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영화를 보기 전 며칠 간 계속 영화를 보지 못했다. 책도 한 권도 읽지 못 했다. 머릿속이 많이 복잡했다. 간간이 에반게리온 TV시리즈를 보기 위해 집중해보려 했지만, 역시나 중간까지나 보고 나면 곧 다시 앞으로 돌려서 봐야했다. 그런데 간만에 조용하게 빨려들어가서 영화를 봤던 것 같다. 아주 뻔한 결말을 알고 있으면서도, 정말 잘 만든 영화라고 말을 안 할 수가 없다. 주인공 조시 역을 맡은 샤를리즈 테론의 얼굴색이 변하는 연기나, 조시의 어린 역을 맡은 앰버 허드 역시. 조시의 친구인 글로리 역의 프랜시스 맥도먼드는 "돈 많은 친구들"에서도 잔잔하고 강한 연기를 보여줬다.
중학교 때였나, 고등학교 때였나, 선생님 한 분께서 이런 말씀을 해주신 적이 있다. "지금 너희가 누리는 자유는 어떻게 해서든지 앞서 간 사람들에게 빚진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모두들 어느 정도는 빚진 자들이다. 나는 조시 에이미스라는 여성에게 빚졌다는 것이 아니라, "우리 밥줄 끊기게 하려고 미친년"이라는 소리를 들으면서도, 끝까지 희망의 손을 놓지 않고 투쟁한 모든 죽은 자들에게 감사한다. 그리고 한국에 있는 그 수많은 분들을 생각한다.
영화를 보면서 김신명숙씨가 게재한 '로자 파크스와 권인숙'이 생각났다. 노스 컨츄리는 1984년에 있었던 '젠슨 대 에벨레스 광산(Jenson vs. Eveleth Mines)' 사건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그러나 감상에 젖어 추억하고 있기에는 너무나 무안할 정도로, 영화에서 다뤄지는 현실은 우리 코 앞에 있다. 21세기가 지나서도 이 잔인한 사회는, 영웅이 아닌 평범한 어머니이자 수급권자였던 최옥란씨를 자살로 몰고 갔다. 평범하게 살았을 사람을 열사로 만드는 끔찍한 사회에서는 우리도 한 몫 하고 있다. 나는 영웅이 없는 시대에 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