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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4/11 :: 대답버전 (19)
2007-1 김선영 교수님
현대철학의문제

프로이트 아저씨의 겸손하게 살기 강좌

0620916 조지은

카프카는 죽기 전에 자신의 저작들을 모두 태워달라고 친구에게 말했다. 그러나 고맙게도 카프카의 말을 듣지 않고 원고를 살려준 그 친구 덕택에 우리는 지금 “너도 카프카 좋아하니?”라는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게 되었다. “책을 태워달라고 한 건 카프카가 아니라 프로이트였어야 하는 건데.” 그러게 말이다. 프로이트 아저씨는 무슨 할 말이 그리 많은지 생각날 때마다 쓰고, 밥 먹다 쓰고 꿈꾸다 쓰고 진찰하다 쓰고 삐쳐서 쓰고, 쓰고 또 쓰고, 그렇게 해서 엄청난 양의 저작을 남겼다. 이후에 멋쟁이 제자인 라캉은 저작을 단 두 권 밖에 남기지 않았지만 “글자가 살해한다” “무의식은 타자의 담론이다” 등 도저히 한 번에 알아들을 수 없는 말들을 했다. 처음에는 당연히 프로이트가 읽기 쉬울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그것은 오산이었다. 프로이트 아저씨는 소설을 쓰고 계셨다. 영감을 받으면 벌떡 일어나서 쓰는 것이다. 그래서 프로이트의 글은 재미있으나 읽고 나면 중언부언한 것들이 많아서 겹치거나 정리되지 않고 께름칙하게 남는 부분이 많다.

프로이트가 글을 썼던 방식처럼 그의 글을 읽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 께름칙하게? 정신 바짝 차리고 정독하며 ‘밑줄 쫙, 돼지꼬리 땡땡!’ 하면서 읽을 수는 없는 텍스트다. 그가 서술하는 것들의 전제가 되는 내용들, 스스로 과학자라고 생각하며 정교한 설명을 하기 위해 수정했던 이론의 이음새 등을 기억하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특기할 만한 점 중에서는 무의식, 의식이 분열되어 있다는 정신분석학의 뿌리가 되는 발상과 후기의 자아, 이드, 초자아론이 있다. 이 양쪽은 프로이트 이후에 정신분석학파의 발전과도 밀접하게 연관된다. 안나 프로이트를 중심으로 한 미국의 자아심리학파는 자아, 이드, 초자아론을 그의 최종 이론으로 받아들여 임상 케이스에서 자아를 강화하기 위한 치료를 한다. 대상관계의 멜라니 클라인을 중심으로 한 영국의 정신분석학파 역시 프로이트의 후기 이론을 확장하는 연장선에 있다. “프로이트에게 돌아가자!”고 외쳤던 프랑스 정신분석학의 라캉은, 우리가 프로이트에게 주목할 점이 의식-무의식의 분열에 대한 그의 통찰이라고 보았다.

이 중 내가 프로이트에게 주목하는 이유는 그가 인간 내부의 ‘분열’에 주목했다는 점이다. 중언부언한 프로이트 아저씨의 다른 이론들은 모두 차치하더라도, 그 모든 이론의 뿌리가 ‘무의식’이라는 개념에 있다는 점을 상기해본다면, 용기 있는 발언을 했던 사람임에는 틀림없다. 그는 어느 교과서에나 적혀 있는 ‘인간은 존엄하다’는 말, 신에게서 권리를 부여 받은 만물의 영장이라는 말을 과감하게 깨트렸다. 종종 ‘운명’이라고도 표현되는 것들의 밑에는 거대한 ‘무의식’의 뿌리가 있다고, 그렇기 때문에 무의식을 알기 전까지는 결코 인간이 자기 자신을 다 알았다고 말 할 수 없다고 말이다. 이러한 무의식은 본능이 득시글대는, 언제든지 의식을 삼켜버릴 수 있는 검은 그림자처럼 묘사된다.

이러한 무의식이 생기는 것은 인간이 ‘억압’을 하기 때문이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 자신은 살아남기 위해서 억압을 하고 있다고 한다. 아이는 태어나서 좋아하는 것만을 추구하려고 하지만 인간은 사회적 존재이기 때문에 그러한 쾌락들 중에서 도덕적, 사회적으로 절대 용납될 수 없는 성질의 것들은 무의식에 가라앉는다. 그렇기 때문에 프로이트를 시작으로 한 정신분석학은 인간의 유아기가 그의 전생애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보았다. 또한 신경학자였던 프로이트는 환자가 뇌의 특정 부분을 자극받았을 때 아주 사소한 부분이더라도 과거의 한 장면을 눈 앞에서 생생하게 재현하듯 기억하고 그 때의 감정을 똑같이 느낄 수 있다는 것 역시 이러한 무의식론의 연장선 상에서 설명한다. 여기서 전의식이라는 개념이 등장하는데 이 때문에 억압은 1차 억압과 2차 억압으로 나눠진다.

초기에 의식-무의식의 분열성과 대립성에 주목하면서, 강렬하게 금지된 욕망이나 도덕적이지 못한 것들을 무의식 차원으로 끌어내리는 것은 흔히 우리가 말하는 완전한 억압의 1차 억압을 가리킨다. 2차 억압은 의식과 전의식 사이에 있는 검열 체계를 가리키는 것인데, 이것은 지금 당장 의식이 주목하지 않는 부분이더라도 언제든지 기억을 끌어올 수 있는 어느 정도 허용되는 것들이다. 의식은 특정 부분만을 비추고 자극을 끊임 없이 받아들이지만, 의식의 영역에서 벗어난 내용들은 곧바로 전의식으로 내려가고, 만일 이것이 자신이 감당할 수 없는 크기의 욕망이거나 고통일 경우에는 무의식으로 억압된다.

프로이트는 위상학적으로나 지형학적으로 무의식에 대해 여러 가지 방식의 묘사를 시도하면서 그의 이론을 조금씩 발전시켜 나간다. 인간들이 대륙에서 지금처럼 판을 치고 살아도 아직까지 들어가지 못 하는 수심의 해저가 있다. 그 깊은 곳에 무엇이 있는지도 모르면서 우리는 땅 위에서 밥을 먹고 친구를 만나며 걸어다닌다. 그러다 땅이 쩍 갈라지고 마그마가 솟아오르면 대재앙 앞에서 무력하게 당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무의식에는 의식과 다르게 시간도 없고, 현실적이지도 않으며, 쾌락원칙의 지배를 받아 이루고 싶은 각종 소망과 본능 욕구들이 두둥실 떠다니고 있다. 무의식은 의식으로는 전혀 인식할 수 없으며 종종 은폐기억을 사용하여 자신의 모습을 감추거나 변장하기도 하지만, 상징적인 기호나 다른 형태로 변형되어 반드시 돌아오게 되어 있다. 이러한 것들이 프로이트가 말하는 무시간성, 쾌락원칙, 타자성, 역동성, 회귀성, 변장성, 비현실성, 비인과성, 비논리성, 기호성, 은폐와 망각 등의 개념이다. 단어만 보아도 부정적인 뉘앙스의 접두사가 가득하다.

“넌 프로이트가 과학이라고 생각하냐?”

같이 강의를 듣는 해멍과 과학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웬만하면 평생 필요한 기본 지식은 다 익히는 중학교 때 과학의 정의에 대해서 배웠던 것이 생각나는데, 그에 따르면 과학은 변수를 통제해서 사물의 원리를 도출해내는 것이었다. 액기스만 뽑아내는 것 말이다. 프로이트는 과학이라고 하기에는 지나치게 우기는 부분들이 많아서 과학이 아니라는 결론을 내렸다.

그러나 우리가 배운 교과서적인 ‘과학’의 개념을 현실에 적용하다 보면 그것이 가진 본래의 의의를 놓치게 되는 것은 아닌가? 무언가를 증명하려는 실증적인 정신 자체만을 과학으로 보면서 어느 정도는 과학에 대한 기준을 조금 더 열어두어야 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프로이트가 말했던 ‘무의식’에 대한 담론 자체가 전통철학에서 생각하던 ‘과학’의 패러다임을 흔드는 것이라서 더 혼란스러운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임상 케이스에 대한 관찰에서 시작하여 생각하고 기록하고 원리를 도출해냈던 프로이트는, 그것에 대해 분석을 시도했다는 점에서 방법론을 차치하더라도 정신만큼은 과학자라고 봐야 할 것 같다.

처음으로 정신분석학 책을 펴든 것이 작년 겨울이니, 반 년 정도를 어설프게나마 프로이트나 라캉에 대해서 생각했던 것 같다. 원래 목적은 자기분석이었다. 다른 것은 다 모르겠으나 내 안에 내가 알 수 없는 어떤 부분, 설명되지 않는 부분이 있다는 것 때문에 ‘무의식’이나 ‘분열’이라는 말에 끌려서 정신 없이 책을 읽었던 것 같다. 희망적인 말들이나 희망을 강요하는 언어보다 그쪽이 내게는 훨씬 더 정직하게 느껴졌다. ‘아, 정신분석학에서는 사람을 이런 식으로 보려고 하는 거구나.’ 아직도 프로이트가 지나치게 과대평가되고 있다는 생각은 하지만, 과학자로서 꼬장꼬장한 자존심을 버리지 않으면서도 모두의 거부감과 비웃음을 감내했던 점은 후대인에게 칭찬받을 만하다.

‘무의식’의 개념이 가장 나에게 어필하는 점은 시간의 비선형성을 인정한다는 것이다. 요즘도 그렇지만 갈수록 사람들은 나이를 먹는 것이 일정한 단계를 거치고 더 나아지는 것이고, 과거의 모습은 추억으로 간직할 줄 아는 것이 미덕이라고 여기는 것 같다. 현인들은 그 최종점에 이르러서 화도 안 내고 화장실도 안 가는 완전무결한 신처럼 보인다. 그렇지만 대학에 갔어도 나는 아직도 엄마와 반찬문제로 씨름을 하고, 막냇동생 혼자 먹을 간식거리를 갖고 방으로 쏙 들어가면 금방 삐친다. 여러 사람을 만나고 여러 곳에서 다른 경험을 할 수록, 내 안의 시간은 변태해서 새로 나는 것이 아니라 그저 그렇게 차곡차곡 쌓이면서 범위를 좀더 넓혀 가는 느낌이 든다.

지인들 중에 꿈-분석이나 타로카드를 치는 사람이 많은 것을 보면 무의식론이 지금 얼마나 대중적인지 놀랄 정도이다. 프로이트가 보면 “팔아먹으라고 만든 것이 아니다!”라고 소리를 칠지도 모르겠다. 우연찮게도 이 수업과 함께 정신분석 수업을 듣고 있어서 이번 반 학기는 프로이트와 코를 맞대고 보낸 듯한 기분이 든다. 허무주의에 찌들어서 ‘인간은 그렇게 살 수밖에 없어!’라는 정신분석의 언어에 귀가 솔깃했었는데, 왜 그런 말을 한 것인지 한동안 들이파다 보니 한결 가벼워진 마음으로 ‘인간은 그렇게 밖에 살 수 없겠군. 그러나 플러스 알파!’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이제 겨우 이만큼 온 것이다.

지금 내가 답할 수 있는 질문들

사회과학계열 2학년 0620916

지은

1. 네 이름이 무엇이냐?

내 호적상 이름은 조지은. 보통은 성을 붙이지 않고 지은, 이라는 형태로 많이 쓰고 양성을 쓸 경우에는 조백지은으로 쓴다. 제일 많이 불리는 이름은 마리. 친구들은 대부분 나를 마리라고 부른다.

2. 네 최대 관심사는?

잘 먹고 잘 살기. 들꽃처럼 살다 갈 한 인생, 어떻게 하면 행복하게 보낼 지가 내 최대 관심사다. 그래서 나를 좀더 알고 싶다. 예전에는 나에 대해 전혀 관심이 없었고, 이후에는 부족하다고 싫어했으며, 나에게 관심을 갖게 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신기한 것은 나에 대해 관심을 가질수록 다른 사람에 대한 관심 또한 많아진다는 것. ‘를 더 확장된 개념으로 보게 되니 소통에 대한 고민이 계속되는 것 같다. 매 시기마다 그 때 나의 관심을 끄는 태그들이 머릿속 태그구름에 있는데, ‘소통이란 단어는 일 년이 넘어도 (아마 평생)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다.

3. 너는 너를 좋아하냐?

예전보다는 많이 솔직하고 너그러워진 것 같아서 지금은 꽤 좋아한다. 가끔 주변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거나 사고 치는 경우가 있어서 속상하지만, 도망치지 않고 뒷수습을 하려고 노력하기 때문에 곧잘 화가 풀리고는 한다. 가끔 울컥 해서 화가 치밀면 엄청 딱딱한 말투로 상대방에게 마구 쏘아대는 때가 있어서 매번 후회를 하는데, 상대방에게 무언가 강요하는 분위기를 풍기는 것 같은 면은 싫기도 하고 좋기도 하다.

4. 사는 이유가 무엇이냐?

일단은 태어나서 살았고, 사는이유에 대해서 고민을 하게 된 것은 조금 나이가 든 다음이었다. 신경림갈대를 읽고는 진지한 고민에 들어갔다. 입시 때문에 고민이 오래 가지 않았다.그 이후에는 성공해서 엄마를 호강시켜 드려야겠다는 생각으로 살았다. 뭔가 거대 담론에 매여있었고, 이타적이고 희생적인 삶을 살아야 빛나는 삶이라고 생각했다. 지금은 십대 시절에 비장했던 내가 불쌍하고 안타깝다. 관심을 나에게로 돌리고 대화를 시작하면서부터 많이 변화하였다. 살게 되는 이유는 공부하고 싶은 것, 읽고 싶은 책, 그리고 앞으로 만나게 될 그 무수한 많은 인연들 덕분에 아직도 두근거리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인간이 존엄하다는 말 같은 것은 믿지 않는다.

5. 공부는 왜 하니?

더 자유로워졌다. 공부를하면서 점점 더 가볍게 살 수 있다는 확신이 들어서 즐겁다. 공부를 많이 해서 더 무거워지는 사람, 닫히고 속박되는 사람은 책을 덮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정보와 책, 공부할 것은 무한대이다. 아는 척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저 밥 먹고 숨 쉬고 잠 자듯이 즐겁게 책 읽고 공부한다. 호기심.

6. 요즘 가장 마음 쓰고 있는 것은?

인디애니영화제 다락, 학교생활. 학교를 별로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에 작년에 많이 소홀했다. 올해는 좋은 수업을 많이 듣게 되어서 학교에 애정이 생겼다. 캠퍼스에아는 사람들의 얼굴도 늘었다. 무책임한 것과 자유로운 것은 다르니까, 가끔은 지나치게 게으른 나를 달래느라 요플레도 사주고 맥주도 사주면서 좀더 성실하기 위해 노력한다. 다락은 기획하고 있는 영화제인데 거의 매일마다 일이 터져서 요즘 잔뜩 긴장했다. 오픈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과연 될까, 그 많은 감독님들을 실망시키는 것은 아닐까, 처음에 우리가 뭘 하려고 했던 것인지 잊어버린 것은 아닌가 등등 수많은 질문을 내게 던지고 있다. 다락에서 사람에 대해 배우고 소통하기를 연습하고 아이디어를 기획해서 실제로 만들어내는 놀이가 얼마나 즐거운것인지, 오랫동안 입시 때문에 잊고 있던 그 즐거움을 다시 살릴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는 요즘 학교 과제가 밀려서 통 글을 쓰지 못해 의식적으로 조금씩이나마 쓰려고 노력하는데, 한창 학교의 책만 읽을 때에는 자꾸만 단어가 각박하고 빈곤해져서 얼마 전에는 견디다 못해 자다가 벌떡 일어나 소설책을 펴 들었다. 내 언어가 사라지는 것은 언제고 제일 끔찍한 일이다.

7. 요즘 고민하고 있는 것은?

재정적인 문제. 즐길수 있을 정도의 가난과 더불어 살아야지. 생업으로는 무엇을 하게 될까.일과 놀이는 분리하고 싶지 않다. 과연 내가 지금 읽고 있는 책들과 공부하고 있는 것들을 제대로 소화하고 있는 것인가. 무엇을 할까, 무엇을 할까. 영화제 이후에는, 학기 이후에는 무엇을 할까.

8. 무슨 음식 좋아하냐?

애호박, 계란국, 미역국, 호박죽, K가만들어주는 햄버거, 오이 약고추장에 찍어 먹기.

9. 어떤 삶을 살고 싶어? 그러기 위해서 뭘 하고 있지?

미루지 않는 삶. 존재하는삶. 열려 있는 삶. 그러기 위해서 기존의 분할된 시간 개념이 아니라 상대적 시간 개념을 갖고 살려고 노력한다. 내가 만족스럽게 하루를 꾸미기 위해서, 왜 지금 여기에 있어야 하며 나는 무엇을 하고 싶은지 원점으로 돌아가서 묻는 작업을 한다. 그리고 이야기꾼이 되고 싶다. 예전에 인문학은 던져놓기만 하고 사회과학은대안을 제시하는 학문이라고만 생각했었는데, 막상 대학에 들어오고 보니 그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았다. 모두가 나름대로 자신의 의견을 내놓고 있지만 사회과학은 통계에 좀더 기대있는 것이다. 나는 통계를 믿지 않는다. 그러나 인문학과 이야기에 기댄다. 내가 느끼기에 좋고 뿌듯하여 다른 사람과 함께 나누고 싶은 최소한의 정직을 지키고 싶기 때문에, 그와 관련된 일을 하며 살 것이다. 지금은 계속해서 다른 사람과 소통하는 것을 연습하고 있다.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다양한 철학자들의 책을 접하고 이야기하면서. 어차피 완벽하게 전할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다. 최소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구성을 통해 이미지, 스타일을 제시하는 정도가 아닐까 한다. 그래서 세련되게 이야기하는 법을 연습하기 위해서 다른 사람의 이야기 듣는 연습을 하고 있다. 생각하고 고민하고 물어본다. 낯을 가리는 편이라서고생을 많이 했는데, 낯 가리기에는 좋은 사람들이 너무 많다는 사실을 영화제 기획을 하면서 깨닫고는 살갑고 세련된 방법으로 다가가는 연습도 많이 하여서 친구 사귀는 일에 있어 더 능동적으로 변하게 된 것 같다.

10. 갖고 싶은 것 있니?

예전에는 그런 것 하나도 없었는데 요즘 생겼다. 물질적인 것은 아이팟 나노와 좋은 헤드폰이 갖고 싶다. 빨간 댄스슈즈를 신고 라틴댄스도 추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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