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도르노가 지적했듯이 현대의 예술은 철학과 상보적인 관계를 이루고 있다. 오늘날의 전시회 카탈로그에서 작품의 빈약성과 철학의 풍성함을 보는 것은 이 때문이다. 오늘날 비평은 작품 이후에 오는 것이 아니라 작품의 성립 자체에 참여한다. 과거에는 어떤 대상이 작품인지 아닌지 판별하는 기준이 작품 밖에 미리 존재했지만, 오늘날 예술은 자신을 예술로 만들어주는 정의를 자기 안에 품고 나와야 한다. 뒤샹이 소변기로 만들어낸 것은 바로 이 새로운 예술의 정의다. 오늘날 예술에 '주제'라는 게 남아 있다면, 그것은 아마도 '내가 왜 예술인가'하는 것이리라. 이 자기 지시성self-referentiality 때문에 오늘날 예술은 비평에 결정적으로 의존할 수밖에 없으며, 이 때문에 원하든 원하지 않든 철학과 밀접한 공모를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 <진중권의 현대미학 강의> 中
전시를 다닐 때마다 작가들의 코멘트를 보면 대개 너다섯 줄을 한 문장으로 써놔서 머리가 아팠다. 게다가 대부분의 경우 돌아나올 때에는 작품의 빈약성 때문에 항상 아리송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최근에 다녀온 '서울국제미디어아트비엔날레 Dual Realities'의 경우에는, 나오는 길에 불쾌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는데 왜 기분이 나쁜지 말로 설명할 수가 없었다. 나에게는 그런 언어가 만들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갈수록 언어를 만드는 작업이 필요하다는 점을 느낀다. 그래서 유려한 문장보다는 거친 문장이 끌리고, 어려운 단어일수록 도발적으로 보이는 것일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