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발표 시간이었다. 한 아이가 '나는 ~ 했다.'라는 문장을 책에 적었던 대로 읽은 후였다. 선생님께서는 "'~했다.'라는 표현은 글을 쓸 때 필요한 거에요. 말을 할 때에는 '~했습니다.'로 고쳐 읽어야 합니다."라고 말씀하셨다. 과연 그것이 맞는 말인지는 모르겠으나, 발표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상대방을 배려하는 말하기를 하려 한다면 '~했습니다.'가 더 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때로 우리는 이렇게 '글'을 '말'로 해석해야 한다.
채팅의 공간에서는 그런 법이 없었고, 교과서를 읽을 때에도 그런 법은 없었다. 타자를 전제로 하는 행동과는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 생각해 보면 채팅창에는 내가 말하고 싶은 '텍스트'가 있을 뿐이어서, 타자는 없다.
그런 소통의 방식에 익숙해져서 친구들과 이야기한다는 것이 불편하다는 생각을 많이 했나보다. 그래서인지 요새는 채팅보다는 전화가 더 정이 간다.
몇 년 전 10월 초입에 메모, 가을.
고등학교에 가게 '되었다.' 17번이었던 나는, 그 날이 17일이라는 이유로 윤리시간에 책 몇 구절을 읽게 되었다. "1. 수신 2. 제가 ... " 라고 써 있는 부분이었는데, "그 중 1번은 ... 2번을 말하자면 ... ~ 입니다."로 바꿔서 한 페이지 가량을 읽어내려갔다. 나의 읽기 방식에 대해서 이상하다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고, 오히려 누가 윤리 프린트 읽는 거 하나에 신경쓸까, 라는 생각에 편한 마음으로 문장과 문단을 따라 입말을 내었다. 다 읽고 나서 윤리 선생님께서 "학생은 알아서 잘도 읽는군."이라고 말씀을 하자, 몇몇 아이들이 참고 있었다는 듯이 간헐적으로 웃음을 뱉었다. 뒤늦게 아이들이 킥킥대던 소리의 이유를 알고 나는 얼굴이 붉어졌고, 이후에는 또박또박하게 모든 글자를 활자 그대로 읽게 되었다.
이후에 내가 글을 읽을 때 나를 이상하게 여기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게 나는 이상했다. 모두가 일제히 같은 얼굴로, 같은 순간에, 같은 손짓으로 책장을 넘겼다. 교실 안의 공기는 미칠 듯이 지루하고 답답했는데, 마치 애초부터 책상에 붙어서 태어난 듯이 모두가 너무나 평안했다. 아무도 말과 글에 대해서 이야기하지 않았다. 책과 말의 일치는 실제적인 것이 아니라, 단순히 활자를 형식적으로 읽기 위한 제스처에 지나지 않았다. 어미의 활용만 같았을 뿐, 책은 책대로 읽고 말은 말대로 놀았다. 단어는 허공에 버려졌다. 그리고 나는, 더 이상 수업 시간에 '튀는' 멍청한 짓은 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번역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았다. 윤리 시간 책 읽기에 대한 낯설음도 곧 잊혀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