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철학 시간에 동서양 지성사의 흐름을 교수님께서 편의상 두 가지 방법으로 설명을 하셨다. 하나는 인간이 지닌 최고의 선물, '상상想像'의 관점에서였고, 다른 하나는 모든 학문이 바탕을 두고 있는 '사실事實'을 통한 정리였다. 동양철학과 서양철학을 대강 이야기할 때, 가장 큰 차이점으로 보는 것이 앎과 삶의 일치에 대한 부분인데, 동양에서는 철학이 삶에서 나오는 것이었고, 그렇기 때문에 삶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현실에서 유리된 철학은 신뢰를 잃었다. 과거 중국의 관리들이 ㅡ 한국의 선비들이 그러했듯이 ㅡ 철학자인 동시에 앎과 삶이 일치하지 않을 때는 얼마나 혹독한 대가를 받았는지는 익히 들어왔다. 서양철학에서는 플라톤의 이데아론의 그늘 아래에서 현실을 부차적인 것으로 보거나, 감각을 불신했던 그 긴 역사 끝에 16세기가 되고 나서야 '사실'을 학문 탐구의 대상으로 삼는다. 그래서 다들 F.Bacon에 대해서 말을 하는구나.
1. 사실적 관점
신화적神話的 사실 -> 은유적隱喩的 사실 -> 사실적事實的 사실
(종교적宗敎的 사실) (문학적文學的 사실) (과학科學, 철학적哲學的 사실)
2. 상상의 관점
몽상夢想 -> 환상(영상影想) -> 공상空想
몽상이나 영상이 신화적 사실이나 은유적 사실과 조응한다는 것은 한 눈에 보이지만, 공상이 사실적 사실하고 조응한다는 것은 평소에 '공상'이라는 단어의 쓰임을 봤을 때 부적절하다고 생각한다. 어쨌거나 이렇게 보았을 때, 가령 사서四書를 이에 비추어 설명을 해보면, 주자가 '대학大學 -> 논어論語, 맹자孟子 -> 중용中庸'의 순서로 사서를 읽기를 권한 이유를 알 수 있다. 논어에서 공자가 항상 구체적으로 대답하는 것을 보았는가? 공자와 제자들의 문답은 짧고 간결한 동시에 매우 함축적이다. 그리고 맹자孟子는 주자가 말했듯이 우리를 '흥분시키는' 문학적, 은유적인 책이다. 그렇기 때문에 주자는 학문에 길을 제시하는 삼강령, 팔조목의 대학으로 큰 틀을 알고나서 논어와 맹자를 읽고, 마지막으로 중용을 읽어야 한다고 했던 것이다.
신화적 사실을 바탕으로 한 사고는 맹목적이며, 실현 가능성과는 상관없이 막연한 믿음을 주는 어떤 것이다. 은유적 사실은 신화적 사실과 사실적 사실의 중간쯤 되는 것으로, 사실에 발을 짚고 서서 신화적 사실을 꿈꾸는 것이다. 이를 테면 현실과 판타지를 연결시켜서 생각하는 것. 문학작품은 은유적사실을 다룬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지성사도 그렇듯이 사람 역시도 어느 한 부분만을 갖고는 살 수 없다. 사실적 사실에 찌들어 살다 보면 어느새 꿈꿔온 것들은 잊혀지고 인생은 황폐해질 것이다. 그렇다고 마냥 몽상만 하면서 살다가는 쪽박차기 십상이다. 결국은 이런 사실들 사이를 오가면서 통찰하는 능력이 필요하다. 철학자는 꿈꾸는 사람이 아니라, '남들 다 하는 것도 해가면서 다른 것도 더 하는' 사람이며 '앎과 삶을 일치시키기 위해 고민하는' 사람이다.
어렸을 때 꿈꾸는 대통령, 우주조종사, 천사 등등은 신화적 상상력을 빌린 것이다. 이 때의 상상은 현실과 매우 먼 곳에 있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정신적인 즐거움 이외에 별다른 것을 우리에게 주지 못한다. 그렇기 때문에 누구에게나 고독과 시련이 필요하다. 사람은 누구나 조금은 쓸쓸하기 마련이다. 사람이 점점 성장하면서 냉혹한 현실에 부딪히고, 상처를 받으면서 성장을 한다는 말은 다른 것이 아니다. 칼날 같은 현실에 부딪혀봐야만, 거기서 비로소 신화적 상상력을 어떻게 현실에서 실현해 나갈지 고민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