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일드 플라워의 상냥해지기 프로젝트"
"들꽃에게는 들꽃 나름의 철학이 있다."
현대철학 강의실에서 교수님이 그 특유의 고갯짓을 갸우뚱, 손짓은 단호하게 '그렇지 않겠어요?'라신다. 요즘 한참 꽂혀 있는 문장이다. 지인 중 한 명이 전에 내게 같은 뜻으로 "니체를 읽지 않아도 니체보다 더 니체답게 사는 사람이 있지"라는 말을 던졌는데, 아무래도 니체보다는 들꽃이 더 향긋하지 않은가. 좋은 말이다. 멋져버려!
들꽃을 영어로 하면 와일드 플라워란다. 와일드 플라워라니! 누가 우리 들꽃을 와일드하게 만든 것이란 말인가, 흑. 영 마음에 들지 않는다. 본격적으로 와일드 해볼까? 비슷하지만 조금 다른, 잡초를 뜻하는 'weeds'는 어떨까?
잡초 雜草 Weeds: 경작지, 도로 그 밖의 빈터에서 자라며 생활에 큰 도움이 되지 못 하는 풀로, 여기에는 목본식물까지도 포함시키는데, 작물의 생장을 방해하고 병균과 벌레의 서식처 또는 번식처가 되고 작물의 종자에 섞일 때는 작품의 품질을 저하시킨다.
모을 잡, 자를 써서 아무렇게나 헝클어져 있는 머리채를 연상시키는 잡초는 태생적으로 바이러스 같아 도대체가 도움도 안 되며 괜히 열심히 살다가는 여기저기에 나쁜 종자나 뿌리고 다니는 팔불출처럼 묘사되어 있다. 들꽃은 야인의 뉘앙스,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을 것 같은 자유로움과 작고 애처로운 몸짓의 무언가를 연상하게 해서 나그네들에게 애용되는 반면에, 그 누구도 '너는 마치 잡초같구나!'라는 말을 칭찬으로 받아들이지는 않는다. '우리 강아지, 아주 그냥 잡초같이 잘 생겼구나!' 할머니, 곤란합니다
정민구 감독이 만든 애니메이션
에서조차 잡초는 할머니에게도 귀염받지 못할 것 같은 대접을 받는다. 잡초는 태생적인 이유만으로 리스트에서 제외되기 십상이다. 아무리 고개를 기웃거려봤자 이리 치이고 저리 치여서 혼자 걷게 된다. 선인장은 가시라도 있고 꽃이라도 피우지, 너는 도대체 뭘 하는 거냐? 라는 핀잔에 생의 모든 우울함을 짊어진 듯이 터벅터벅 걷는다.
누군가에게 사랑받을 수 있다는 기대에서 땅 위로 나온 우리 잡초는 여기저기서 상처받지만, 탓할 것은 웅덩이에 비친 자신의 모습밖에 없다. 내 머리에 솟아있는 것은 무성한 풀떼기 뿐이구나. 늦잠을 자다가 한참 늦게 일어난 꽃은 꽃이라는 이유만으로도 그런 우울함을 지고 살지 않아도 된다. 꽃은 잡초가 절망하고 간 그 물웅덩이에 발을 담근 것만으로도 화사한 꽃을 몇 송이 더 피울 수 있다. 잡초는 평생 가도 피우지 못 할 그 꽃을, 그렇게 쉽게 말이다.
그렇지만 꽃을 피우면 벌들이 떼지어 몰려와 그를 괴롭히기 시작한다. 동시에 억울하게 떠밀려 절벽으로 떨어진 잡초는 민들레 꽃씨를 타고 날아오른다. 풍성한 민들레씨는 어떤 꽃보다 아름답게 날아오른다. 바람을 타고 멀리 노을이 번지는 곳까지 닿을 듯이, 민들레가 된 잡초는 살랑이는 바람을 타고 들꽃이 되었다.
절망의 걸음도 긍정의 씨앗이 될 희망은 있다. 반대로 뜻밖의 행운은 아무런 예고도 없이 우리를 내치기도 한다. 쑥스러운 말이지만, 이렇듯이 삶은 기이하고 유연하게 흘러가는 싯구처럼 망설임이 없다. 쥐구멍에 볕 뜰 날이 있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볕 안 뜨면 어쩔껴? ... 아무도 잡초에게 희망을 강요하지 않는다. 못 생기고 꽃 못 피워도 꿋꿋하게 한 번 살아보라고 비아냥거리지도 않는다. 다만 그저 그럴 뿐이다. 모두에게 나름대로의 리듬이 있고, 철학이 있다. 정말 그런 것이다.
는 헛된 희망을 강요하거나 기다리라고 말하지 않는다. 살짝 보여줄 뿐이다. 이런 센스에 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