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리 앤 스타니제프스키, <이것은 미술이 아니다>, 2006:서울, 현실문화연구'의 내용을 토대로 근대적 박물관에 대해 짧게 요약 정리한 것입니다. 본래 미완성의 문단들이지만 혹시나 유용할까 해서 올립니다.
근대적 박물관의 탄생
본래 서구문명사에서 대학과 교회, 귀족계급은 지속적으로 그림이나 물건들을 수집해왔으나, 이것들은 우리가 지금 알고 있는 현대의 박물관 수집품들과는 매우 다른 형태의 것들이었다. 가령 17세기 프라하의 루돌프 2세는 ‘미술의 방’에 맘모스의 상아, 화석, 조개, 거울, 렌즈, 터키 및 헝가리의 말 재갈, 알브레히트 뒤러 와 피테르 브뢰헬 1세의 풍경화 등을 모아 놓았다. 심지어는 ‘하늘에서 헝가리의 폐하 진지로 기적적으로 떨어진 고운 베일’도 들어있었다. 한 마디로 신기한 것은 다 모아 놓은 셈이다. 수집활동은 단순히 보는 여가 생활에 불과하였으며, 귀족들의 사치였다.
우리가 알고 있는 개념의 ‘박물관’의 기초는 18세기 말에서 19세기 초에 확립되었다. 1820년경 왕후귀족의 컬렉션은 공공의 박물관으로 이행되었다. 미술관이 출현하는 시기와 자율적 영역으로서 예술개념이 성립된 시기 또한 일치하는데, 이 부분은 좀 더 면밀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박물관이 공공의 문화적 시설로 모양새를 갖추면서 ‘공들여 지어진 상징적 건물, 개별적으로 떨어져 있으면서 전시가 가능한 크기의 작품을 그 안에 담고 있을 것’ 등의 조건들이 함께 만들어졌다는 사실이다.
뚜렷한 경계
일단 선을 긋고 나면 선을 기준으로 공간에 안팎이 생기게 마련이다. 박물관 역시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되면서 외적으로나 내적으로나 엄격한 경계를 또렷이 하기 시작했다. 먼저, 작품들을 장엄한 박물관 건물 안에 전시할 방법에 대해 고민하게 되면서 일반적으로는 국가나 유파별, 시대별로 작품을 배열하게 되었는데, 이러한 분류법은 근대적 패러다임들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자본주의와 민주주의를 바탕으로 한 국민국가는 18세기 이후에 등장하였기 때문에 국가별 작품 전시가 가능한 것이다.
또 다른 상황을 한 번 가정해 보자. 나는 서울시립미술관에 피카소 전을 보러 가게 되었고, 시대별로 배열된 그의 작품들을 초기작부터 말년의 작품까지 차례대로 걸어 다니면서 감상하였다. 이후에 박물관에서 나온 다음에 내가 하게 되는 생각은 ‘피카소의 작품은 어떠한 경향에서 어떻게 발전하였으며 특히 관심이 가는 작품은 어느 시기의 것’ 정도일 것이다. 작품에 이러한 작가주의적 접근을 하게 되면, 일단 내게 ‘피카소’는 독립적이고 자율적인 개인으로 보일 수밖에 없으며 시대적, 인종적 맥락과 분리된 차원에서 받아들여진다. 이처럼 작품을 유파별, 시대별로 배열해놓는 것 또한 인간을 ‘자유의지’를 지닌 근대적 주체로서 간주하는 시각이 반영되어 있다.
내 발로 걸어 다니는 데 내가 보는 것이 온전히 나의 시각만으로 이뤄지지 않을 수 있다니? 가능하다. 내 눈으로 보고 있지만 역설적으로 내 눈이 아닐 수도 있다는 말이다. 이미 나는 서울시립미술관이라는 별개의 전시 공간 안에서 큐레이터가 기획한 미술전을 보고 있으며 ‘세기의 거장 피카소’라는 홍보 문구를 머릿속에 박아 놓고 그의 작품들 앞에 서게 된다. 또한 대부분의 미술품들은 하얀 벽에 눈높이에 맞춰서 걸리게 되는데, 작품들이 이러한 형태로 전시된 것은 100년도 채 되지 않았다. 작품을 흰 벽에 걸어 놓음으로써 큐레이터는 미술품을 다른 세계와 분리시켜 날 것으로 우리 앞에 데려다 놓는다. 결국 감상자는 전시기획자가 만들어놓은 환경 속에서 만들어진 길을 걸으면서 그 순서대로 예술작품을 감상하게 된다.
내가 소년이었을 때 어머니는 내게 약속했다. "만약 네가 선원이 된다면 선장이 될 것이고, 정치가가 된다면 대통령이 될 것이고, 신부가 된다면 교황이 될 것이다." 그런데 난 예술가가 되기로 결심했고, 결국 피카소가 되었다.
- Pablo Picasso
천재에 대한 환상. 근대가 만들어낸 허구. 근대에 천재란 국가, 종교를 뛰어넘어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개인이다. 여기에서 천재는 '타고 나는' 것이며 예술은 '교육 받거나 교육 할 수 있는' 것이라는 생각을 부정하기에 이르렀다. 아카데미 미술은 고난을 겪는다. 그렇지만 '존재하는 것은 모두 자연스러운가?' 이에 대한 반발로 Linda Nochlin은 여성의 천재성이 발현되지 않은 이유를 집요하게 파고 들어가 제도적인 문제를 끄집어낸다. Gerhard Richter, <48 portraits>는 천재라는 현대적 신화에 대한 논평이다. 사진 속 마흔 여덟 명의 천재들은 모두 백인이며, 남성이다.
Some of the "48 Portraits," by Gerhard Richter, 1971-2, The Museum of Modern Art, New York, photograph by Michele Leigh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