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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2/10 :: 정체성 (18)
정체성

  탁자가 두 개밖에 없는 포장마차 가운데 한 탁자를 차지하고서 한 선배와 소주를3분의 2 넘게 마시고 있는데, 왁자지껄 새로운 손님 한 떼가 들어와 앉는다. 세 명은 평범해 보이는데 머리칼을 네모나게 깎아친나머지 한 놈은, 척 보니 깍두기다. 선배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도란도란하고 있는데 남녀 한 쌍이 포장을 들치며 삐죽이 들어왔다가좌석이 없어서 나간다. 그러자 자기 앞의 술잔을 아가리에 털어 넣은 깍두기가 분명 우리보고 들으라고 씨부렁거린다. "술을 처먹었으면 빨리빨리 일어나야지 다른 사람 장사도 못하게 꾸무적거리고 있어." 딴에는 포장마차의 주인이 제 친구였거나 아니면 나와바리에 속했던 모양이다. 선배도 나도 서로 무안해서 얼굴도 못 쳐다보고 탁자를 내려다보고 있는데 그 깍두기는 기고만장했다."술도 못 마시는 새끼들이 안주 하나 시켜 놓고 시간만 겐세이하고 있네." 이런 개자식이 있나. 욕을 하려면 인지가 되도록상대를 콕 찍어 해야지, 너 말고는 들어 줄 사람이 없는 곳에서 누구 들으라고 히야까시를 하나. 고개를 들어 놈을 똑바로 보며말했다. "야 씹새끼야, 너 깡패지." 불의의 기습을 당한 깍두기가 혀를 차며 앉은 자리를 기신기신 일어난다. 그러면서 일행을 향해 "나보고 깡패란다. 이때껏 살았어도 깡패라는 말 처음 들어본다." 정체성이란 뭔가? 소크라테스가 '너 자신을 알라'고 했던것처럼 스스로 깨닫기까지는, 타인의 부름에 의해 규정되는 게 정체성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자신이 선생님인 줄 아는 까닭은 제자들이 나를 볼 때마다 "선생님, 선생님"하고 불러 주기 때문이고 사장이 사장인 것은 직원들이 "사장님, 사장님" 하고 따르기때문이다. 그런데 깡패에겐 아무도 "깡패님, 깡패님"하고 불러 주지 않는다. 그래서 깡패는 뒈질 때까지 자신이 깡패인 줄모른다. 그러니 얼마나 놀랐을 것인가. 갑자기 똥인지 된장인지 몰랐던 자신의 정체성을 알게 되었으니, 깍두기는 마이를 벗었다.그리고 술병 박스에 든 빈 소주병을 들었다. 나는 의자에서 몸을 틀어 아예 놈을 정면으로 바라본다. "너 하고 싶은 대로 해봐." 1미터 지척에서 병이 날아왔다. 나는 눈도 하나 깜짝하지 않았고 그 병은 내 귓전을 스쳐 지난 다음 바닥에서 깨어졌다.두 번째 빈 병을 드는 것을 놈의 일행이 막았다. 그들은 참 유순했다. 누가 나를 불러 주기 전에는 아무도 내가 누구인지 모른다.

- 장정일, 『생각』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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