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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의 성별화 에 해당하는 글 : 1 개
2007/05/10 :: 호신술로 되겠니 (18)
2007-1 나임윤경
성평등리더십의이해와실천

호신술로 되겠니

0620916 조지은

세계화가 노동과 맞닿는 지점에서 성별 이데올로기의 개입으로 노동의 성별화가 진행된다는 것이 저자 김현미의 말이었다. 그래서 나는 글로벌한 이데올로기에 대해 글을 쓰겠다. 그러나 미안하게도 여기에는 외국인이 등장하지 않는다. (글로벌은 마음 속에 있으니까요.)

누군가와 이야기를 하던 중 너는 남들에게 도저히 말 못할 것이 있느냐, 너를 많이 드러내야 할지도 모른다, 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나는 딱히 없다고 대답했다. 왜냐하면 결국 타인들도 나의 확장이라는 생각에 겁먹거나 움츠릴 필요가 없다는 것을 조금씩 많은 사람들에게서 배웠기 때문이다.

그건 나에 대한 이야기니까.

그런데 이게 다른 사람을 이야기의 중심으로 끌어들이면 달라진다. 좀더 조심스럽고 위험해진다. 그를 보면서 나에게 일어난 변화에 대해 서술을 하려면, 필연적으로 그의 이야기를 평가하면서 재구성할 수밖에 없다. 나는 지금 희진이 이야기를 할 것이다. 그래서 매우 조심스럽다. 더군다나 이들의 이야기를 학문의 언어로 번역하고 싶지 않다. 생각은 머리로 하더라도 느끼는 것은 피부에서 시작하는 것 아닌가? 희진이가 내 피부에 어떻게 와닿았는지 이야기하고자 한다.

멘토가 내게 어떤 일을 제안했다. 그 분은 미디어교육가다. 작년에 함께 미디어교육을 했었는데, 컴퓨터 없는 시골의 아이들보다 도시 빈민층 아이들의 삶이 훨씬 더 정글같고 위험하다는 생각을 해서 도시 변두리 지역을 많이 돌면서 활동을 한다. 소수자의 삶을 공유하는 다양한 방법 중에서 멘토는 함께 살기를 택한 경우이다. 이번에는 작년에 잠시 갔던 곳에 인연이 닿아서 두 명의 중학생과 함께 본격적인 미디어교육을 하기로 했다. 이야기가 먼저 있고 매체를 선택해야 하기 때문에, 이전에 만났던 경험을 토대로 ‘사진’이 적절하다고 생각했다. 글과 말을 나누고 시를 짓고 사진을 찍었다. 말이 미디어교육이지 사실은 peer group 활동이었다.

내가 낯을 가려서 아이들이 처음에는 나에게 빨리 다가오지 못 했지만 나중에 내가 쓴 시를 읽어준 것을 계기로 마음의 벽을 허물게 되었다. 그 시는 개인적으로 내가 처음 이데올로기라는 것을 어렴풋이 알던 때의 경험을 쓴 것이었다. 나는 아버지 덕분에 폭력과 가족, 관계, 근대성, 가부장의 담론을 겪을 수 있었다. 집에서 맞고 울고 있는 것은 엄마인데, 동생이 신고해서 집에 왔던 경찰과 옆집 아주머니까지 모두 아버지 말을 믿었다. 괜찮다면 괜찮다고 생각하며 다들 신경 쓰지 않았다. 우리는 항상 아버지가 학교에 찾아올까봐 무서워했다. 아버지는 호주이기 때문에 어디서든 제도적으로 무한의 권력을 지니고 있었다. 하루는 밤에 독서실로 도망가 문제집에 코를 박고 동생들을 생각하던 날, 집에 오는 길에 비참한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시를 썼다. 뛰는 법을 잊어서 걷고만 있다고. 물론 시는 훨씬 나중에 쓸 수 있었다.

쉼터에서 만난 아이들 중, 한 명은 은미고 한 명은 희진이다. 은미는 먹을 것에 대해서는 정말 온갖 형용사를 쓸 줄 알고 웃는 것도 귀여워서 주변 사람들에게 예쁨을 많이 받는다. 그런데 관심이 없는 것에는 아예 눈길도 주지 않고 엎드려서 잠부터 잔다. 그러니 선생님은 희진이의 이러한 면만 보고 학교에서 그녀를 싫어했을 것이다. 사진작업을 하는 내내 은미는 시큰둥했다. 은미는 희진이에게 많이 배웠다. 우리는 은미에게 아무 것도 해주지 않았지만, 보통 때 같으면 하나도 하지 않을 은미가 희진이와 함께 있어서 셋이나 해왔다. 나는 그런 은미가 재미있어서 몰래 웃었다.

희진이는 공부도 잘 하고 성숙한 아이였다. 나는 사진에 자신감이 없는데 희진이는 사진으로 자신이 표현하고 싶은 느낌을 담는 데에 놀라울 정도로 능숙했다. 그리고 어색해하는 나에게 웃으면서 언니처럼 대해주었다. 희진이가 지닌 메타적인 시각은 우리를 놀라게 했다. 쉼터에 온 지 일 년 밖에 되지 않았는데, 벌써 자신의 경험을 객관화해서 바라보고 성찰하는 작업이 진행되고 있었다. 내가 보였던 자괴감이나 피해의식에 대한 거북함, 공격적인 방어벽 같은 것은 희진이에게 찾아볼 수 없었다.

함께 하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아이들이 쉼터에 오기까지의 사연을 이야기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으나, 내게는 그것이 무척 힘든 경험이었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다. 희진이의 새엄마는 희진이를 '팔았다.' 그 말을 듣고 잠을 못 자 침대에서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누군가는 그런 아이들의 '아다를 깨고 싶어' 안달이 나겠지. 그리고 편의점에서 우유 사듯이, 택배를 부치듯이, 전화 한 통으로 배달된 중고등학생들을 산다. 개인에게는 일시적인 관계겠지만, 그 한두번의 관계를 위해서 누군가는 많은 수의 아이들을 사는 것이다. 수요와 공급이 있으니 당연히 시장이 형성될 수 있다는 그 개념 없는 암묵적 합의 때문에, 희진이는 몇 달을 집밖에서 지냈다.

이 '대학생 언니'는 비겁하고 겁쟁이라 텍스트로 읽으면서 인권 어쩌고 저쩌고 하는 소리에 솔깃솔깃 하지만, 희진이가 "새엄마도 힘드셨으니까, 그래서 나보고 고등학교 가지 말라고 조금만 고생해서 일하라고, 맏이니까 그러라고 ..." 하는 말에는 무너진다. 상층회로에 있는 내가 그에게 무슨 말을 할 수 있나? 무엇이 쉼터 아이들에게 '어른 남자와 함께 아무렇지도 않게 같이 있기'를 연습하게 하는지 모르겠다.

동생이 어제 뉴스를 보다가 말한다.
“언니, 세상이 갈수록 무서워지는 거 같아. 호신술 정말 배울까 봐.”
“호신술로 호신하려면 5년은 걸린대. 무에타이를 하렴.”
“유도가 제일 좋다는데?”
“그건 아프잖아. 막 들어서 던지고.”
“아프다고 안 배우면 뭘 할 수 있어?”
“사회운동을 해.”

희진이가 가출을 했기 때문에 사진작업은 끝까지 이뤄지진 못 했다. 나는 지금 희진이에게 아무 것도 해주지 못 한다. 그렇지만 계속해서 대화를 하려고 한다. 그게 누구든지 말이다. 내 경험도 나눈다. 궁금해서 물어보는 사람이 있으면 공부를 해서라도 꼭 나름대로 답을 해준다. 그것은 농담으로 던지는 말 한 마디를 ‘오바’해서 해석하거나 히스테리 부리려고, 생색내려고 그러는 것이 아니다. 이데올로기라는 것은 머리 꼭대기 보이지 않는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뱉는 말 속에, 까딱하는 몸짓에, 무심코 웃어넘기는 농담으로 만들어진다고 생각한다.

예전에 어떤 사람들은 말했다. 맞고 살지 말고 신고하면 되지 않느냐? 전화하면 되지 않느냐? 맞서면 되지 않느냐? 참 쉽다. 생각해보면 이렇게 쉬운 건데, 내가 신고하지 못 한 것은 미련하게 손이 떨렸기 때문이다. 몸이 굳었기 때문이다. 전화를 들고 놓는 순간이 무섭기 때문이다. 오늘 밤과 내일 아침이 막막하기 때문이다. 이런 때 호신술은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다. 희진이가 아무리 태권도를 잘 해도 도움 하나 되지 않기는 마찬가지이다.



* 위에 나온 이름은 모두 가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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