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TICE  |  말많은마리 070808
오픈마루 사무실에 갔더니 유저리서치 하시는 분께서 "요즘은 미국 드라마 보는 게 트렌드인가 봐요. 인터뷰하면 다들 그 얘기를 해요."라고 하시는 걸 보니 나처럼 미국 드라마를 다운받아 보는 사람들이 꽤 많나보다. 심지어 군대에서조차도 프리즌 브레이크 이야기가 제일 많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우리나라에 드라마 전문 매거진 dramatique이란 잡지가 나왔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TV드라마는 잘 보지 않는 편이라서 관심이 없었다. 그런데 페이지에 있어서 읽다보니 꽤 재미있다. 듀나 글도 있고. 하나만 빼면 좋을 텐데.

'드라마틱 논술 특강' 이라는 코너가 있나 본데, 이번호 문제는 '국가주의와 개인의 희생에 관하여 논술해보기'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저렇게 추상적이고 거창한 질문에는 답도 그렇게 나올 수 밖에 없는데, 왜 논술 문제가 매번 저런 식으로 나오는지 정말 ... 예시문은 드라마 연개소문의 대사에서 따온 것 같은데, '연개소문'과 '연태수'의 입장에서 국가의 이익과 연개소문 개인의 이익이 대립하는 상황이고 연태수는 나라의 신료로서 당연한 일을 요구한다. 그런데 논술 답안, 그 대답이 참 가관이다. 절대 이렇게 논술 쓰지 않았으면 좋겠다. 수험생들은 이런 거 더 열심히 볼텐데 정말 기가 막힌다.


드라마틱 논술 문제 '국가주의와 개인의 희생에 관하여' 예시답안: (강조는 mari)

사회심리학자 에리히 프롬에 따르면, 국가나 민족 등 거대한 가치관에 복속되어 행동하는 사람은 그러한 굴종으로부터 피학적인 쾌감을 느끼고 자신이 섬기는 가치를 타인에게 강요하면서 역으로 가학적인 쾌감을 즐기게 된다고 한다. 그러한 사람들이 모여 있는 사회는 위로부터 권위에 대한 무조건적인 복종과, 아래로부터 올라오는 다양한 목소리에 대한 무차별적인 억압과 폭력을 자연스럽게 내재할 수밖에 없다. 에리히 프롬이 비판한 바와 같이 이는 결코 건강한 사회의 모습이 아니며 따라서 우리는 우리 사회가 그러한 방향으로 나아가는 일을 막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제시문의 '연개소문'과 '연태수'를 비판해야 하는 이유도 바로 거기에 있다. 삼촌과 조카 사이인 그들은, 한 국가의 관리라면 그 국가의 안위를 위해 자신의 조카나 친자식을 희생시킬 수 있으며 마땅히 그래야 한다는 입장을 공유한다. 연태수가 연개소문에게 생명의 위협을 가하며 느꼈던 쾌락이, 국가를 위해 자신이 짊어져야 할 십자가였다는 사실을 알게 된 연개소문의 피학적 쾌감으로 전이되면서, 급기야 그가 눈물을 흘리는 모습까지 제시문에서는 적나라하게 묘사되어 있는 것이다.

많은 서양 사상에서 발견되는 바와 마찬가지로, 이러한 사고방식 또한 정작 자신의 행동의 대상이 되는 상대방을 진지하게 고려하고 있지 않다는 특징을 보여준다. 다시 말해, 국가를 위해서라면 조카가 어떻게 되건 상관없이 목숨을 노린다는 것이다. 하지만, 특히 친족 간에 무엇을 하건 가장 먼저 상대방을 배려하는 마음은 우리의 전통 속에 면면히 이어내려져 왔으며, 그것은 최근에 네티즌들의 입을 통해 '형이 애정이 있어서 널 때리는 거다'라는 식의 표현으로 구체화되기도 했다. 제시문의 경우에는 바로 그러한 요소가 배제되어 있다. 국가와 민족의 안위를 운운하며 공동체에의 헌신과 희생을 요구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지만, 무조건 서구식 민주주의의 가치만을 추종하여 모래알처럼 파편화되는 것 또한 옳지 못하다. 양극화로 점점 불안해지는 우리 사회에 국가주의와 민족주의의 열풍이 몰아친다면, 우리는 우리 고유의 이데올로기인 가족주의를 통해 그것에 대항하는 것이 마땅하다. 삼촌이 조카의 목숨을 노리는 데에도 애정이 없는 사회라면, 그 나라의 모든 국민이 애국자라 한들 그게 대체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 노정태

아주 어린 꼬마는 가족 안에서 국가주의와 민족주의의 가치를 몸으로 익히면서 자란다. 가족주의와 민족주의 국가주의는 서로 착 달라붙어서 교묘하게 돌아간다.

불행한 삶을 살아야 좋은 글을 쓴다.
좀 맞아야 정신을 차린다.
군대에 갔다와야 사람 된다.

이 세 문장이 묘하게 닮아있지 않은가?

우리 학교에서 쫓겨난 교수님의 폭탄 발언.
"공부하다 안 되면 남자는 막노동하고 여자는 몸 팔면 되지."
얼마전 지인이 내게 했던 말.
"여자애들은 돈 없어도 어디 가면 잘 얻어먹을 수 있던데."

이 두 개도 닮아있지 않은가?

똥인지 된장인지.


+ 붙임

군대에서 친구들이 휴가를 나와서 재미있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그 안에서 흔히 모순 명제가 거침없이 통용되고는 한다는데,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이것이었다.

"너희의 몸은 너희의 것이 아니다. 너희 몸은 국가의 것이다. 그러나 건강은 스스로 지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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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미
가끔 가는 올빼미님의 방명록에 mari님 글이 있네요. 세상 은근히 좁습니다. ㅋㅋ

아, 정말 군대는 모순 명제가 너무 잘 통해요. 한민족이라고 하면서 서로 총 들이대고 적절한 시기에 서해교전같이 한바탕 해주는 모습 자체가 모순이니 군에 대해서는 더 말할 나위 없지요.
논술답안이라는 저 글... 논리전개가 정말 '드라마틱'하네요.
2007/02/06 10:10

......에리히 프롬은 무슨 동네 북이시냐. 매번 엄한 곳에서 고생하시게. 전에 보니까 복거일도 그 분 이름 써먹더만? 그것도 '대중의 천박함'을 비'난'하는 글에서 말이지. 그나저나 저 글 쓴 사람, 파시즘과 민주주의의 차이는 구분할 줄 아는걸까?;
2007/02/06 11:17

다른건 어려우니 제쳐두고 "형이 애정이 있어서 널 때리는 거다"라는 말이 "가장 먼저 상대방을 배려하는 마음"에서 우러나온 것이었군요! 오호라! 그럼 굴다리밑은 훈훈한 애정이 꽃피는 장소로군요...
당장 3월부터 논술에 대해 언급하지 않을 수 없게되는 저로서는 참 답답할 뿐입니다. 그나마 논술에 관심있는 학생들이 벌써 "~~주의"에 대해 저보다도 굳건한(?!) 판결을 내릴 때에는 더더욱...

+블로그판이 꽤나 넓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꼭 그런것 같진 않네요. ;-)
2007/02/06 1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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