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TICE  |  말많은마리 070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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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2/09 :: 문제는 감수성이다 (17)
자기기만을 깨버려!
아리스토텔레스의 '니코마코스 윤리학'을 읽고

1. 알을 깨는 경험
2. 아리스토텔레스와 ‘중용’
3. 내 평생의 화두
4. 유용한 철학


니코마코스 윤리학 - 서양사상에 큰 영향을 준  아리스토텔레스 지음, 최명관 옮김

내가 글을 쓰지 못한 이유를 알았다. 문제는 감수성이다. 오늘 수유너머에 갈까 말까 계속 고민을 하다가 결국은 가지 않기로 마음을 먹었다. 페이지에 가겠다고 지하철까지 탔는데, 그래도 한 번 용기를 내어보면 경험상 두려움과 떨림의 감정 이후에 무언가 올 것이라는 믿음이 있어서 발걸음을 돌렸다. 그리고 정신을 차려보니 숙대입구였고, 몇 번 출구인지 몰라서 조금 헤매다가 나도 모르게 6번 출구를 향했다.

자주 다니는 곳의 출구 번호를 외우지 못해서 매번 빙빙 돌게 마련인데, 아이러니하게도 가지 않으려던 발걸음을 돌려 세운 날은 한 번에 출구를 찾아 버스를 탔다. 머릿속에 생각이 가득했다. 쓰지 못한 이유에 대해서 변을 할까? 내가 가면 다들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한 학기 내내 사람들과 섞이지 못하고 빙빙 도는 것, 신경은 쓰지 않았지만 내 안의 오만함이 그런 관계를 만든 것은 아닐까? 오늘 가서 무슨 이야기를 하나? 합평작조차 읽었다고 할 수 없었다.

요즘은 뭐든 생각하지 않으려고 한다. 그게 문제였다. 몸을 움직일수록 언어와 사고는 상호작용을 활발하게 하는데, 몸을 움직이지 않으려고 하고 생각하지 않으려고, 고민을 자꾸 미루고 넋을 놓고 살다보니 밀려오는 것은 허무함이 전부였다. 고작해야 고민하는 것이란 돈을 어떻게 버나, 정도. 그리고 내가 느끼는 것들에 대해서 금세 잊고 다른 것에 몰두해야 하는 상황이 많았기 때문에, 한 자도 쓸 수가 없었다. 소설을 과제하듯이 쓰고 싶지는 않았지만 나는 그러고 있었고, 결국 밤을 샌 끝에 시놉시스를 완성한 해멍을 부러워하며 쓰레기 같은 글을 마주하고 있는 초라한 내 자신을 보았다.

문제는 책이라고, 머릿속에 든 지식이라고 생각했지만 염병할, 그런 것은 정말 두 번째의 문제인 것이다. 제일 중요한 것은 다른 곳이 아닌 바로 여기, 내가 느끼는 일들에 대한 문제였고 내가 숨 쉬는 공기였고 내가 만지는 것들의 감촉이었다. 일이 바쁠수록 쓸 글이 많아져서 한 동안 희한하게 생각하면서도 신났던 시기가 있었는데, 그 때 나의 촉수가 살아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나의 감정에 대해서 들여다보고 그것이 사소하다고 생각하기 이전에, 그러니까 판단하기 이전에 내가 그것을 느끼고 있음을 인정했다.

실존적 정직. 감수성은 도덕적일 필요가 없다.

감수성은,
도덕적일 필요가,
전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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