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에 수업이 끝나고 도서관에서 책을 보고 있는데 H양에게 전화가 왔다.
"나 청강하러 너희 학교에 왔는데 수업 끝났다. 어디냐."
"어? 나 도서관."
"그럼 내가 그리로 갈게."
"그래, 그럼."
이래놓고 둘이 아주 자연스럽게 만나서 커피샵에 갔다. H양은 방학 동안 온 유럽과 지방을 여행다녀서 그런지 아주 바람직하게 피부를 그을린 대학생의 이미지를 얻게 되었다. 그런데 이상한 점은, H양과 나는 고등학교 1학년 때 한 번 같은 반이었을 뿐, 그 뒤로는 어떤 연고도 없었는데 불현듯 그녀는 나를 떠올리고 아주 자연스럽게 전화를 했다는 사실이다. 더욱 신기한 것은 나도 H양과 마치 죽마고우인 양, 아무렇지도 않게 만나서 역시나 즐겁게 수다를 떨었다는 것. 3시간 정도를 이야기하다가, 너랑 내가 이렇게 대화를 하다니 말도 안돼, 말도 안돼, 난 정말 너에게 관심도 없었어, 라는 엉뚱한 말을 쉼표 삼아 찍어가며 나는 커피를, H는 녹차를 홀짝거렸다.
"근데 내가 여기서 너랑 왜 이러고 있냐?"
"그러게. 나 1학년 때 너가 어울리는 친구들 별로 안 좋아했는데."
"그러냐? 나는 1년 다 지날 때까지 솔직히 너가 있는 것도 몰랐다. 너가 존재감이 없었어."
"그래? 그건 좀 충격인데 ... 하긴 내가 그 때 좀 암울한 시기였지."
그리고 그 친구는 연신 자기 학교에서 어떻게 지내는지에 대해서 이야기했는데, 나는 내가 다니는 학교에 별로 관심이 없었으므로 생각했던 것보다 좋은 것 같아서 그런 대로 만족하며 지낸다는 말을 했다. 사실 나는 학교에서 일명 아싸(아웃사이더)로 지내고 있었기 때문에 별로 이야기할 거리도 없었다. 그래서 나는 주로 학교 밖에서 하는 활동들과, H와는 다르게 확고한 관심분야가 서지 않기 때문에 생기는 고충들과 역할갈등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H양은 학교에서 성향이 맞지 않는 사람들이 뭉텅뭉텅 모여 있는 곳에서 꽤나 마음고생을 하고 있었다. 어딜 가든 별별 인간이 다 있는 것은 정말 맞는 말이다. 지금 생각해보니, 많은 이야기들이 있었지만 제일 코믹했던 것은 H양이 '더러운 애'로 낙인 찍히게 된 이유였다.
"아니 글쎄, 내가 '더러운 애'라고 소문이 났다니까."
"뭐? 니가 왜?"
"청바지 있잖아, 청바지. 그게 원래는 노동자들이 입던 거잖아? 그러니까 청바지는 원래 잘 빨아입지 않고 막 입었던 옷이고, 실제로 그렇게 입어야한다고 생각하는데."
"응, 맞아."
"그치? 근데 그래서 내가 청바지를 안 빨고 입고 다녔더니, 나보고 더럽다는 거야. 그러더니 어느새 그게 소문처럼 퍼져서 내가 '더러운 애'가 된 거야. 진짜 황당하지 않아?"
"진짜 웃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