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월 1월 25일
"생각하지 않는 것은 죽은 것과 같다."
PISA에서 50국의 만 15세(우리나라 고1)에 대하여 실시한 학력 평가에서 한국이 종합 2위를 거두자, 호주의 한 잡지에서는 '한국의 교육을 본받자' 해서 우리의 자랑스런 학원문화와 '한국 아이들은 다섯시까지 수업을 하고 또 열시까지 학원을 다니고 그 뒤에 자율을 더 한다' 는 내용을 특집으로 보도하였다. 그들은 한가지 중요한 것을 잊은 것이 있는데, 우리 나라의 대학 주변에는 온통 유흥가들이 밀집해있고, 연말 연시를 대부분의 대학생들이 선배의 권유에 못이겨 술독에 빠져살며 대학 3,4 학년이 되어서는 경제불황속에서 취직자리를 구하기 위해 '직업찾기용 공부'로 빠져든다는 사실이다. 게다가 더 심각한 것은 대학에 들어갈 때까지 학생들의 직업탐색에 있어 가장 중요한 기준이 적성이나 흥미, 꿈에 대한 자부심, 그리고 사회에 대한 기여도보다는 직업의 일정한 '보수' - 즉, '얼마나 폼나게 살 수 있는가' 라는 것이다. 한창 꿈많은 나이에 있어야할 초등학생들도 얼마전 장차 희망직종의 가장 중요한 기준으로 '돈' 을 꼽았다. 아무리 경제불황이라지만 씁쓸하고 슬픈 일이 아닐 수 없다.
한국에는 김대중 대통령 말고 물리학이나 경제학에서 노벨상을 받은 사람이 없다. 그것은 창의성의 문제이다. 교육은 창의성을 죽이고 있다. 모든 교육은 대학입시에 맞춰져서 진행되고, 그 밖에 창의성을 길러주는 교육이나 말마따나 '살아있는 교육' 이라는 것은 진행되지 않고 있다. 학원에서 우리는 이런 소리를 들으며 공부한다. 옆에 있는 친구는 너의 경쟁상대이다. 친구는 공부에 도움이 안되니 대학가서 출세하면 떳떳하게 동창회 나가라. 사탐과목 선택 고민하고 있나? 문과는 무조건 법과 사회해라. 표준점수 제일 잘나온다. 적성은 대학이나 가서 그 다음에 찾아라, 그게 현실이다. 아니면 낙오자가 된다. 악순환은 계속된다. 학원은 knowledgeable students 를 양성하는데 정신이 없어 경기불황중에도 엄청난 실적을 올리고 학교는 학원에 뒤지지 않기 위해서 교육부 몰래 특기적성을 시키고 경쟁력있는 강사들을 초빙하여 '인성교육' 이라는 것은 찾아볼 수가 없다.
예체능도 그렇다. 예체능은 90점만 넘기면 대학가는데 무난하기 때문에 신경쓰지 않는다. 그런것은 어렸을때 하고 대학가려면 고등학교때 모두 접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음악이나 미술,문학에서도 진정한 즐거움을 찾지 못하고 수업시간에 선생님께서 불러주시는 문장을 모두 적어 시험때만 때려맞추기 식으로 공부한다. 여기서 더 심각한 것은, 이것이 비단 학생들 개인의 교양 문제가 아니라 나라의 문화,예술 부문의 잠재력 말소시키는 원인이 된다는 데에 있다. 이런 식으로 공부한 학생들은 커서도 문화,예술,음악 등의 부문은 모두 학창시절 시험보던 것을 떠올려 '복잡하고 공부하기 어려운, 천재들이나 돈많은 사람들을 위한' 것으로 인식하게 되고, '감상' 하는 문화가 자리잡지 못한다. 뭐든 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에 맞서서 들어주고 읽어주고 봐주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
오늘 특기적성 문학 시간에 문득 시 해설을 듣고 있다가 깨달았다. 아, 내가 10년 넘게 받아온 이 교육이란 것이 정말 생각을 죽이고 있구나. 문학시간에 선생님들은 시를 잘게 조각조각 분해해서 학생들에게 안겨준다. 학생들은 아무 생각없이 열심히 적고 외우고 받아들인다. 다른 해석의 여지가 없다. 교과서와 필기가 정석이다. '그런 식으로만' 생각해야지 수능문제를 풀 수 있다. 생각을 안하기 때문에 머리를 텅 비우고 계속 받아적다 보면 잠이 온다. 선생님들은 왜 조는 학생들을 탓하는가? 그것은 우리가 게으르거나 피곤하거나 잠을 덜 자서가 아니다. 일관적인 해석으로 머릿 속에 고정된 관념만 심게 된다. 이러니 배우는 것 보다 안배우는 것이 낫다.
교육은 본래 학생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수준에서 그쳐야 한다고 누군가 그랬다. 백번 옳은 말이다. 작가의 의도, 문체의 특징을 칠판 가득히 써내려 가기 보다는 '왜 그럴까, 이 사람은 어떤 면에서 이런 글을 썼지' 라는 질문을 던져주고, 간략히 작가에 대한 프로필을 제공하고 나서는 이 사람은 이렇게 살았는데, 어떤 부분에서 그런 것이 반영되 있는지 찾을 수 있나, 그런 이야기가 오가는 토론식의 수업이 되어야 한다. 선진국의 수업방식은 모두 토론식이다. 그냥 '안다' 와 아는 것을 '말한다' 는 것은 완전히 다른 것이기 때문에 토론의 교육방식은 자기가 아는 것을 다시 한 번 확인하고 다른 학생들과 생각을 공유하며 이해하고 한 가지에 대해서 여러가지 해석이 나올 수 있음을 인정하고 논리적으로 반박하는 과정이다.
물론 우리 나라에서도 이런 교육 받을 수 있다. 고액 학원에 가면 된다. 강남에서 이런 토론 학원은 한달에 백만원씩 주면 할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모든 학생들이 그렇게 부유한가? 친구들과 자체적으로 그런 스터디 그룹을 만들어서 하는 방법도 있다. 하지만 모두 입시에 시달리는 시점에서 어떻게? 학생들은 모두 그런 것을 원하고 또 정말 활발히 활동하는 아이들도 많지만, 일단 이런 주입식 교육에 너무 익숙해진 우리들이 '학원' 이 아닌 그런 것의 필요성을 느끼기 위해서는 정말 오랜 시간이 걸린다. 사실 돈만 있으면 모든 과목의 학원이 지천으로 깔려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겉보기에 점수도 잘나오고 대학도 잘가기 때문에 큰 위기감을 못 느낀다. 나도 그랬다. 여태까지 계속 그랬다. 난 내가 나름대로 현실에 잘 적응하고 있다고 자부했고, 그런 현실에서 뒤쳐지기 않기 위해서 말도 안돼는 방법까지 써가며 교과서를 외워댔다. 그리고 시험을 치면 점수가 꽤 나왔고, 그걸 믿고 속없이 까불던 중학교 시절엔 나보고 뭐라 하는 선생님 한 분 안 계셨다. 난 그런 현실에 화가 나서 더 내 멋대로 굴었고 성적만 잘 나오면 아무 말도 안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난 오늘에서야 깨달았다. 순간 소름이 돋았다. 이런 현실에 익숙해져 버리면 좁은 세계 안에 나를 가둬버리는 것과 다름없다는 생각이 들어서. 끝없이 자만해지고, 별 것도 아닌 그까짓 등수나 점수라는 것이 올라갈때마다 내 아래 아이들이 나를 대학에 보내준다는 생각에 더 자만했다. 생각해보면 정말 부끄럽고 어디가서라도 숨고 싶다. 나는 내가 그렇게 지독히도 싫어하던 위선자 그 자체이다.
이야기를 하고 싶어도 할 곳이 없을 때는 정말 미칠 듯이 답답하다. 내가 필요로 하는 것은 전문가들의 유쾌한 설명이나, 이십만원씩 주고 다녀야 들을 수 있는 커다란 강의실에 울려 퍼지는 얼굴도 잘 보이지 않는 선생님이 아니다. 내가 생각한 바를 다른 사람과 공유하고 또 나와 다른 시대의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가졌는지 알고 싶다. 나의 의견의 헛점을 논리적으로 반박하고 한차원 더 높은 곳으로 도약할 수 있도록 나의 의지와 자존심을 자극해 줄 환경이 필요하다.
지금 우리나라에서 그런 교육은 절대적으로 불가능 하다. 일단은 인원이 많다. 하지만 더 나를 암울하게 만드는 것은, 물론 개혁적인 좋은 분들도 계시지만, 이미 자신의 수업방식에 익숙해져서 더 이상 공부할 필요성을 못 느끼고 아는 것으로 울거 먹고 또 울거 먹는 선생님들이다. 그리고 또 거기에 익숙해져 가는 불쌍한 우리들이다. 이런 식으로 교육을 받으면 어떤 훌륭한 선생님이 될지라도 다시 이런 식의 교육을 되풀이 하는 사람이 될 수 밖에 없다. 나는 영어가 참 좋다. 그래서 영어시간은 열심히 듣는 편인데, 그래도 정말 듣다 보면 '쓸모없다' 는 생각이 드는 수업도 있다. 젊으신 분들은 그래도 좋으신 분들이 많아서 여기저기 원서에서 좋은 구절을 찾아서 적어주고, 모르는 것도 가르쳐 주고, 여러가지 교과서 외의 충고도 많이 해주신다. 반면에 자신에게 아주 익숙해진 오래된 선생님들은 '선생님' 이라는 이름 좋은 그룹에 자신이 속한 것을 즐기며 수업시간에는 오만한 사람으로 돌변한다. 학생들이 틀린 것을 지적하면 자존심 상해하며 은근슬쩍 넘어가고, 적어주는 필기 내용은 이미 십년은 훌쩍 넘어버린 성문문법책의 예문들과 똑같다. 매일 외웠던 내용을 몇번씩 적어가며 자기 스스로도 그 필기에 감탄한다. 한심하다. 어이없다. 과연 그런 영어 선생님들 중에서 자신있게 회화할 수 있는 선생님들은 얼마나 있을까? '교실 안' 에서만 영어의 제왕으로 군림할 수 있는, 시험문제 출제권을 손에 쥐고 아이들을 휘두르는 그런 사람들.
경제가 불황이니 공무원이 희망직종 1위인데, 교대는 그 중에서도 인기 으뜸이다. 교대에 가고 싶은 애들은 대부분 이유를 물어보면 이렇게 대답한다. 보수 일정하고, 가만히 있어도 돈 늘어나고, 나중에 연금나오고, 방학도 있고. 물론 참 좋은 일이다. 하지만 나는 기왕이면 학생들과 함께 공부하며 방학때도, 나이를 들어서도 끝없이 발전을 추구하고 점점 더 시야가 넓어지는 학생들에게 발맞추기 위해 노력하는 그런 선생님이 있으면 좋겠다.
아아.. 또 있다. 논술. 나도 논술 쓰는 것 굉장히 힘들다. 특히 평소에는 생각을 별로 안하고 살기 때문에, 그리고 으레 다 '안다' 고 생각하고 지나가기 때문에 그런 것을 '쓰려면' 골치가 아프다. 대학 입시에서 논술 반영 비율이 높아진 것은 정말 좋은 일이다. 그런데 또 이런 서커스 같은 웃기는 짓이 벌어진다. 수능보고 나서 논술 대비를 여태까지 해온 '벼락방식'으로 하느라 하루에 하나씩 써댄다. 유명한 구절 쫙 외워준다. 심지어는 사례까지도 통째로 외워버린다. 그래서 이리저리 갖다 붙이다 보면 자기 생각은 어디갔는지 찾아보기도 힘든, 서론, 본론, 결론 으로 이루어진 그럴싸한 글이 한 편 나온다.
봉사활동은 또 어떤가? 대학에서 시간 늘리면 학교에서 별 말도 안돼는 이유로 시간 다 채워준다. 20시간도 턱없이 적은 시간이다. 그런데도 공부하는데 방해되기 때문에 우리는 시간 아깝다고 불평한다. 봉사활동은 시간이나 채우라는게 아니다. 일하다 보면 자신에 대해서 더 생각도 많이 하게 되고, 나보다 더 열심히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서 삶의 의지를 배우고 그런 기회를 얻기 위해서 하라는 거다.
현실과 유리시키고 창의성을 죽이고 생각의 여지를 주지않고 말하고 싶어도 말할 수 없는 그런 교육은 벗어나고 싶다. 대학은 안가봐서 모르겠지만, 적어도 중학교 고등학교는 그렇다. 대안없이 불평만 하는 것 같지만, 수험생으로서 답답해서 써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