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TICE  |  말많은마리 070808
눈물을 보이지 않았지만 그녀의 눈은 아직 울고 있었다. 마음속 깊이 서운했던 모양이다.

그 때 깨달았다.
심장을 밑에서부터 걷어 채인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의 긴 손가락 밑에서 신조 교코가 미소짓고 있었다.

뱀이 왜 껍질을 벗으려는지 알고 계세요?
열심히 몇 번이고 허물을 벗는 동안 언젠가는 다리가 나올 거라고 믿고 있기 때문이래요. 이번에야말로, 이번에야말로 하면서요.
이 세상에는 다리는 필요하지만 허물을 벗는데 지쳐버렸거나, 아니면 게으름뱅이거나, 방법조차 모르는 뱀은 얼마든지 있다고 봐요. 그런 뱀한테 다리가 있는 것처럼 비춰지는 거울을 팔아대는 똑똑한 뱀도 있는 거죠. 그리고 빚을 져서라도 그 거울을 갖고 싶어하는 뱀도 있는 거구요.
- 미야베 미유키, 화차(火車)



화차를 카페에서 다 읽고 왔다. 가슴에 상처를 내는 이야기.

세상의 좋은 면을 알아갈수록 그 뒤에 검게 비치는 더러운 그림자까지 함께 알아야하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화차는 나에게 무척 잔인한 소설이다. 성실하고, 근면하고, 행복해지고 싶어서, 빚을 내서라도 환상의 거울을 사고 말 그런 사람들이 치이고 치여서 밑바닥까지 가게 되는 거라고. 언제쯤 난 가볍게 읽고 생각할 수 있을까.

뱀이 허물을 벗는 게 자꾸 벗다보면 다리가 나와서 그럴 것 같다고 ... 뭐가 다를까. 나도 그렇다. 나도 그래, 나도 그렇다. 하루는 정말 더럽고 지겨운 세상, 여자로 태어나서 아차하면 팔리는 세상, 검게 뭉클거리는 심연을 발 밑에 두고 그 위에서 살얼음을 딛듯이, 두다리가 딛고 서 있는 땅은 절대 무너지지 않을 것처럼 착각하고 싶어서, 착각하면서 얇은 유리막 안에서 산다. 이러나 저러나 어디서 구르나 그 더러운 웅덩이에 발을 담가본 적은 없는 것이라고, 그 때의 일도 그 전의 일도 또 다른 일도 그에 비하면 훨씬 더 안전한 것일 거라고.

이런 세상에서 어떻게 사나 더럽다 더러워, 하다가도 다음 날 눈을 뜨면 또 뭔가 나아져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것이다. 내 안에서는 아무리 소용돌이가 휘몰아쳐도 바깥 세상은 변하는 것이 없으니, 나는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간밤의 악몽을 꿨던 것처럼 샤워를 하고 밥을 먹고 지난 밤의 기억을 떨쳐버리고는 또 레포트 걱정과 영화제, 친구들, 애인 생각, 이런 것들로 하루를 분주하게 채울 준비를 하며 신을 신고 집을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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