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이 더워 정류장 벤치에 앉으면 무릎까지 햇볕이 들어쬐던 며칠 전이었다. 한 발 뒤로 물러서서 그늘 안에서 볕을 피해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벤치에서 버스를 기다리는 남자가 있었다. 정갈하게 검은 양복을 입고 스트라이프 넥타이를 매고 있었는데 무언가를 열심히 뒤적이고 있었다. 한 손으로 가득히 쥘 수 있는 팸플릿 크기의 소책자였다. 버스가 오는지 안 오는지 5초에 한 번씩 고개를 들어 확인하는 탓에, '도대체 저렇게 자주 고개를 들면서 한 페이지라도 제대로 읽을 수 있는 걸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아침에 집에서 나오는 길에 슈퍼에서 요구르트를 하나 사고 빨대를 꽂아 마시면서 정류장까지 왔었다. 버스는 오지 않고, 아침 시간이라 마음은 분주하고, 요구르트 병은 다 비어서 빨대를 꺾으며 손장난을 치다가 그 남자 옆자리에 앉아보았다. 곁눈질로 봐서는 역사에 관련된 칼럼을 읽고 있었는데, 역시나 한 페이지도 나가고 있지 않았다. 버스가 오자 그 남자는 냉정하다 싶을 정도로 무관심하게 책을 자리에 던져두고는 가버렸는데, 제목을 보니 천도교 교리에 관한 책이었다. 시간 떼우기로 그저 잠시 들고 있던 것 뿐이었다. 어쩐지 김이 빠져 버렸다.
그런데 자꾸만 그 모습이 머릿속에서 떠나지를 않는다. 더운 날에 매연 때문에 살짝 때가 탄 하얀 와이셔츠 깃에 짧게 자른 머리가 닿았다, 안 닿았다 하면서 고개를 들었다가, 숙였다가 했다. 계속 무언가를 기다린다. 손가락 다섯개를 접을 때마다, 간혹 그 시간도 참지 못 하고 고개를 한 번씩 들어 버스가 오는지 안 오는지 확인하면서 말이다. '올까? 이쯤 읽었으니까 오지 않았을까? 아, 오늘은 월요일이군. 천도교의 역사적 배경이 이런 거란 말이야? 혹시 아까 왔었는데 내가 못 본 걸까? 지금 몇 시쯤 되었지? 오분 정도 늦게 가면 또 눈치 보일 텐데 ... 대낮까지 이렇게 더우면 어떡하지?'
아마 자신이 생각하기에는 5분에 한 번 정도 고개를 들고 있다고 느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