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TICE  |  말많은마리 070808
김탕 에 해당하는 글 : 7 개
2007/04/15 :: 구름다리 여행 (14)
2007/03/14 :: 오빠라고 불러봐! (23)
2007/01/11 :: MIZY에서 (24)
2007/01/05 :: Mento Interview 김탕 (18)
2006/12/05 :: Tang's Burger (23)
구름다리 타는 기분으로 하늘 아래 제일 가까운 마을에 출사 다녀왔어요. with 탕, 태연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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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 나임윤경 성평등리더십의이해와실천

오빠라고 불러봐!

0620916 조지은

얼마 전 다른 수업에서 ‘당신을 표현할 수 있는 한 단어’를 대보라고 하였는데, 스스럼없이 ‘마리?’라는 물음이 머릿속에 둥실 떠올랐다. ‘마리’는 내 닉네임이다. 2006년부터 쓰게 된 마리라는 이름으로 엮이는 관계들이 지금의 나를 지탱하고 있다. ‘마리’는 친구도 많이 사귀었는데,(눈물 나게 쑥스러운 3인칭!) 나는 그들의 나이가 얼마인지 모르는 경우도 있다. 과나 학번 같은 것은 나중에 우연히 알게 되면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는데 매번 까먹고서는 ‘너 그렇게 늙었었냐?’하며 눈이 동그랗게 놀라곤 한다. 영화제를 기획하면서 만나게 된 친구들 중에서는 알고 보니 같은 학교라서 ‘이게 웬일?’ 했던 적도 있다.

그 중에 지금 군대에 가 있는 ‘싱크’라는 친구가 있는데, 입꼬리나 눈꼬리가 웃을 때 야무지게 올라가면서 정말 ‘꾸밈 없다’는 말이 잘 들어맞는 친구이다. 매번 뭐 먹으러 갈까 고민을 하면 이것도 싫고 저것도 못 먹는다며 투덜거리다가, 막상 먹으러 들어가면 말 그대로 제일 많이 먹어서 밥 먹으러 갈 때 메뉴에 대한 싱크의 말은 다들 귓등으로 듣는다. 그럼 또 ‘나 원래 말은 이래도 아무 거나 잘 먹잖아.’라며 속에서부터 울려 나오는 웃음소리를 껄껄거린다. 가끔 ‘나 진지해!’라고 얼굴에 써 붙이고 영화를 찍기도 하고, 앞으로도 계속 찍고 싶어한다. 능구렁이 같은 구석이 있긴 하지만, ‘내가 나이가 많다고 너에게 이런 말을 하면 조언처럼 들려서 하기가 조금 고민되는데…….’라고 상대방을 먼저 배려해주는 세심함에 놀랐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한참 원숭이 같은 자식들만 보던 때라, 일 년이 다 되어 가는데도 동물의 세계에 들려오던 그 말은 잊을 수가 없다.) 장정일의 어렸을 적 꿈이 동사무소 같은 곳의 공무원이 되어서 일찍 끝나면 집에 돌아와 발 씻고 누워서 책이나 하루 종일 보는 것이라는 대목을 읽고서는 바로 싱크를 생각했다. 요즘에는 자대에 들어가서 자주 전화를 하여 안부를 묻는데, 군기가 덜한 부대에 가서 선임병들에게 애교도 부리며 역시나 사막에 떨어지면 모래에게 말을 걸 수 있을 것 같은 능청스러움으로 등 따습고 배 따습게 잘 지내는 것 같다. ‘처음부터 싱크의 모습을 다 보여주면 좀 그렇잖아. 음무아하하!’ 심지어 인터넷도 하는 걸.

나와 같은 학교에 다니는 싱크는 YBS에서 우리는 모르는 강력한 카리스마의 제작팀장이라고 하는데, 아마도 거기에서는 실명을 사용하고 선후배 관계도 철저한 편인 것 같다. 그러던 중 옷깃만 스쳐도 파릇파릇하다는 새내기 내 친구가 YBS에 신입부원으로 들어가면서부터 ‘아, 네가 말하는 게 승구 오빠지?’라며 호칭으로 이상한 관계가 형성되었다. 나는 친구에게 반말을 하고 싱크에게도 반말을 하는데 그 친구는 싱크를 오빠라고 하며 어려워한다. 승구 오빠라……. 승구 오빠? 세상에나, 그건 다른 사람이다. 내가 싱크를 오빠라고 불렀다면 그가 군에 가서 나한테 살갑게 전화하며 수다를 떨 수 있었을까? 대답은 최대한 입을 오므렸다 펴며 ‘오우, 노우’다.

물론 어떤 사람이 나와 절친한 사이가 된다면 그를 내가 오빠라고 부르든 주머니라고 부르든 성격이 더럽든 착하든 많은 것이 아무렇지도 않을 수 있는데, 문제는 처음에 관계를 맺을 때 호칭이 그 이후의 행동반경을 결정해버린다는 것에 있다. 고등학교 시절에 (조금만 일찍 태어나면 자동으로 오빠이기 때문에) 우후죽순처럼 생겨난, 내게는 무수한 옵빠옵빠옵빠들이 있지만, 그들과 나눈 대화 중에 내가 각별하게 기억하는 것은 정말 단 한 마디도 없다. 매번 만나면 하게 되는 시답지 않은 이야기, 나이든 사람 유세하기, 듬직한 오빠의 능력을 보여주기 등 하나도 안 멋있는데 미간에 힘주는 그들이 안쓰럽다. 사람을 만나게 되면 언어적인 부분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내 머릿속에 자신의 어록 하나 남아 있지 않은 사람은 나와 관계를 맺었다고 말 할 수가 없다. 내가 한 문단을 주야장천 싱크에 대해 이야기를 했지만, 계속 하라고 하면 정말 계속 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나와 5년을 알고 지낸 어느 오빠에 대해서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아, --오빠?”
뿐이다. 만나면 그냥 묵묵히 먹기나 해야지, 삼겹살이든 보쌈이든. 그리고 계산서는 오빠의 넓은 가슴으로 품어주세요.

나는 맏이라서 친척오빠들을 제외하고 혈족 이외의 사람들에게 ‘오빠’라는 호칭을 써본 적이 없었다. 게다가 애교도 없어서 예쁨 받는 후배가 아니었기 때문에 중학교에 다닐 때까지만 해도 친구들이 교회에서 오빠, 오빠 하며 연애하는 것에 대해 이해하질 못 했다. 프로이트를 읽다가 강의에 들어가서 오빠에 대한 이야기를 하니 별별 생각이 다 들었다. ‘1차 억압된 성욕을 실현시키려는 것인가?’ ‘근친상간이다, 근친상간!’ 근데 성실하고 착하고 예쁜 내 교회 친구들이 근친상간을? 나이 많은 사람과 연애하며 오늘은 오빠가 뭐 해줬어, 라는 자랑을 하는 친구가 그렇게 유치해 보일 수가 없었다. ‘네가 방금 말한 오빠는 그 오빠냐, 친오빠냐?’ 종교에 회의를 품고 교회에 발길을 끊게 된 것에 교회 내부의 연애질은 결정적인 이유가 되었다. 아무리 봐도 교회에서 짝짓기하는 것은 꽤나 원칙주의자였던 어린 내 눈에 곱게 비칠 리가 없었다. 그들은 ‘to go to church’가 아닌 ‘to go to the church’를 실천하며 정관사에 하나같이 ‘연애’와 함께 ‘오빠’라는 단어를 치렁치렁 끌고 다녔다.

단순히 권위적인 맥락에서 ‘오빠’라는 단어가 거북한 것이었다면 교회의 언니, 선생님, 형 등 이름 아닌 모든 호칭이 똑같이 불편했어야 하는 건데, 유독 오빠라는 말만 혀끝이 망설여지던 단어였다. 언어로 의식화되지는 않았지만, 몸으로 거북함을 느끼고 있었기 때문일 게다. “처음에 신입생 애들 보러 내려갔을 때, 딱 보고 ㅇㅇ랑 ㅇㅇ가 예쁘다는 생각 들던데?” 고등학교에 가서 동아리 활동을 하다가 알게 된 ‘오빠’가 나중에 내게 한 말이다. 그리고 예쁜 여자 후배들이 많이 뽑혔나 보러 왔던 선배의 이 말을 계기로 ‘오빠’라는 단어가 내포하고 있는 뉘앙스를 알게 되었다. ‘나’라는 사람 앞에 내가 별로 고마워할 필요가 없는 정관사가 붙는다는 것을. 처음에는 매번 남자 선배들을 부를 때마다 자꾸 그 야릇한 기분이 느껴져서 찝찝했고, 익숙해지기 위해서 부러 더 자연스럽게도 뱉어보고 씩씩하게 불러도 보았다. 아이고, 고생했다.

울렁이는 가슴을 다독이며 역지사지 해보자면, 왜 그 많은 오빠들이 스스로 관계에 부담을 씌우면서 미간에 힘주기를 고집하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신부를 안고 빙빙 돌려대는 신랑의 모습을 상상하며 근육을 키울 때 그런 생각을 하는 걸까? 프로이트는 인간 정신의 기본 원칙을 발견하기 위해서 신경증을 정신분석 했다는데, 그 비슷한 상상력을 발휘하여 내가 자주 써먹는 법은 휑뎅그렁한 세상에 나와 남이 함께 있는 모습을 그려보는 것이다. 동물의 세계에서 감각을 발휘하여 처음에는 머리가 길군, 콧구멍에 오백 원짜리도 들어갈 수 있겠군, 하는 생각들을 하겠지만 말을 하게 되면서부터 제한적이나마 나와 그 사람은 다른 차원의 관계 맺음으로 갈 준비를 한다. 둘만 있다고 치면, 우리 둘이 친구가 되기 위해서 굳이 나이나 위계에 따른 호칭이 필요할까? 아무도 없는데 ‘오빠라고 불러봐!’는 너무나 쑥스러운 외침 아니던가? 나는 그 편이 훨씬 더 솔직하고 정직하게 느껴진다. 반방에서 밥 사주던 오빠들이 내게 인생이 외롭고 세상은 황량하며 자신은 무엇을 좋아하는지 모르겠다고 차 한잔 마시면서 고민을 털어놓을 수 있을까? 나에게 배고프니까 털보네 가서 밥 좀 사달라고 할 수 있을까?

친한 친구 중에 서른 아홉을 먹은 멘토 격의 친구가 있는데, 내가 열아홉 때 그가 서른 여덟이었고 조금 다른 의미에서 우리 둘 다 꿈나무(88년 생과 88학번)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하루는 여의도에서 커피를 마시고 오들오들 떨면서 걸어가던 도중에 찬바람이 그의 머리에 무안한 일자 가르마를 남기며 지나갔다.
“너랑 나랑 나이 들어서도 계속 볼까? 나이 들면 네가 나한테 ‘김 영감님’이라고 할 때까지 말이야.”
“크하하. 영감님이라니, 영감님?”
“아니, 지금은 나랑 스무 살 차이 나지만 나이 들어봐, 늙어 죽는 건 다 똑같잖아.”
“그러고 보니 얼마 전에 빅 피쉬를 다시 봤는데 거기서 여자애가 이완 맥그리거한테 고백을 하면서 그러던데요. 10살하고 30살 차이는 많은 거죠? 응. 20살하고 40살은? 음, 조금. 그럼 60살하고 80살은?”

한 살이라도 더 많아 보이려는 오빠들에게 장담하는데, 호칭을 트게 되면 그 때부터 많은 ‘동생’들의 매력이 오색찬란한 빛으로 팡팡 터지며 관계의 재발견이 일어날 것이다. 한 번 살다 가는 인생에서 만나는 사람마다 정관사 붙여 가며 따지기에는 그네들의 예쁜 이름들이 안타깝다. 네게 꽃이 되고 서로를 길들이며 살아가는 것만 해도 인생은 너무 짧지 않은가? 다른 점보다는 같은 점을 찾는 편이 훨씬 즐거운 일이란 것을 너도 나도 알고 있다. 그런데 같은 영화를 좋아하는 것에는 반색을 하면서, 정작 반말 쓰고 이름을 부르며 친구하고 싶다고 눈을 반짝이면 너와 나는 다르다며 정색을 한다. 이쯤 쓰고 있으려니 언어의 감옥 속에서 포효하는 옵빠옵빠들의 소리가 들려온다. ‘우리 지은이 많이 컸네. 자, 다시 한 번 오빠라고 불러봐!’

2월 1일에 아침부터 저녁까지 사진을 찍으러 다녔다. 살인적인 추위에 계속 실내외 실외를 왔다갔다 거렸다. 손에는 천원짜리 목장갑을 끼고 카메라를 들고 장승배기역 근처를 배회한 날.

가방을 항상 반쯤 내려서 매고 다니는 주리.

지나가던 길에 있던 헌책방. 말들이 너무 무서워서 한참을 웃었다.

김탕 어깨에서 살고 있는 아이.

골목에 들어가자마자 보인 것. 코트를 입는 마네킹에 목도 얼굴도 필요가 없으니까 ...

생선 머리들이 잘려나가고 붉게 물든 나무. 저 나무도 한 때는 ...
TV에서 저기에 고양이를 넣고 키우는 아저씨를 본 적이 있다. 그런데 정말 따뜻해보인다.

사람들이 많이 앉아서 의자도 허리가 아프고 나이를 먹었다. 그래도 또 누군가 앉는다면 받아줘야지.
지금은 사라졌다는 국제약품 앞에서 탕의 요청으로 찍은 사진. 나는 국제약품에 대해 처음 듣는다.

더럽다고 구석에 몰아놓은 대걸레에도 평등하게 고드름은 맺힌다. 시들어가는 시장에는 무심하게 언제나처럼.

사진 찍으려고 풀쩍 뛰어올라간 주리의 발. 나도 저렇게 막 셔터를 누를 수 찍을 수 있는 용기가 조금 필요한데.
작은 학교 운동장에서 사이즈도 다른 운동화끼리 대화를 나누고 있다.
편의점에서 선경이랑 주리를 기다리다가. 나비도 지나가는 파란 버스를 보고 있으면 어디론가 가고 싶겠지?
딱 한 장 남았다. 누군가 관심을 가져줄까? 누가 떼어 갈까?
"빨리 좀 꺼내봐요."
"어? 뭐 잡힌다. 이게 목도리인 거 같아. 꺼낼 수 있을 거 같애."
"그럼 목도리지, 가방에 목도리 밖에 안 넣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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