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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의주의나 나르시시즘으로 빠지지 않는 선량한 날카로움과 이상주의, 그런 것에 나는 강렬하게 끌린다.
(Red shadow에서 인용, 강조는 mari)
- 날카로운 지성을 가진 사람은 매력적이다. 그 날카로움이 회의주의나 나르시시즘으로 빠지지 않은채 선량하며 선의에 찬 이상을 지니고 있을 때는 더욱 매력적이다. 아름답고, 건강한 사람. 따분하다는 것은 편견과 융통성 없는 사고에서 나오는 것이지 결코 '건전함'에서 비롯되는 것은 아니다. 황폐하고, 욕망 추구로 바쁜 세상에서 건전함을 오래도록 고수하고 있다는 것은 내면의 강함을 반영한다. 그래서 나는 건전하다고 말할 수 있는 올바른 이상주의에 대해 비하하는 것에 동의하지 않는다. 그 반대로 제시되는 데카당이 사실은 훨씬 쉬운 방식이기 때문이다. 정신이 고결하고, 인격이 고매한 사람을 보면 그 맑음에 찬탄하여 한없이 빠져들게 된다. 넓은 모래밭에서 드물게 만날 수 있는 알록달록한 빛깔의 조개껍질 같다. 깊이 사랑했던 사람을 이제서야 만난 것 마냥 가슴이 뛴다. 아름다운 사람들이 빛을 잃지 않고 간직한 채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많은 위안이 되는지 모른다. 내 삶의 인연과 깊이 연관을 맺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설사 상대방들의 삶에서 내가 그리 큰 의미가 아니라고 할지라도, 지켜보면서 위로받고 힘을 얻는다. 차갑고, 어두운 하늘에 희미하게 반짝이는 빛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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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급의 한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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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과 놀이의 불일치, 에 대한 고민. 냉혹한 현실에 발을 딛고 하늘을 볼 수 있을까? 바닥이 영영 깨져버릴까봐 다리가 후들거려 고개를 치켜들 여유가 없다. 그렇지만 그런 여유가 필요하다는 걸 스스로 너무나 잘 알고 있어. 지키지도 못 하면서 공허하게 뱉는 단어들이 얼마나 많은지. 어리광 부리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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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통이 전혀 안 되는 현실. 이야기는 밖으로 돌고, 혀 끝의 단어들은 안으로 말려 들어가 내 속을 뒤집고 있다. 부족한 용기. 타인조차 객관화된 시선으로 바라보지 못하면서 내 자신은 어떻게 바라볼 수 있어? 아버지에 대한 나의 시선. 냉소적인 사람은 절대로 되지 말자, 한철 내내 떨었던 만큼 세상을 따뜻하게 감싸는 사람이 되자, 라고 결심한 주제에 주변 사람들에게 전혀 사랑을 주지 못하고 있다. 이대로 땅 밑에 발목 꽂히면 나는 얼마나 부끄러우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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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족한 내 자신을 사랑하게 해주는 당신에게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