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1 헌법(1) 과제2
서준식의 글을 읽고 기본권의 사회적 기능에 대하여 논평하시오.
-_-
‘양심과 사상의 자유를 인정받아야 한다!’
기본권의 명제는 단호하지만 그만큼 많은 이들에게 의구심을 안겨줄 수 있다. 그와 관련된 기준이 명확하지 않기 때문에, 명확한 기준을 내리기 위해서 언어를 치밀하고 전문적으로 다듬는 법적 언어에 익숙해진 사람에게는 낯설게 다가올 수 있다. 그러나 같은 말도 뒤집어 보면 다른 것, 기본권을 발명한 사상가들은 바보가 아니었다. 그들은 좀더 치밀하기를 요구하는 사람들에게 ‘인간이라면 당연히 보장받을 수 있는 기본적인 토대가 되는 권리’를 지켜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억압받으면 안 돼, 이유 없이 죄의식을 안고 살거나 피해를 받아서도 안 돼, 라고 말하고 싶었을 것이다. 이것을 학문적인 언어로 번역하여 토대(foundation)가 있다는 굳건한 믿음 하에 ‘기본권’이라는 개념을 발명했다. 누구도 헌법에 명시되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기본권을 침해 받지 않는다.
기본권의 기능은 크게 주관적 공권과 객관적 규범으로서의 기능으로 나누어 볼 수 있지만, 서준식과 관련하여 기본권을 청구할 권리로 해석하겠다. 사상가들이 더 열심히 닦아서 발전시킨 이론 체계를 관찰해보면, 기본권은 어떤 ‘행위’(법률에서는 가시적으로 드러난 결과에 대하여 다룬다.)를 청구할 권리로 해석할 수 있다. 그것은 소극적 행위(부작위행위), 혹은 적극적 행위(작위행위)의 청구이다. 소극적 행위는 제1기본권의 개념과 뜻을 같이하는데, 자유로운 상태를 추구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도 있고 저것도 있다. 이 상태에서 나는 이것과 저것을 선택한다, 혹은 선택하지 않는다. 이를 위해서 나에게 어떠한 것을 강요하거나, 금지하는 행위를 하지 않도록 청구하는 것이다. 적극적 행위는 제2기본권인 사회적 기본권의 개념과 연결되는데, 실질적으로 법적 주체가 대상에게 어떠한 행위를 하도록 요구하는 권리를 말한다.
이론적으로는 그렇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이와 다르게 기본권을 침해 받으며 살아간다. 너무나 당연한 말이지만, 사람은 시스템이나 법처럼 인위적이고 명쾌하게 만들어진 간단한 존재가 아니다. 누구도 한 명의 그 자신으로 환원될 수 없다. 이 점에 있어서 우리는 현대철학자들에게 빚진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절대적이고 초월적인 개인이 아니라 맥락에서 새로 구성되는 존재이며, 그렇기 때문에 경험을 통해서 다양한 이데올로기를 전신에 새기며 살아갈 수밖에 없다. 사람이 살기 위해서는 물질적으로 입고 먹는 것뿐만 아니라 사상적으로도 자신의 도덕적 감정을 포함한 감정적 기반 전체를 정당화시킬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제 나는 한 사람을 한 명으로 보지 않는다. 그 안에는 무수히 다른 표정과 동정하고 기뻐하는 모습, 비틀어지고 추악한 사람이 있다. 사람은 계속 변한다. 사람을 어느 순간 고정된 존재로 박제화시키면 그 때부터는 웃지 못할 희극이 발생한다.
서준식은 말한다, 당신들은 나의 역사를 알지 못한다고. 그는 인간이면서 인간이 아닌 단순한 처분대상으로 박제되는 상황의 웃지 못할 희극에 대하여 말한다. 서준식 앞에서 기본권의 소극적 권리를 청구할 수 있는 기능은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 이것도 있고, 저것도 있다. 나는 어떤 하나만 선택하지 않는다. 나에게는 자라온 맥락에 따라 다양한 사상을 접할 기회가 있었고, 그렇기 때문에 나의 사회주의는 당신들이 생각하는 편견으로 주조된 사회주의가 아니다. 단순한 이분법에 온통 나라가 미쳐 겁먹던 시절에 ‘막스’가 온전히 읽히지 못 했음은 당연하다. ‘사회주의’라는 단어 하나에 담긴 그 무수한 원한과 이름 없는 경멸 때문에 서준식은 글을 쓰고 있었다.
법은 쓰려고 만든 것이다. 함께 좀더 잘 살아보자고 만든 것이 아닌가? 그런데 사람들은 종종 너무나도 쉽게 그 사실을 잊어버린다. 고시원에서 밤낮없이 법전을 외우다가, 권력에 잔뜩 겁먹고 움츠러들어서, 태어나보니 그냥 법이 원래 있길래 신경도 안 쓰다가, 먹고 사는 데에 법이 도움이 되지 않아서 등등. 시스템화된 제도를 이용하기 위해서는 내가 그것을 어디에 어떻게 쓸 것인가에 대한 고민과 배경에 대한 고려, 그리고 결정적으로 그게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 기본권이 당당하게 명시되어 있으면 뭐하랴, 결국은 사람이 살아가는 문제인 것이다. 기본권의 기능이란, 사람들이 서로에 대한 최소한의 배려와 존중의 마음을 가질 때만 작동할 수 있다.
손에 잡히지 않는 부분에서 벌어지는 일들 때문에 이유 없이 개죽음을 당하거나 젊은 시절을 감옥에서 썩어야 하는 말도 안 되는 범죄가 떳떳하게 벌어지는 이유는 뭔가? 민주화 20년 주기라고 이한열 열사의 추모제가 떠들썩하다. 어제 TV를 틀어보니 논객으로서의 일 힘들다고 고개를 절레절레 젓던 진중권이 백분 토론에 나와 손짓발짓해가며 이야기까지 하고 있다. 여기서 다음에 무슨 말이 올까? ‘그런데도’ 혹은 ‘아직도’라는 부사 뒤에 ‘기본권이 지켜지지 않고 있다니!’라는 탄식? 그러한 부사는 맞지 않는다. 수면 아래에 가라앉아 있던 검은 물들이 바닷속 땅을 얼마나 물컹물컹 훑고 지나다녔는지는 모를 일이다, 수면이 조금씩 드러나기 시작할 때는. 기본권의 사회적 기능은 사람들이 그 물컹물컹한 덩어리를 바라보며 무언지 궁금해할 때 사용할 수 있는 아주 유용한 돋보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