 그런데 작년에 방송제에 갔을 때, 동료 중 한 명이 말하기를 "여자애들이 왜 기계실에 가 있어?" 이 자식도 따귀를 마구 갈겨주고 싶었다. 그럼 안 되냐, 그럼 안 되냐고. 이 자식아 그럼 안 되냐고. 후배애들까지 우리가 하던 것처럼 핀 조명 옆에서 부채질이나 하고 걸레질하는 것에 만족해야 하냐. 음식하고 음료수 사서 기계실에 나르는 것만 해야 되냐. 아무리 '씩씩한' 남성적인 여자가 되어도 '너 앰프도 옮길 수 있겠다.' 정도 소리 밖에는 못 듣는다.

군사주의 논문을 읽는 내내 마음 한쪽이 따가웠다. 그 때는 다 말이 되었던 것이, 지금 생각해보면 하나도 아귀가 맞지 않는다. 생각해보니 맞는데, 왜 그 생각을 그 때는 못 했지? 우리는 ‘학교 기관이라 다른 동아리 애들과 다른 방송반’이기 때문에 이미 그 앞에서는 판단중지.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고된 일들을 참고 견뎠던 것에 대한 일종의 자부심 같은 것이 있어서, 만일 내가 말도 안 되는 일에 그렇게 지극정성으로 임했다고 생각하면 그 모든 것을 부정하게 되어 힘들다. 방송반은 자생적인 조직 그 자체가 되어서 군기 잡을 때는 방송제를 들먹이지만 나머지는 대부분 선후배 간의 견고한 애정을 담보로 한다. 테크놀로지가 좋아져서 더 이상 그 많은 인원들을 뽑을 필요도 없는데, 선배 챙겨주는 일이 만만치가 않기 때문에 오히려 인원 수는 더 많아진다. 선배들의 기념일이나 수능 백 일 같은 것은 당연히 거창하게 해주고, 그 선물이 얼마나 화려하느냐가 굉장히 중요하다. 1학년 아이들은 고3 수능 백 일 때 일종의 쇼를 준비하는데 남자 아이들은 차력을 하기도 하고 개그 프로 흉내를 내거나 춤을 추는 등 선배들을 최대한 웃겨서 ‘기분 좋게 해드려야’ 한다. “우리는 적어도 웃기는 일은 안 한다.” 공군에 복무해서 그나마 편하게 지낸다는 애인이 전화하면서 말하더라. 그러고 보니 나는 군대 다녀왔다.

“20기 조지은 선배님이시죠? 저는 23기 후배 ㅇㅇㅇ라고 합니다. 다름이 아니라…….”
“아, 네. 못 갈 것 같아요. 방송반 위계적인 것 때문에 많이 힘들죠? 그러지 않아도 되는데.”
“네?”
“지금 그렇게 힘들 게 지내는 것, 저도 전화하고 뭐 하고 다 해봐서 알거든요. 근데 정말 안 그래도 되는 건데. 어쨌든 저는 방송반 모임에는 못 갈 것 같아요. 나중에 따로 보게 되면 반갑게 인사해요.”
20기 조지은의 역량은 여기까지이다. 부끄럽지만 이런 글을 내 블로그에 올리면 후배 중 누군가는 와서 보지 않을까? 선배 중 누군가는? 선배, 그건 이상적인 것들이 아니라 지극히 현실적인 것들이에요. 우리가 살았던 방식이 비현실적이라고요. 선배에게는 아직도 그것이 현실인가요? 안 그래도 되잖아요. 아, 젠장. 그래도 그게 아직까지도 통하는 세상이다, 나이를 먹어도. 정말 대한민국은 군대다. 아무튼 한 번만 더 그런 소리 하면 똥꼬에 힘 빡 주고 살벌하게 따귀를 갈겨 줄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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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od
재미있는 쪽글이네요. 더불어 무시무시한 방송반이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저같은 경우엔 남학교에 있었는데 써클 선배들이 후배들에게 가하는 구타가 일상화되어있었지요. 대학때는 그래서 뭔가 위계가 있는 조직은 다 피해다녔는데, 군대에 서는 어쩔 수가 없더라구요. 군대의 무서운 점은 아무리 싫어도 거부하기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건데, 고등학교도 그런 점에서는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드네요.
2007/03/17 02:39

seod/ 비현실이라고 몰고 싶지만 실은 둘 다 현실이라는 게 ... "성남에 공군이 있는가 하면 또 그 옆에 오픈마루가 있단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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