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고양이를 한 마리 키우고 있다. 이름이 만두다. 애초에는 못 키울 줄 알았다. 어머니가 고양이라고만 하면 토끼눈을 뜨시며, "고양이? 하이구 야, 차라리 개를 키워라."라고 절레절레 하시는 분이셨으니. 다름이 아니라 어머니의 이런, 고양이에 대한 무조건적인 혐오감은 그녀의 어렸을 적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엄마의 트라우마
본디 어렸을 때 부터 'white pig'라고 불리며 ㅡ 본인은 그렇게 말하지만, 아마도 '흰 돼지' 혹은 '돼지새끼' 정도로 불렸을 거라 짐작한다 ㅡ 바로 윗 언니보다도 큰 덩치, 굳은 심지를 자랑하셨던 육남매 중 막내딸. 그 때 이후로 별로 키가 자라지 않아 요새는 기껏해야 '꽃돼지' 정도로 강등되었으나, 여전히 그 살집들에는 일, 이년을 함께 해서는 나올 수 없는 관록이 베어 있는 것으로 보아 어렸을 적의 풍채가 가히 짐작이 된다. 충청도의 야트막한 산 아래에 아버지께서 마을 분들과 손수 다시 지으신 기와집에, 뒤로 넘어가면 인삼 밭이, 세안하던 비닐하우스 밖에는 포도가, 밭에는 무며 가지며 각종 채소가 널려 있었더라.
앞마당에 아이들을 망아지 풀어 놓듯 하던 노마드 집안에서 자란 어머니는 일곱 살때부터 밭일 나가 계시던 외할머니 대신에 부엌에서 새참을 지어 나가셨다고 하니, 도저히 상상이 안 가지만, ㅡ 어쩐지 일곱 살때부터 밥을 짓던 어머니는 크고 나서도 여전히 밥'만' 짓고 나가셔서 가끔 식구들에게 논란이 되곤 한다 ㅡ 그렇게 가족 전체가 1차 산업에 종사하며 많은 아이들의 노동력이 가사 노동을 위해 활용되던 시절에도 로망은 있었다고 하더라. 부엌에 가끔 찾아 오던 예쁜 고양이 한 마리가 바로 그 주인공.
어느 날부터인가 부엌에 살금살금 기어 들어온 고양이는 하얗고 커다란 소녀가 아궁이 앞에 쪼그려 밥을 주섬주섬 챙기고 있는 것을 목격하게 된다. 배고파서 살짝 밥만 먹으러 들어올 생각이었던 그, 사람이란 본래 위험한 족속이라는 것을 길에서 살면서 몸으로 익히 배워온 터라 곧바로 돌아 나가려던 참에, 뒤에서 살랑대던 손길이 꼬리 끝을 자극한다.
"배고프나? 아, 이거 먹고 가ㅡ."
순간 긴장. 원래 70년대 한국에서 고양이를 좋아하는 한국인이란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그러나 배가 고프면 일단 동물이건 사람이건 허술해지는 법. 부엌 나무문턱에서 안을 빤히 들여다 보던 무심한 고양이의 표정이 그 하얀 살집둥이에게는 불쌍해보였나 보다. 적당히 튕기는 척 하다가 도둑처럼 낼름 받아먹은 반찬은, 양이 적어서 그런지, 텃밭에서 막 난 유기농 채소라서 그런지, 막내딸이 엄마 몰래 새참에서 빼 준 것이라 그런지, 보통 감칠맛이 나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가끔 간식 먹듯이 들르던 집에, 나중에는 시쳇말로 '출첵'하듯이 들락날락 하던거라. 오는 사람 막지 말고 가는 사람 잡지 말라고, 날마다 부엌 문턱에서 기다리던 냥이에게 살집둥이 막내딸은 새참을 차리던 손으로 간식을 주게 된다.
그러던 어느 날, 냥이는 고양이라고 하면 이리저리 발길에 채이기 십상이던 시절에 한 소녀에게 마음을 주기로 결심한다. 출첵을 하며 감칠맛 나던 반찬에 맛을 들였을 뿐만 아니라, 이제는 그 살집둥이에게 어느 정도 정이 튼 것이다! 그래서 하루는 자신도 소녀에게 무언가를 주어야겠다고 결심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