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TICE  |  말많은마리 070808
저작권 에 해당하는 글 : 3 개
2007/03/27 :: 사랑의 편지 (20)
2006/11/30 :: 쪼꼬바랑 달라 (18)
- 다락이 CC를 채택하게 된 배경

 창작물을 이용한 기존의 수익 모델

  창작자는 두 부류로 나눠볼 수 있다. 창작을 업으로 삼아 실질적으로 생계비를 버는 사람과, 단순히 놀이로서 즐기는 창작을 목적으로 하는 사람. 후자는 이윤 창출이 목적이 아니다. 그렇다면 만들면서 놀고 싶은 사람은 놀고, 돈을 벌고 싶은 사람은 벌면 되는 것 아닌가 하는 긍정적인 결론이 나오지만, 실질적으로는 그렇게 되지 못 하고 있다. 5%의 창작자가 전 창작물 수익의 95%를 가져간다. 비율도 그렇지만 특히 문제가 되는 것은 창작으로 돈을 버는 그룹과 즐기는 그룹 간의 유연한 순환이 이뤄지지 않기 때문에, 수익을 내는 쪽은 한 쪽으로 고착된다는 점이다.

  순환이 이뤄지지 않는다는 것은 창작의 판이 경직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판이 경직되는 것은 재미로 창작을 하면서 동시에 그것으로 수익을 창출하는 것이 매우 부담스러운 일이 된다는 뜻이다. 두 그룹 간의 순환이 유연한 경우에는 일본의 음반 시장을 이야기해볼 수 있다. 일본의 음악계는 인디의 활동이 활발하고 실력도 수준급이다. 음악 창작자가 평소에도 창작을 계속 하다가 대중의 반응을 살펴보기 위해서는 싱글 앨범을 낸다. 그리고 반응이 좋으면 정식 앨범으로 발매가 되며, 창작자는 이로부터 수익을 얻을 수 있다. 이와 같은 경우는 창작자가 창작물을 통해서 수익을 얻는 copyright의 전통적인 수익 모델을 기반으로 하고 있으며, 창작에 대한 관심이 실질적인 수익까지 유연하게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한 가지 모델이 모든 문화적 환경에 알맞게 맞아 들어가는 경우는 없다. 한국의 경우에는 뮤지션의 앨범을 소장하는 것보다는 인터넷의 P2P 네트워크를 통해서 공유되는 것이 대부분이다. 음악과 영상의 경우가 모두 마찬가지이다. 이럴 경우에 공유하는 사람들은 모두 불법자가 되고 창작자는 자신의 창작물을 박탈 당하며 거기에서 아무런 수익도 낼 수 없게 된다. 만들고 싶은 사람은 만들고 보고 싶은 사람은 보는 것인데, 왜 여기서 창작자가 피해를 보게 되는 것일까? 그것은 단순히 copyright의 수익 모델에만 기대어 이윤을 창출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Copyright의 개념이 처음에 서구에서 유래하였다는 점을 고려해보면 그 틈새에 대해서 생각할 수 있다. 글로벌리제이션의 영향으로 많은 기준들이 국제화되고 있지만, 그 모든 기준들이 모든 문화권에서 긍정적인 요소로 평가되지만은 않는다.

  일례로 브라질에서는 카피라이트의 수익보다 공유를 하고 거기서 얻은 대중성을 전략적으로 이용하여 공연에서 얻는 수익이 더 많다. 관객들은 상품을 매장에서 직접 소비하지 않고 거리의 상인들에게 산다. 거리의 상인들은 창작자와 강한 유대를 갖고 있으며 매장에 나오지 않은 신곡을 관객들에게 알리는 역할을 한다. 관객들은 이렇게 구입한 앨범을 통해서 뮤지션의 공연이 있을 때 참가할지를 결정한다. 브라질에서는 뮤지션의 공연이 매우 활발하게 일어나며 관객들은 현장에서 직접 정식 앨범을 구입하는데, 이것은 거리에서 판매되는 기존의 앨범과 다르게 구성되어 있으므로 높은 가격과 상관없이 많은 양이 판매된다.

  왜 서로 다른 경로를 통해서 창작물이 공유되는지에 대한 문화적인 설명은 이 글의 범위를 벗어난다. 다만 어떤 식으로든 사람들은 창작물을 공유하고 있으며, 그 방법과 형태가 다양해진 지금에 와서 단순히 합법과 불법으로 선을 긋고 통제하는 방식은 본래의 취지에 맞지 않는다는 점은 이야기할 수 있다. “우리는 창작자다!” 처음부터 아무런 흥미도 없이 돈 벌 작정으로 창작을 시작하는 사람들은 없다. 하다 보면 재미있고, 재미있으니 계속 하고 싶고, 조금 더 잘 하면 그것으로 응당 돈을 벌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런데 기존의 copyright는 어떠한 문화적 맥락에서는 좋은 쪽으로만 작동하지 않는다. Copyright는 한쪽으로는 창작자의 권리를 보호하는 동시에, 또 한쪽으로는 거기에 만족하게 함으로써 창작자나 작품이 지닐 수 있는 잠재력을 더 좁은 범위에 가둬놓는다. 그래서 만들고 싶어하던 사람은 더 이상 만들지 못 하고 튕겨 나온다. 한국의 인디애니메이션도 이와 같은 선에 있다고 생각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가장 무차별적이고 여러 형태로 변화무쌍한 ‘화폐’가 incentive로서 최고의 가치를 지닌다. 어디서든 물처럼 흐르고 있고 교환할 수 있으며 숫자가 높을수록 좋은 것이기 때문에 따로 가치환산에 골머리를 앓지 않아도 된다. 이렇게 가장 무난한 최선책인 돈을 통해서 창작물을 관리하고 창작자에게 그 대가를 지불하는 것이 copyright의 수익 모델이며, 이것은 아주 견고한 법 체계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그러나 돈의 형태로 얻기 전에 사람을 움직이게 하는 동기는 사람 수만큼이나 천차만별이다. 브라질에서 창작자와 거리 상인 간의 유대는 단순히 수치적인 것만으로 비교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 다양한 동기에 의해서 사람들은 어떠한 것들을 추구하고 그렇기 때문에 자본이 도는 경로도 조금씩 달라진다. 이 흐름이 더욱 원활하게 돌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법과 같이 사후적으로 만들어진 체계의 역할이다.

  다락과 CC가 공유하는 물음

  copyright에서 보장하고자 하는 배타적인 권리를 무조건적으로 적용하다 보면, 단기적인 수익은 생길지라도 다른 사람들과 만들 수 있는 social connection의 즐거움을 앗아가는 일이 생긴다. 손에 쥐어지는 수익은 당장 창작을 생업으로 삼는 신진작가들에게 많은 도움이 되지만, 장기적으로 볼 때 그들의 작품은 딱 화폐가 지불되는 가치가 허용하는 범위 안에서만 활용되는 짧은 수명을 타고 난다.

  경제에서 우리가 일반적으로 말하는 것은 ‘market economy’다. 다른 한 편에는 최근에 들어서 개념화되기 시작한 ‘sharing economy’가 있다. 이것은 비가시적이며 사랑이나 우정처럼 그 가치를 제대로 측정하기도 힘들 뿐더러 가치 측정의 기준이 상황이나 사람에 따라 다르기 때문에 얼핏 봐서는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그렇지만 이것은 시장 경제가 발달하기 훨씬 이전부터 존재하였고, 시장 경제를 가능하게 했던 원초적인 경제일 뿐만 아니라, 창작자들이 쉽게 간과하게 되는 점이다. 요약하자면 sharing economy는 태초부터 있었던 것을 market economy에 대립되는 가치로 개념화한 것일 뿐이다. 중요한 것은 ‘이미 있었다’는 사실이다.

  잣대가 하나인 평가는 나쁘다. ‘객관적이지 않다’나 ‘제한적이다’가 아니라 정말 ‘나쁘다.’ 그런 평가는 창작 의욕을 감퇴시키고 원래 바라던 것을 잊게 하며 작품과 작가의 가치를 한정 짓게 한다. Copyright의 한계는 여기서 나온다. Copyright는 창작자에게 단기적이고 금전적인 이익을 안정적인 방식으로 보장해준다는 점에서 앞서 보았듯이 매우 가치 있는 시스템이다. 누구도 창작자에게 이타적인 사람이 되라고 강요할 이유는 없다. 그러나 copyright가 그 권리를 보장해주는 방법은 합법과 불법의 경계에 서서 단순히 두 그룹으로 창작물을 나누고 불법에 낙인을 찍는 방식을 넘어서지 않는다.

  그렇게 되면 그때부터는 오로지 ‘합법’과 ‘불법’ 두 부류에서 내가 하는 행동들이 어느 범주에 속하는 것인지 결정하는 일이 중요해진다. 이 때부터 우리는 즐거움을 잃는다. 애초에 법이 있었던 것이 아니라 만들고 싶은 사람이 있었고 놀고 싶은 사람들이 있었고 그래서 축제를 만들었으며 어찌어찌하여 세련된 테크놀로지로 지금까지 신나게 놀고 있다. 법의 영역을 사뿐히 넘어서는 테크놀로지의 등장에 신나게 놀 수 있는 여유를 담보 잡고 불법으로 낙인 찍는 것이 맞는 일인가? 새로운 모델을 고안해야 하지 않을까? 돈도 안 되고 만든 작품은 자꾸 사장되어서 창작 의욕을 회의하게 만드는 시장에서 다락이 발견한 것은 이러한 빈틈이었다.

  제한적이나마 다락은 작은 시도였다. CC라는 단체와 우리가 고민을 공유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이미 많은 사람들이 작업하고 있던 CC를 통해서 창작자들에게 좀더 쉽게 이야기를 해보려고 하였다. 우리가 시도한 것은 모두 다 같이 즐겁게 놀고 굶어 죽자는 혹자의 비아냥거림과는 거리가 멀다. 다락은 빈틈을 가능성으로 보려고 했다.
어제 애니메이션 센터에 가서 <호박전>의 유진희 감독님을 만나고 많은 생각을 했다. 기획서에 차마 못 한 말들이 너무나 많아서, 감독님들께 우리가 다가가는 것이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는 생각. 이해는 오해의 총체라는 말을 계속 곱씹으면서 그래도 언어적인 시도를 포기할 수는 없다는 결론으로 하루하루를 넘긴다. 캬캬캬. 말하면 들어주면 좋을 텐데 ㅠ_ㅠ 그래서 조금씩 나누어서 메일을 쓰기로 했다. 오늘 그 다짐의 시작으로 메일을 썼다.

영화제 만들어지고 있어요.



매체예술 iTunes 발표를 들은 이후.

매체예술 수업시간에 해멍과 나를 불지르는 말들이 쏟아져 나왔다. 발표주제를 CC(Creative Commons)로 바꿀 것이다. iPod과 iTunes에 대한 발표가 나왔는데, 일단 발표자의 태도가 우리를 밑에 두는 듯 해서 전혀 유머러스한 분위기가 조성되지 못했다. 게다가 회사에서 기술자로 근무를 한 경험에서 비롯된 것인지  iTunes에 대한 이야기조차 '새로운 매체'라는 단어 수준을 넘어가지 못하고 있었는데, 전혀 새롭지 않았다. 그런 시장이 생겨난 것은 이미 오래전 일이다.

거기에 올라오는 UCC들을 Mobile Art라고 부른다는 점에서 매체'예술' 수업 시간의 발표 주제로 정한 것 같았는데, 내가 보기에 iTunes에 올라오는 것들은 Art보다는 Entertainment로서의 성격이 강하다. 그렇다고 iTunes(교수님께서 말한 바에 의하면 '하드웨어')가 Art를 후원하는 활동을 하는 것도 아니고, 정말 순전히 판매자의 시각에서 고객의 욕구에 맞춰 만들어진 사이트인 것이다.

게다가 Art라는 이름 역시 '문화생활 한다'는 느낌을 소비자에게 심어주기 위한 제스처 이상의 것이라고 볼 수 없는데, 그것이 곧이 곧대로 Art가 되는 것인지? 물론 예술의 정의 자체를 파고 들어가면 더욱 애매해져 버리고 사이트에 올라오는 콘텐츠들 자체를 다 예술이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중요한 것은 사이트에 Art라는 카테고리를 만들고 콘텐츠를 대량으로 유통시키는 배급망과 그것이 생산, 소비될 때 깔려 있는 생각이라고 생각한다. 중요한 건 생각, 태도에서 나오니까.

저작권 문제는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궁금한데, CC가 뜨는 UCC도 있었으나 copy right를 단 것도 있었고, 중요한 것은 iTunes 화면 내에서 따로 그에 관한 콘텐츠를 생산하고 있는지의 여부이다. 배급의 입장에서 그런 일을 해주지 않으면 사람들은 단순히 '소비자'가 되고 그 콘텐츠들을 사서 쓰고 버리는 수준에서 인식을 하게 되니 걱정된다. 어떤 분은 '포탈에서 이미 UCC가 많이 나오고 있으니 굳이 podcasting이 필요할까, 잘 되지 않을 것 같다'는 코멘트를 하였는데, 평소에 포탈 권력에 대한 경계심을 갖고 있어서 그랬던 것인지 순간적으로 완전 불쾌한 감정과 우려하는 마음이 동시에 밀려왔다. 올블로그랑 네이버를 같다고 하는 건가 -_-

물론 사서 쓰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그 둘이 표면적으로 전혀 다르지 않겠지만 그 둘은 완전히 다르다. 만일 iTunes에서 사람들이 콘텐츠를 돈 내고 쓴다고 생각해보면 그 콘텐츠들 (대개 원제작자가 있는 경우 copy right를 달고 판매되는 것들)을 어떻게 사오게 될까? 분명 개개의 콘텐트보다는 제작사와 같은 곳에서 대량으로 구입해오는 경우가 많아질 것이다. 그 그물 안에 엮이지 않은 틈새시장들은 어떻게 되나? 결국 창작자는 자신의 작품을 어필하고 판매하기 위해서 iTunes나 제작사와 같은 곳에 재정적으로 종속적인 관계를 맺을 수밖에 없고, 그렇게 되면 양질의 콘텐츠를 기대하기 어렵다. 그리고 더욱 중요한 것은, 지금 포탈이 그러는 것처럼 매체 효과가 엄청난 지금 (특히 우리나라에서) 어디선가 병목을 쥐고 권력을 행사한다는 것은 위험하다.

이에 대해서 교수님께 다른 코멘트를 기대하였으나, 오히려 '문화콘텐츠와 같은 수업이 생기고 소프트웨어로 경쟁하자는 말이 나오는데, 하드웨어의 개발이 훨씬 더 중요하다'는 식의 이야기를 하셔서 내심 놀랐다. 어제 새벽에 밤을 새면서 인디애니메이션과 문화판 관련 기획서를 쓴 이후라 그런지 (기획서는 줄창 스토리텔링과 시나리오를 강조하면서, 문화콘텐츠의 희망은 그렇기 때문에 인디애니메이션에 있다는 내용이었다) 하드 웨어를 개발하겠다고 거품만 양산하는 삽질 투자와, 사전제작시스템이나 학교에 의존하여 활동하는 인디애니메이션 작가들의 낮은 독립 수준에 대해 머리가 꽉차 있었다.

prosumer라는 말이 무색하게 많은 사람들이 consumer의 시각 이상을 갖고 있지 않은 것 같다. 지금 중요한 건 소프트웨어지, 절대 하드 웨어가 아니다. 그리고 소프트웨어의 핵심은 스토리텔링이라고. 그냥 여기저기서 찍어내고 슈퍼가서 사먹는 쪼꼬바가 아니란 말이야!
 이전  1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