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TICE  |  말많은마리 070808
2007-1 나임윤경 성평등리더십의이해와실천

“네가 하는 말이니까.”

0620916 조지은


군대에 있는 애인이 내가 쓰는 단어들이 어려워졌다고 한다. 함께 언어를 다듬는 작업을 할 시간이 없어지고 보니, 가끔 만날 때마다내가 쓰는 말들이 부담으로 느껴졌나 보다. 날것을 익혀서 충분히 몸으로 소화해내면 여러 가지 은유를 통해 세련된 언어를 구사하는것이 가능한데, 나는 지금 날것을 온몸으로 받아들이기에도 벅차다. 일단은 내 언어를 만들어놓고 나중에 다듬어서 써야지, 라고생각하고 있었는데 역시나 세상살이는 그렇게 만만치가 않다. 만드는 것과 다듬는 작업이 분리될 수 없고 함께 평생을 가야 하는작업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은근히 ‘아직 어리니까’라는 핑계로 번역을 유보해왔던 것이다. 더군다나 가까운 사람들과 이야기할 때는단어를 풀기보다는 좀더 말을 많이 하게 되더라도 일단은 신경 안 쓰고 생각나는 것을 뱉어내는 타입인지라, 문어체가 섞인 말들을의도치 않게 많이 섞어 쓴 모양이다. 가까운 사람들에게 현학적으로 비춰지는 것은 끔찍하다. 속상하다. 그 뒤로 “나 이제 3일동안은 -ism에 관련된 이야기는 절대 하지 않겠으!”라고 다짐했지만 웬 걸, 채 이틀도 가지 않아서 버럭 화를 낼 일이 생기고말았다.

영상콘텐츠 관련하여 기획서를 작성하는 수업시간이었다. 담당 과목 선생님께서 상업영화계의 PD로 맹활약하시고 계신분이라서 그런지 몰라도, 강의는 상업적 마인드가 짙게 깔려 있어 나까지 긴장될 정도이다. 수업시간에 하는 이야기들도 주로 어떻게하면 영상을 멋지고 잘 팔리게 만들 것인가, 에 관련되어 있는데 미디어를 통한 소통이나 성찰과는 거리가 멀다. ‘문화번역’과는거리가 먼 것이다. 팀별로 프로젝트를 진행하는데 어느 팀에서 ‘동성애’를 소재로 선택했다고 한다. 겉보기에 자극적인 소재들만선택되는 것도 한국의 공중파에서 생산해내는 다큐멘터리의 시각과 하등 다를 바가 없어 보여 안타까웠지만, 접근할 때 시각을 어떻게취하느냐에 따라서 완전 다른 콘텐츠가 생산될 것이기 때문에 팀별 PT에 약간은 기대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또 이게 웬 걸.

“남자 넷인 조에서 왜 하필이면 레즈비언을 할 생각을 했어요?”
“저희가 다 게이라서요.”
‘설마 저게 농담?’
“아, 그게 아니라 게이하면 저희 좋다고 쫓아올까봐 무서워서요.”(웃음)

괄호 열고 웃음, 에 주목하시라. 이런 변이 다 있나. 아무리 ‘비동시성의 동시성’이라지만 저 아득한 밑에서부터분노를 끌어올리는 말을 ‘농담’이랍시고 던져대는 폭력성에 치가 떨리는 것은 당연했다. 버럭 소리를 질러 놓고는 손을 부들거리면서공책에 한바닥을 휘갈겨 써서 비아냥대고 싶은 마음을 대신했다. 글씨체의 불안정한 선이 아직도 펼쳐보면 선명하다. 다큐멘터리를찍는 자의 자세가 저렇다니. ‘대상’을 원하면 자연 다큐를 찍으세요!! 어쩌고 저쩌고. 수업을 마치고 위당관에서 중도까지내려오는데 독수리약국에 가서도 흥분이 가라앉지를 않아서 목소리는 엄청 커지고 말투는 더 거칠어지고 손은 좌우에서 허둥댔다. 전에이처럼 화가 난 적이 한 번 있었는데, 그 때와 마찬가지로 밤에 집에 오니 그 기운이 내 안으로 뻗치기 시작했다. 사람에 대한실망에, 과연 공존이라는 게 가능한지, 내가 이런 세상에서 정말 행복하게 살 수는 있는 건지 온갖 것에 대한 회의감이 자정을틈타 물밀 듯이 들어왔다. 과제고 뭐고 집중이 안 되어서 다 제쳐놓고 누워서 생각만 하다가 자버렸다.

그런데 하루 정도가 지나고 나자 또 화를 냈군, 이라는 생각과 함께 내가 뭘 한 거지, 라는 속상한 마음이슬며시 고개를 쳐들더니 이내 내 기운을 빼앗아버렸다. 내가 화를 내면 일절 소통의 가능성을 막아버리는 건데. 그러면 저사람들에게 ‘또라이,’ ‘왜 저래?’라는 인상 말고 다른 무언가를 줄 수 있을까? 내가 바라는 것은 그게 아니잖아. 내가그들에게 뭔가 할 수 있을까? 뭔가 나눌 수 있을까? 가깝게 느껴지는 사람이 하는 얘기가 교수님 한 마디보다 더 절절하게 와닿는법인데, 화를 내지 말고 다른 지점에서 인연을 만들어야 하는 것 아닌가. 정말 뭔가 소통하기 위해서는 그 배경에 더 많은 말들이필요한 건데 이런 식으로 화를 내고 돌아서는 건 너무 멍청하잖아, 유연하지도 못 하고.

나임은 조금 다른 뜻으로 해석했지만, 내 생각에 조한이 말한 ‘공략하기보다 낙후시켜라’는 적의 언어를 배우는것이다. (‘적’은 비유적인 의미로 읽자, 누구든 단 한 사람에 대해서조차 적과 아군으로 딱 가를 수는 없으니까.) 누군가물었을 때 부모양성을 쓰는 것에 대해서는 당연히 친절하게 설명해줘야지, 이쪽에서 ‘너 그거 몰랐어?’라고 말해봤자 아쉬운 건이쪽이다. 낙후시키는 것은 그런 뜻이 아니다. 정작 소리치는 쪽은 이쪽이고 안 들어도 세상 편하게 사는 쪽은 저쪽인데, 왜이쪽에서 언어를 다듬지 않는 건지? 그건 똑똑하지 못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내가 촌스럽고 거친 사람이라서 아직 화를내는 수준에서밖에 대응할 수 없는 거라고 자책한다.

이런 생각이 나 스스로에게 꽤 상처를 내고 있었던 건지, 갈수록 화가 안으로 뻗어서 실망할 일이 많아진다.감정에 충실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내가 바라는 것은 그게 아니니까, 서로 모순되는 지점이 있는 것이다. 지난 일주일 정도를이러한 고민 때문에 몸까지 아파 와서, 여러 사람들을 만나 질문을 하기 시작했다. “어떻게 생각해? 화를 내면 소통이 차단되고이미 내가 그 사람에게 ‘또라이’가 되잖아. 그럼 참따랗게 말하고 싶은 바가 전달되지 않잖아. 내 화풀이 하는 것 밖에 더 해?…….” 더듬거리며 말을 제대로 하지도 못했는데, 잘 들어주고 진지하게 답변해준 고마운 인연들, 화를 내는 것 자체도 소통의 한방법일 수 있다는 것이다.

지인들에게 고민을 이야기하면 동생은 함께 만화책을 빌리러 가자고 하고, 친구는 밥 먹자고 하고, 엄마는 쇼핑하러가자고 한다. 누구는 자신의 이야기를 해주고 사진도 보여주고 아니면 촉촉한 눈으로 내 속까지 꿰뚫어보는 것처럼 날 지그시응시하는 것으로 천 마디 말을 대신하기도 한다. 각자 자신이 할 수 있는 방식으로 나를 위로하는 것이다. 또 누군가는 걱정된나머지 나에게 오히려 큰소리로 화를 내기도 한다. 그것도 한 방식이다. 화가 나서 낼 수밖에 없다면 화를 내야 하는 것 아닌가?뭐 당연한 것을 이야기하느냐고 누군가 말한다면, 단순히 아는 것과 맥락 속에서 재발견하는 것은 다르기 때문에 지금 나에게는 항상전에 알던 것도 새롭고 소중하게 읽힌다고 대답하고 싶다. S가 내게 이런 말을 해줬다.

‘화가 나면 화를 내. 그 시기를 살아봐야 전환이 올 수도 있지. 머리로만 안 되는 건데 널 자책하면 생채기만나지 않니? 또라이라고 보일까봐 걱정이 되면, 정말 화끈하게 또라이가 되어 봐. 막 화도 내고.’ 한결 마음이 누그러진 것같다.

그래도 여전히 세련된 언어에 대한 열망 같은 것이 단단하게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기는 하다. 왜냐하면 그것이‘번역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비록 자신을 그렇게 의식하는 사람은 드물지라도, 모든 사람은 ‘문화번역자’다. 나도 한국어번역을 한다. 화를 내기도 하고 묻기도 하고 설명을 하기도 한다. 그런데 대부분의 경우에 설명을 하는 것은 좋은 말을 들었구나,이상으로 그에게 영향을 주지는 못하는 것 같다. 잔상이 남지 않는다는 말이다. 반면에 은유와 일상어가 지닌 힘은 다른 어떤말보다 훨씬 더 구체적이고 솔직하다. 나름대로 화도 여러 방식으로 번역해보면, 얼굴 찌푸리지 않고 또 다른 인연의 시작이 되도록잘 내는 방법이 있을 것이다. 자, 지은아 머리도 좀 굴리고 말도 계속 해보자. 적으로 마구 몰아붙이지만 않는다면 화내는 것도좋다. 그럼 누군가는 이렇게 말해주겠지? “네가 하는 말이니까 생각해볼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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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를 위한 감사합니다.
2008/05/23 04:37

많은 감사 위치! 우수한 나는 너의.
2008/05/23 04:54

정말 같지 않는 블로그!
2008/05/23 05:39

너는 위치를차가운 만들었다!
2008/05/23 06:05

여기 이것은 뉴스 있다!
2008/05/23 07:16

유용한 정보. 좋은 디자인.
2008/05/24 00:51

친구는 위치의 너의 현재 팬이 되었다!
2008/05/24 0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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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출한 디자인! 좋은 디자인.
2008/05/24 0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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