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기 해멍(다락 운영위원장)이 울면서 전화를 했다. 혼자서 기획서를 들고 후원사에 찾아갔다가 일이 잘 풀리지 않아서 많이 속상했나보다. 까칠한 충고들일지라도 둘이 들었으면 그나마 나았을 텐데, 평소에는 그렇게 똑똑한 애가 이럴 때는 어찌나 바보처럼 구는지 다른 사람에게는 말도 안 하고 혼자서 움직였다. 지난 한 달 동안 몸과 마음 모두 좋지 않아 외출을 삼가고 있던 내 사정을 알고 부러 연락을 하지 않았을 거라는 생각에 '당장 페이지로 와' 하고는 계속 기다렸다.
페이지는 내가 일주일에 이틀을 지내는 공간인데 홍대에 있는 카페이다. 카페에서 해멍을 기다리는 동안 울고 난 아이에게는 달고 맛있는 것을 먹어야한다는 생각에 카페모카와 핫초코 사이에서 고민을 하고 있었다. 커다란 헤드폰을 머리에 쓰고 해멍이 계단을 올라오더니 "핫초코"라며 힘없이 웃었다.
이런 날이면 내가 왜 다락을 하고 있는지,
언제부터 하고 있었는지 생각이 나질 않는다.
분명 뭔가 즐겁게 하려고 시작했던 것 같은데?
한참을 생각 속에서 헤매다가 밤에 메신져를 켰더니, 윤종수 판사님께서 말을 걸어오셨다.
닉네임이 좋지 않네요, 무슨 고민이 있나요? 아, 사실은 요즘 액이 꼈나봐요, 다락하는 친구들 모두 어디가 아프거나 일이 안 되거나 안 좋은 일들이 생기네요. 저런, 힘 내요. 조만간 식사나 할까요? 시간이 되면 내일 보는 것이 좋겠어요, 메뉴는 스파게티로 하죠. 그럼 오셔서 전화하세요, 저희는 신촌에 계속 있을 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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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종수 판사님은
Creative Commons Korea 일로 처음 알게 된 분이었고, 하자센터에서 저작권 관련 Creative Commons 프리젠테이션을 할 때 처음 뵈었다. 당시 하자 힙합 파티 이후에 CC를 이용한 힙합 샘플링을 들려주시면서 PPT를 진행하셨는데, 음악을 좋아하시면서 IT쪽에 관심이 많으셔서 내게는 '판사'라는 단어가 처음에 굉장히 어색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 후로 몇 차례를 더 뵈었는데, 눈매가 선하면서도 강한 인상을 지닌 분이셨다.
화요일 저녁이 되었다. 오전부터 일찍 일어나긴 했지만 몸이 늘어지는 통에 다락방에서 엎어져 자고, 해멍은 해멍 나름대로 교수님께 파워포인트를 가르쳐드리느라 점심 한 나절을 바깥에서 보내고 난 뒤였다. 전화통을 붙들고 대학마다 전화를 하는데 어느새 안내원의 목소리가 아주 침착하고 정갈하게 비져나와서 씁쓸했다. "네, 저희가 영화제를 여는데요, 애니메이션을 섭외하고 싶어서 전화드렸습니다." 오늘이 무슨 날인가? 세 군데 정도에서만 답을 받았다. 공문을 먼저 만들어 여기저기에 메일을 썼다.
일곱시가 조금 넘어서 판사님께 전화가 왔다. 멍과 내가 나갔고, 판사님은 평소와는 다르게 긴 코트를 벗고 계셨다. 볼 때마다 핼쓱해지는 것이 계속 살이 빠지시는 것 같았다. 구둣걸음이 쾌활했고 정문을 나선 우리 셋은 횡단보도 떡볶이집 앞에서 잠시 고민을 하다가 해멍과 내가 가위바위보를 해서 파스타12에 가기로 결정했다.
하루종일 전화를 붙잡고 있었던 통에 축 늘어져서 포크를 돌리다가, 점점 말을 주고 받으면서 식욕이 돌기 시작했다. 판사님과의 대화는 유쾌했다. 워낙 말을 잘 하는 분이셨고 침묵이 길어지지 않도록 긴장감을 유지하면서 대화를 잇는 데에 능숙한 솜씨가 엿보였다. 눈가에는 항상 웃음이 서려있고 말을 듣고 있는 사람들과 골고루 눈을 마주쳐서 편안한 분위기였다.
"아니, 뭐가 그렇게 힘들고 고민이 많아요?"
"그러게요, 잘 해보려고 하는데 잘 되지 않는 것 같아요."
"뭐가 잘 안 되는 것 같은데요?"
"일단 재정적인 것이 제일 문제이고요, 사람들이 각자의 문제 때문에 힘들어하는 것 같아서요. 인원이 많아지니깐 확실히 힘든 부분이 있는 것 같아요. 서로 상상하는 것도 다르고. 지금까지는 그 부분을 많이 공유하는 데에 힘을 쏟았어요."
(지금의 다락은 열 네 명으로 구성되어 있다)
파스타12에서 스파게티를 먹고 태반은 남긴 다음에 카페 Trois Amis(신촌에 있는 카페로 다락 친구들과 자주 가는 신촌의 '마음의 고향'이다. 사무실 같은 다락방이 답답할 때면 이곳에서 차 한 잔씩 하며 회의를 하는 척하다가 수다로 직행한다)로 이동했는데, 쾌활한 구둣걸음에 '신촌은 변하는 게 없군. 카페, 술집, 여관이 그 때도 많았는데 말이지.'라며 이곳저곳을 돌아보셨다.
판사님 대학교 2학년 때 지하철 2호선이 처음 생겼다고 하는데, 안내방송에서 '연대, 성균관대, 이대 ... 이상은 지하철이 가는 학교입니다.'라는 멘트가 나왔다는 대목에서 폭소했다. 지하철이 가는 학교와 지하철이 가지 않는 학교, 로 구분이 되던 때가 있었구나. 그 때의 신촌은 지금보다 조금 공기가 더 깨끗했을까? 그리고 우리는 고등학교 때 친구들이 '2호선 타자!'며 수험공부했다는 이야기를 했다.
카페에서 나눴던 이야기 중에서는 '즐기면서 할 수 있는' 문화가 천박한 우리나라에 대한 것이 내 머릿속에 가장 강하게 남아있다. 뭐든 자꾸 대박이라느니 세계 최고라느니 그런 수식어를 붙여야 직성이 풀리는 문화라 창작하는 사람들은 자연히 비장해질 수밖에 없었다.
더 안 좋은 점은 그 심각함과 비장함이 작품의 예술적 깊이와 관련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겉보기에는 담고 있는 무게가 조금 더 들어보인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좋은 작품이란 정말 즐기면서 나오는 것이고 훌륭한 글은 가장 행복하고 평화로울 때 나올 수 있는 것이라고.
그런데 다락이 자꾸 비장해지고 있고 그로 인해 즐기는 것이 아니라 한두명씩 모두 고통받기 시작했다. '그 사이트에 배너를 달아달라고 하자. 언론 관련 리스팅 작업을 해야해. 그건 좀 힘들 것 같은데. 우린 돈이 없잖아.'
"확실히 1회 때보다는 이것저것 조심스러워진 것 같아요. 1회는 처음이라는 것으로 용서가 되는 부분들이 있는데, 2회 때에는 사람들이 뭔가 더 기대를 하게 되고 1회보다 나은 것을 바라는 것 같거든요. 그리고 지켜보는 사람들이 생기니까요. 사실 멤버들은 헤쳐 모여서 완전 다른 기획팀인데 ... "
"주변에서 자꾸 대박, 대박 그러니까 문제라니까."
"1회를 통해서 아는 분들은 많아졌어요. 그래서 영화제가 더 쉬울 줄 알았거든요. 그런데 그 분들이 기대하는 것에 자꾸 따라가려고 노력하게 되는 것 같아요."
"그런 것 신경쓰지 않고 할 수 있어야 돼. 젊은데 뭐가 무섭나, 이것저것 다 해봐요."
한 남자를 사랑하면 단편 소설을 쓸 수 있다. 이 법칙을 나는 최근에 깨달았다. 소설을 쓰고 싶어서 사랑을 하는 것인지, 사랑을 하고 있어서 소설을 쓸 수 있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남녀 관계는 인간이 인간이기 때문에 불가결한 요소이다. 슬프고 즐겁기도 하며 그리고 달콤하다. 이런 감정들은 구체적으로 생활을 하는 데에는 전혀 도움이 안 된다. 도움이 안 되기 때문에 그야말로 사치이다. 나는 마음의 사치를 알고 있는 남자와 여자가 정말 좋다.
― 야마다 에이미,「소울 뮤직 러버스 온리」의 후기에서
다락으로 대박 낼 거라는 욕심은 내지 않는다. 우리는 돈도 없다. 쥐뿔도 없으면서 모이기만 하면 영화제 걱정에 한숨을 푹푹 쉰다. 슬프고 즐겁기도 하며 그리고 달콤하다. 밥 먹고 학점 받는 데에 전혀 도움 안 되는 사치 부리겠다고 종종 주말도 반납한다. 나는 이런 쓸데 없는 사치를 부릴 줄 아는 다락 사람들이 나는 정말 좋다. 낄낄낄.
2월 6일 밤의 기록 _ 마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