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험이 코 앞이라 그런지 부쩍 다른 일들이 활기를 띄고 잘 돌아가기 시작했다. 이러다가는 생전 안 하던 방청소까지 ㅡ 내 방이 깨끗한 것은 방을 치워서가 아니라 수면 이외의 용도로 거의 사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ㅡ 하게 생겼다. 어제, 그제는 단편 소설과 산문을 몇 편 읽고, 오늘은 수유+너머에서 하는 이만교님의 글쓰기 강좌에 처음으로 나가보았다.
수유+너머에 알바 번 돈까지 탈탈 털어가면서 강좌를 신청한 이유는, 대안공간에 대해 부쩍 관심이 있기 때문에 그 곳의 생리가 돌아가는 방식에 대한 순수한 호기심도 있었고, 강좌 자체에 끌렸기 때문이기도 하다. <결혼은, 미친 짓이다> 영화를 너무나 재미있게 봤기 때문에, 소설 역시 맛있게 읽었다. 그리고 도대체 글쓰기 강좌에서는 뭘 하는지가 궁금했다. 아니, 글쓰기를 누가 가르치는가? 가네시로 가즈키는 법대를 졸업하고 나서 영화와 소설을 줄창 보며 공부했다고 한다, 글쓰기 누가 가르쳐주나? 라면서.
금방 갈 줄 알았던 내 생각과는 다르게, 수유+너머가 꽤나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던 터라 탈탈거리는 마을 버스를 타고 굽이 길을 따라 올라가서 30분이나 늦게 도착했다. 지난 주에는 부산에 다녀오고, 김탕+거품과 노느라고 하루 종일 돌아다녔기 때문에 첫 강좌에 참석하지 못했다. 한참을 헤매다가 계속 강의실 한 군데에서 수업을 하고 있기는 했는데, 도대체가 사진에서 보던 이만교님의 얼굴을 찾을 수가 없어서 망설이다가 자리를 찾아 앉았다.
프로젝터를 놓고 긴 테이블에 모두가 앉아 있었는데, 가운데에서 제일 말을 많이 하시는 분이니 이만교님이 맞는 거 같긴 한데, 예상하던 것과는 너무 달라서 가만히 얼굴을 뜯어보며 다음에 볼 때까지 기억해야지, 했다. 민음사 책 날개에 있던 사진에는 짧은 머리에 굵은 검은 뿔테 안경을 쓰고 다소 우직하게 입을 다문 모습에, 약간 쑥스럼까지 타는 표정이었다. 그런데 실제로 목소리 톤도 약간 높은 편이었을 뿐만 아니라, 코끝이나 입끝이 꽤나 귀여우신 인상이었다. 김영하 님의 라디오를 듣고는 말이 너무 많아서 도대체 게스트인지 사회자인지 헷갈리다가 다소 실망했던 경험에 비춰보면, 역시 글하고 사람은 조금 다른가보다.
어쨌거나 합평은 즐거웠다. 세 편의 글을 합평하면서 여기저기 세밀하게 뜯어보는 재미, 당사자들은 무척이나 괴로웠겠지만 신랄한 코멘트 덕분에 기분이 무척 좋아졌다. 세 작품의 장단점이 각기 달라서 다양한 코멘트들이 나왔다. 평소에 고민하던 것들이 마구 쏟아져 나와서 단어들을 캐치하고 부랴부랴 그 뒤의 말들을 따라가느라 손이 바빴다. 앞으로도 꽤나 재미있는 합평 글들을 많이 읽게 될 것 같은데, 합평 방식에 대해서 조금 더 알아보면 나중에 친구들과 작은 모임을 해도 유용하게 써먹을 수 있을 게다. 이만교님의 강좌를 듣게 되었으니, 이제는 이만교 선생님, 으로 호칭이 변하는 겐가? 나에게 '마리'가 아니라 지은이, 라고 부르는 사람을 오랜만에 만났더니 기분이 묘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