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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에게는 힘들 때만 연락하게 된다. 오랜 세월은 역시 무시할 수 없나 보다. 워낙 있을 이야기, 없을 이야기를 다 털다 보니 어쩌다 가족보다 더 친한 사이가 되었다. 대학에 와서 서로의 취향이 잘 맞지 않는다고 느껴서 연락하는 일이 드물어졌다. 그러나 그것은 취향의 문제일 뿐이지, 사람과 관계에 대한 문제라고 하기에는 너무 피상적이다. 언제나 나를 챙겨주면서 내가 챙겨주지 못하는 친구에 대한 빚 같은 마음이 가슴 한 켠에 쓰리게 남아있다. 쓰린 감정은 내가 힘들 때만 떠오르니 정말 이 이기적인 본성의 싸대기를 한 대 갈겨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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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가 깨질 듯하다. 머리가 깨지면 무엇이 흘러 나올까? 상상해보면 어떤 사람들 머리에는 똥만 그득그득 들어차 있을 것 같고, 어떤 사람들 머리에는 기하학적으로 훌륭한 결을 지닌 호두 같은 뇌가 있을 것이다. 그럼 내 머리를 깨보면? 아무 것도 없다. 호두는 깨서 먹기라도 하지, 가끔 보면 인간은 호두보다 쓸모가 없다. 고작 하는 짓이 망치를 호두 정수리에 내리 꽂아놓고 한 쪽에서는 견과류의 칼로리를 계산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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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그프로를 보고 있기가 점점 힘들어진다. 웃음은 내게 있어서 긍정의 원천이다. 그 웃음을 방송이라는 산업에서 기획한다는 점과 대중심리를 정확하게 짚어내는 개그맨들을 보고 있으면 돗자리를 까세요, 하며 박수치고 싶다. 그런데 왜 점점 개그프로 보는 것이 '참거나,' 혹은 '견뎌야 하는' 일이 되는 걸까? 웃찾사를 보는데 정말 똥 같은 대사들이 많아서 마시던 둥글레차가 올라오는 줄 알았다. 오죽 쳐댈 것이 없으면 고작해야 '인어공주 같은 몸매'의 그녀가 '생선 같은 얼굴'을 지녔다면서 정색을? 그딴 개그에 웃어주니깐 계속 그런 쓰레기만 나오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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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꾸 '괜찮아'라고 하면 정말 괜찮은 줄 알고 사람들이 자신을 배려하지 않는다는 누구의 말. 적당히 투덜거릴 줄 아는 것도 기술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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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이상 아랍어로 된 소설은 읽을 수 없을 것이다. 아랍어는 이미 사어死語가 되었다. '한국어'로 뭔가를 끄적이는 이들에게 감사한다. 한국어를 모국어로 쓰는 사람 수를 보면 글 써서 먹고 사는 분들의 용기란 실로 전투력에 비할 만한 것이다. 개중에서 한국어로 된 '문학'을 섭취하는 이들은 점점 더 줄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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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정일님의 시집을 읽는다. 시집은 사서 볼 것.
지하 인간
내 이름은 스물두 살
한 이십 년쯤 부질없이 보냈네.
무덤이 둥근 것은
성실한 자들의 자랑스런 면류관 때문인데
이대로 땅밑에 발목 꽂히면
나는 그곳에서 얼마나 부끄러우랴?
후회의 뼈들이 바위틈 열고 나와
가로등 아래 불안스런 그림자를 서성이고
알만한 새들이 자꾸 날아와 소문과 멸시로 얼룩진
잡풀 속 내 비석을 뜯어먹으리
쓸쓸하여도 오늘은 죽지 말자
앞으로 살아야 할 많은 날들은
지금껏 살았던 날에 대한
말없는 찬사이므로.
시집
시로 덮인 한 권의 책
아무런 쓸모 없는, 주식 시세나
운동 경기에 대하여, 한 줄의 주말 방송프로도
소개되지 않은 이따위 엉터리의.
또는, 너무 뻣뻣하여 화장지로조차
쓸 수 없는 재생 불능의 종이 뭉치.
무엇보다도, 전혀 달콤하지 않은 그 점이
내 마음에 들지 않는다.
시로 덮인 한 권의 책, 이 지상엔
그런 애매모호한 경전이 있는 것이다.
그 어떤 신을 위해서랄 것도 없는.
하지만 누가 정사에 바쁜 제 무릎
위에 얄팍하게 거만 떠는
무거운 페이지를 올려놓는다는 말인가?
그래, 누가 시집을 펼쳐 들까
이제 막 연애를 배우는 어린 소녀들이,
중동에 있는 친구에게 편지를 쓰는,
아니라면 장서를 모으는 수집가의
희고 가느다란 손가락이
뒷장을 열어 출판 연도를 살펴볼까?
양미간을 커튼같이 모으며 이것
굉장하군! 감탄하는
끈끈한 조사와 형용사로 단어와 단어 사이를
교묘히 풀칠하는 당신의 시.
그 따위 것을 누가 찾아 읊조린단 말인가
절정의 순간에 한 줄의 엘리엇을 읽어주어야만
만족해하는 성도착증의
젊은 부인을 위해? 혹은
강단에서 시를 해석하는 문법학자의
조심스레 미끄러지는 입술에서나
그것은 팽개쳐질까. 아무런 열의도 없이
이해하겠어요, 이 작가의 콤플렉스를?
지루하게 외쳐대는 오후의 강의 시간에나
시인과 시인이 맞붙어 싸우는 이
암호부를 이해하기 위해 우리는 얼마나 두터운
안경을 맞추어야 할까. 그리고 얼마나
마음 멍청하면 사게 되는 것이냐, 아무리 찾아도
국립극장 초대권 하나 붙어 있지 않은
이 한 권의 책을. 놔둬 버리지
서점의 제일 높은 판매대에 꽂혀
먼지가 만지도록 그냥, 놔둬 버리지
제일 아래쪽 밀대가 지나다니며
까맣게 구정물이 먹도록. 구석을 찾아
이리저리 천대받도록 그렇게 놔둬
버리지. 이 따위, 엉터리의
방
방이 하나면
근친상간의 소문을 무릅쓰고
어머니와 아들이 함께
지낸다. 아니
아들과 어머니 사이에
진짜 근친 같은 일이 벌어지기도 한다
방이 하나면
쌀통 위에,
책꽂이를 얹는다. 그리고
교과서의 줄을 잘 맞추어둔다
어머니, 책더미 위에는 더
무엇을 얹어야 방이
넓어질까요?
방이 하나면
벽마다 잔뜩 대못을 치고
비에 젖은 옷을 걸어 말린다.
개미들은 고개를 갸웃거리겠지
집터가 왜 이 모양일까
하고서
방이 하나면
세상이 우리 식구에게 빌려주는
방이 하나면
아들의 친구는 저녁이 되기 전에
돌아가거나 방문 밖에
새우잠을 잔다. 친구 곁에
아들도 잔다. 찬 서리에 젖으며
두 사람은 꿈속에서 익사한다
그리고 여자친구와 몰래
한 이불을 덮을 수는 없겠지.
방이 하나면
어린 연인들은 여관을 찾아
떠다니리. 손목을 잡고
어슥하게 떠다니리
방이 하나면
방이 하나면……
아아 개새끼!
나는 사람도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