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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라고 하면 질색을 하던 우리 어머니와 동거를 하는 동시에 어찌어찌하여 고양이를 키우고 있는 내 신세도 참 기구하지만, 그런 엄마한테 살살 볼을 부비대며 집 안의 권력자에게 기생하는 냥이를 보고 있는 심정도 착잡하다. 강아지만 도합 육 년 정도를 키운 터라, 동물들이 집 안에서 가족구성원 간의 권력관계를 파악하는 데에는 나보다 더 빠삭하다는 사실은 이미 눈치 채고 있던 터. '언니'라고 하기도 뭐하고, 그렇다고 '엄마'라고 불리기는 싫은 나와 만두와의 묘한 관계에는 그래서인지 항상 긴장감이 맴돈다. 밥을 주고 화장실을 치워주는 것은 나지만, 어디까지나 집의 권력자는 어머니이기 때문.
요 머리 좋은 녀석이, 고양이는 깔끔한 동물이라 똥오줌은 '지대로!' 가려준다는 우리의 편견을 깨려는 정치적 의도에서였는지, 아니면 깔끔한 고양이들 사이에서 적응하지 못하고 고생하던 소수자였는지, 어느 날부터인가 이 방 저 방 이불에 오줌을 찍찍 갈겨댔다. 처음에는 걱정이 되었다.
"어디 아픈 거 아냐?"
"음 ... 모래를 바꿔서 적응을 못 하는 건가?"
"어떡하지, 내가 잘못하다가 정수를 줬나? 냉수 줬어야 하는 건데 ..."
일주일 경과.
"쟤가 모래에 적응을 못 하나 보다."
"나 제주도 갔다 오면 괜찮아져 있겠지? 그렇겠지?"
플러스 이주일 경과.
"젠장 제주도 갔다 와서 내 침대에서 잠을 잔 적이 없어."
"저 자식(우리 이쁜 아가 냥이)이 엄마 방에만 안 싸!!!"
원래 잘 생긴 사람은 좋아도, 지가 잘 생긴 것을 아는 사람은 꼴불견이다. 만두는 우리 앞에서 그런 류의 인간에 대한 우리의 혐오감을 수면 위로 부활시켰다. 호랑이라도 되는 냥 어슬렁거리는 자태로 태연하게 침대 위에 오줌을 싸고서는 실실 비웃음을 흘리며, '이미 너흰 나에게 빠져들었어. 날 어디로 보내는 것 따위는 생각하지 마.'라는 식의 썩소. 그러고서는 부엌에서 일 하던 엄마 앞에만 가면 발랑 배를 뒤집고, 풍뎅이 뒤집어진 마냥 팔 다리를 휘젓는다. 거북이가 뒤집어져도 저것보다는 볼 만 하겠네. 내 동생과 나는 또 다시 두 배의 부담스러운 썩소로 만두를 지그시 쳐다보는 시간이 점점 길어졌다.
그러나 덕분에 엄마의 트라우마는 많이 치료된 듯 하다.
그리고 오늘 나는 만 원 짜리 목줄을 사왔다. -_- 한 번만 더 싸면 화장실 주변에서 밥을 먹는 고통을 줄 예정이다. 어차피 깔끔한 냥이로서의 자태는 포기한 것 같으니, 쓰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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