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눗방울 불기를 좋아하는 여자와 설거지를 좋아하는 남자가 있었다. 설거지를 좋아하는 남자는 종종 그릇통에 담그고 있던 손을 꺼내어 물에 퐁퐁을 타서 여자에게 주었다. 여자는 끝이 세모난 빨대로 하루종일 비눗방울을 불었고, 내가 태어났다.
여자가 입술을 오오오오오우ㅡ 하여 다소곳이 모아서 빨대에 살짝 키스했고 유리그릇처럼 투명한 비눗방울이 천가지 만가지 동그란 선을 표면에 그리며 공기중으로 퍼져나갔다. 그 중 몇몇은 금방 터지기도 했고, 또 몇몇은 전구처럼 무거운 물방울이 대롱대롱 매달리는 통에 중력을 이기지 못하고 바닥으로 내려가다가 바닥에 맺혔다. 어떤 것은 새침 떼는 바람 때문에 쉽게 깨져버렸지만, 어떤 것은 고무처럼 질겨서 빨대로 건드리면 빨대가 방울 안쪽까지 쑥 들어갔다 나오곤 했다. 여자가 불었던 비눗방울은 하룻 동안 남아있기도 하였고, 일주일 동안 방안을 떠다니기도 했다. 자다가 일어나면 어떤 비눗방울은 눈썹 근처를 서성이며 떠다니다가 여자의 눈꺼풀이 슬며시 움직일 때 부르르 떨리는 눈썹에 화들짝 놀라서 곧 바람을 타고 창가쪽에 머물며 여자가 다시 잠들어 눈썹이 움직이지 않기를, 해님이 떠올라 여자가 자신을 보고 천가지 무지개선이 깨지지 않도록 보살펴 주기를 바랐다.
나는 천 가지 무지개선 중의 하나였다. 내 몸은 언제나 영롱하고 오묘한 색으로 빛났는데, 시간마다 색이 변했기 때문에 설거지를 하는 남자도 눈치 채지 못 했다. 바람이 따귀를 때려 놀라 깨지거나 바닥에 맺혀 슬리퍼에 밟히지 않고 한 달 이상 버틴 비눗방울들 속에서는 아이들이 구슬처럼 맺히기 시작했다. 방울방울방울 송골송골송골, 이라고 말하고 싶지만 사실 우리들은 꿈틀꿈틀꿈틀 뭉텅뭉텅뭉텅, 하고 아무렇게나 생겨났다. 남자는 그날도 설거지를 하고 있었는데, 새로운 퐁퐁으로 여자를 위해 더 질기면서 화려한 비눗방울을 만들기 위해 물이 뚝뚝 흐르는 장갑을 싱크대에 걸쳐놓고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수도꼭지 근처를 떠돌던 방울 하나를 발견했는데, 그 안에 빨간 속눈썹을 가진 아이가 맺혀 있는 것을 보고는 그만 놀라서 물을 틀어버렸다. 빨간 속눈썹을 가진 아이는 물 빠지는 통을 지나 하수구에 파묻혀 버렸다. 그걸 보고 나머지 방울들은 일제히 수근대기 시작했으며, 설거지 밖에 할 줄 모르는 저 멍청한 남자가 언젠가 우리 모두에게 파리채를 휘두를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챙챙챙챙 소리를 내며 부딪히기 시작했다. 그러나 아이를 낳고 싶은 방울은 빨간 고무장갑을 끼고 커친 콧수염을 지닌 불안한 눈망울의 저 사내를 아빠로 받아들여야 할 터였다.
내 방울은 나를 남자와 여자가 볼 수 없는 곳에 머물게 하였다. 나는 되도록 높고 구석진 곳에 숨어야 한다고 줄곧 주장했지만, 방울은 코웃음을 치며 빈정거렸다. "전봇대 밑이 제일 어둡다는 말도 모르니?" 그리고 방울은 빨대를 자르다가 지쳐 소파에서 잠든 엄마의 콧잔등을 지나 빨간 고무장갑을 낀 아빠의 겨드랑이 밑을 통과해 건조대 위에 엎어져 있던 커피잔 밑으로 들어가 숨었다. 어느날 다른 때처럼 빨대를 자르던 여자가 무심코 나를 발견하고서는 눈을 빛내며 소리쳤다. "여보, 이리 와봐요. 우리 아이가 커피컵 아래에서 자라고 있어요!" 그 때 나는 두 달 동안 꽤 자란 모습이었고 솔직히 말하자면 말도 할 수 있었는데, 엄지공주가 그랬던 것처럼 예쁜 아기로 보여지고 싶어서 무지개색 속눈썹에 부러 힘을 주고는 열심히 자는 척 손가락을 빨고 있었다. 비눗방울은 오랫동안 햇빛을 받지 못해 계란 노른자 같은 빛깔을 갖고 있었다. 남자는 자신이 모르는 사이에 여자가 방울과 커피잔 아래에서 바람을 피웠다는 생각에 고무장갑을 벗어던지고는 방안을 왔다갔다 하며 쩔쩔 매다가 마치 뭔가 할 말이 있다는 표정으로 엄마를 바라보고는 했다.
엄마는 이제 조금 있으면 태어나게 될 내 생각에 빨대를 자르는 일도 잊고 하루 종일 방울 옆에서 떠나지 않았다. 방울은 점점 노랗게 익어갔고, 때로는 사과 향기가, 때로는 딸기 향기가 났다. 방안에는 온통 달콤한 과일향이 가득했다. 내가 태어나기 전날, 나는 여느 때처럼 속눈썹을 단정히 빗어내리다가 사과빛으로 발그레해진 볼을 손등에 부비며 엎드려 잠든 엄마를 보고 행복한 웃음을 짓고 있었다. 그런데 두 눈에 눈물을 가득 담고 있던 아빠가 괴로운 듯이 고개를 설레설레 젓더니 처음으로 나를 향해 걸어오기 시작했다. 나는 아빠가 처음으로 나를 위해 자장가를 불러줄 것이라고 기대하며 '괜찮아요'라는 표정으로 활짝 웃어보였다, 애써 보조개가 귀엽게 맺히도록 노력하면서 말이다. 아빠는 미안하다는 표정으로 여전히 울면서 내게 다가왔고 괴롭다는 표정으로 등 뒤에서 파리채를 꺼냈다. "나는 너를 받아줄 수 없다. 너는 내 아이가 아니다. 나는 커피잔 아래에서 내 아이를 받고 싶지 않았다." 순간 방울은 파랗게 굳어버렸고 내 속눈썹은 서리가 낀 듯 하얗게 얼어 파르르 떨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