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TICE  |  말많은마리 070808
질문 에 해당하는 글 : 2 개
2007/04/11 :: 대답버전 (19)

지금 내가 답할 수 있는 질문들

사회과학계열 2학년 0620916

지은

1. 네 이름이 무엇이냐?

내 호적상 이름은 조지은. 보통은 성을 붙이지 않고 지은, 이라는 형태로 많이 쓰고 양성을 쓸 경우에는 조백지은으로 쓴다. 제일 많이 불리는 이름은 마리. 친구들은 대부분 나를 마리라고 부른다.

2. 네 최대 관심사는?

잘 먹고 잘 살기. 들꽃처럼 살다 갈 한 인생, 어떻게 하면 행복하게 보낼 지가 내 최대 관심사다. 그래서 나를 좀더 알고 싶다. 예전에는 나에 대해 전혀 관심이 없었고, 이후에는 부족하다고 싫어했으며, 나에게 관심을 갖게 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신기한 것은 나에 대해 관심을 가질수록 다른 사람에 대한 관심 또한 많아진다는 것. ‘를 더 확장된 개념으로 보게 되니 소통에 대한 고민이 계속되는 것 같다. 매 시기마다 그 때 나의 관심을 끄는 태그들이 머릿속 태그구름에 있는데, ‘소통이란 단어는 일 년이 넘어도 (아마 평생)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다.

3. 너는 너를 좋아하냐?

예전보다는 많이 솔직하고 너그러워진 것 같아서 지금은 꽤 좋아한다. 가끔 주변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거나 사고 치는 경우가 있어서 속상하지만, 도망치지 않고 뒷수습을 하려고 노력하기 때문에 곧잘 화가 풀리고는 한다. 가끔 울컥 해서 화가 치밀면 엄청 딱딱한 말투로 상대방에게 마구 쏘아대는 때가 있어서 매번 후회를 하는데, 상대방에게 무언가 강요하는 분위기를 풍기는 것 같은 면은 싫기도 하고 좋기도 하다.

4. 사는 이유가 무엇이냐?

일단은 태어나서 살았고, 사는이유에 대해서 고민을 하게 된 것은 조금 나이가 든 다음이었다. 신경림갈대를 읽고는 진지한 고민에 들어갔다. 입시 때문에 고민이 오래 가지 않았다.그 이후에는 성공해서 엄마를 호강시켜 드려야겠다는 생각으로 살았다. 뭔가 거대 담론에 매여있었고, 이타적이고 희생적인 삶을 살아야 빛나는 삶이라고 생각했다. 지금은 십대 시절에 비장했던 내가 불쌍하고 안타깝다. 관심을 나에게로 돌리고 대화를 시작하면서부터 많이 변화하였다. 살게 되는 이유는 공부하고 싶은 것, 읽고 싶은 책, 그리고 앞으로 만나게 될 그 무수한 많은 인연들 덕분에 아직도 두근거리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인간이 존엄하다는 말 같은 것은 믿지 않는다.

5. 공부는 왜 하니?

더 자유로워졌다. 공부를하면서 점점 더 가볍게 살 수 있다는 확신이 들어서 즐겁다. 공부를 많이 해서 더 무거워지는 사람, 닫히고 속박되는 사람은 책을 덮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정보와 책, 공부할 것은 무한대이다. 아는 척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저 밥 먹고 숨 쉬고 잠 자듯이 즐겁게 책 읽고 공부한다. 호기심.

6. 요즘 가장 마음 쓰고 있는 것은?

인디애니영화제 다락, 학교생활. 학교를 별로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에 작년에 많이 소홀했다. 올해는 좋은 수업을 많이 듣게 되어서 학교에 애정이 생겼다. 캠퍼스에아는 사람들의 얼굴도 늘었다. 무책임한 것과 자유로운 것은 다르니까, 가끔은 지나치게 게으른 나를 달래느라 요플레도 사주고 맥주도 사주면서 좀더 성실하기 위해 노력한다. 다락은 기획하고 있는 영화제인데 거의 매일마다 일이 터져서 요즘 잔뜩 긴장했다. 오픈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과연 될까, 그 많은 감독님들을 실망시키는 것은 아닐까, 처음에 우리가 뭘 하려고 했던 것인지 잊어버린 것은 아닌가 등등 수많은 질문을 내게 던지고 있다. 다락에서 사람에 대해 배우고 소통하기를 연습하고 아이디어를 기획해서 실제로 만들어내는 놀이가 얼마나 즐거운것인지, 오랫동안 입시 때문에 잊고 있던 그 즐거움을 다시 살릴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는 요즘 학교 과제가 밀려서 통 글을 쓰지 못해 의식적으로 조금씩이나마 쓰려고 노력하는데, 한창 학교의 책만 읽을 때에는 자꾸만 단어가 각박하고 빈곤해져서 얼마 전에는 견디다 못해 자다가 벌떡 일어나 소설책을 펴 들었다. 내 언어가 사라지는 것은 언제고 제일 끔찍한 일이다.

7. 요즘 고민하고 있는 것은?

재정적인 문제. 즐길수 있을 정도의 가난과 더불어 살아야지. 생업으로는 무엇을 하게 될까.일과 놀이는 분리하고 싶지 않다. 과연 내가 지금 읽고 있는 책들과 공부하고 있는 것들을 제대로 소화하고 있는 것인가. 무엇을 할까, 무엇을 할까. 영화제 이후에는, 학기 이후에는 무엇을 할까.

8. 무슨 음식 좋아하냐?

애호박, 계란국, 미역국, 호박죽, K가만들어주는 햄버거, 오이 약고추장에 찍어 먹기.

9. 어떤 삶을 살고 싶어? 그러기 위해서 뭘 하고 있지?

미루지 않는 삶. 존재하는삶. 열려 있는 삶. 그러기 위해서 기존의 분할된 시간 개념이 아니라 상대적 시간 개념을 갖고 살려고 노력한다. 내가 만족스럽게 하루를 꾸미기 위해서, 왜 지금 여기에 있어야 하며 나는 무엇을 하고 싶은지 원점으로 돌아가서 묻는 작업을 한다. 그리고 이야기꾼이 되고 싶다. 예전에 인문학은 던져놓기만 하고 사회과학은대안을 제시하는 학문이라고만 생각했었는데, 막상 대학에 들어오고 보니 그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았다. 모두가 나름대로 자신의 의견을 내놓고 있지만 사회과학은 통계에 좀더 기대있는 것이다. 나는 통계를 믿지 않는다. 그러나 인문학과 이야기에 기댄다. 내가 느끼기에 좋고 뿌듯하여 다른 사람과 함께 나누고 싶은 최소한의 정직을 지키고 싶기 때문에, 그와 관련된 일을 하며 살 것이다. 지금은 계속해서 다른 사람과 소통하는 것을 연습하고 있다.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다양한 철학자들의 책을 접하고 이야기하면서. 어차피 완벽하게 전할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다. 최소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구성을 통해 이미지, 스타일을 제시하는 정도가 아닐까 한다. 그래서 세련되게 이야기하는 법을 연습하기 위해서 다른 사람의 이야기 듣는 연습을 하고 있다. 생각하고 고민하고 물어본다. 낯을 가리는 편이라서고생을 많이 했는데, 낯 가리기에는 좋은 사람들이 너무 많다는 사실을 영화제 기획을 하면서 깨닫고는 살갑고 세련된 방법으로 다가가는 연습도 많이 하여서 친구 사귀는 일에 있어 더 능동적으로 변하게 된 것 같다.

10. 갖고 싶은 것 있니?

예전에는 그런 것 하나도 없었는데 요즘 생겼다. 물질적인 것은 아이팟 나노와 좋은 헤드폰이 갖고 싶다. 빨간 댄스슈즈를 신고 라틴댄스도 추고 싶다.

일단, 나임 여성학 수업 시간 적은 것.
페미니즘은 B를 요구하는 것이 아니다. 자기 주장 할 거면 이 수업은 왜 듣나? 그냥 주장하면 되지.
문제는 B가 있다는 것도 알고, 자기 안에서 A와 B를 화해시키고 곱씹어보는 거지.
내 안에 있는 B를 보고 A를 보고 다 보면 좋겠다는 것이지롱.
그래 결국은 다 자기화잖아.

눈을 반짝반짝 빛내면서 ‘그래, 맞아. 난 억압되고 있었어!’라는 식으로 계몽되지 말 것.
그게 뭐냐!!! 그럼 안 배운 것만 못 하다.

뭐 이런 생각이 계속 머릿속에서 돌고 있고 카페에서 해멍, 위드와 수다 한 판.

페미니즘에 관한 질문에 대하여 거의 나흘 가까이 계속 고민하고 있음.
해멍이 나에게 ‘가만 있는 사람에게 페미니즘이 무슨 권리로 넌 행복하지 않다는 생각을 하게 하는 거냐? 정말 행복한 상태에 있는 것일 수도 있지 않냐?’ 물음. 일단 나는 페미니즘에 의해서 계몽된 타입이 아니라 어찌어찌 공감하고 재미있는 글들을 읽다보니 자꾸만 페미니즘에 가 닿은 거지. 그래서 이 질문을 이해하지 못 했고, 여성학 선생님에게 질문하지 못 함.

멍에게 다시 물었다. 뭘 물은 거냐?

그걸 모르고 행복하게 잘 살고 있는 사람들, 정말 그 상황에서 자기 상황에서 페미니즘이고 뭐고 알 필요도 없이 행복하게 사는 사람들을 불편하게 할 권리가 있는 건가? 페미니즘이 무슨 권리로?

문제는, 그렇지 않은 이데올로기가 있나? 사방에서 자기가 옳다고 외쳐대는데.
결국은 관점의 문제가 아닌가? 관점 없이 대화할 수 있나? 그건 불가능한데.

근데 왜 페미니즘만 그렇게 반감을 사고 부각되는 걸까? 여기로 질문을 돌려볼래. 이게 맞는 질문 같다.

과도기라서 극단적인 경우로 어필하기 때문인가?
페미니즘, 이란 단어 자체가 반감을 사고 있다는 것은 결국 그 단어가 낡았다는 거 아닌가?
그렇게 따지면 단어를 바꿔봤자 똑같이 낡은 거 아닌가?
그 단어가 반감을 사는 맥락을 이해하는 것이 더 중요하지 않나. 뭐라고 부르든 결국 반감을 사면 마찬가지.
단어 바꿔봤자다. 그건 낡은 것이 아니다. 이미 누군가에게 반감을 주거나 호감을 사고 있지 않은가?

그게 반감을 사는 맥락은 아마도 페미니스트랍시고 활동하는 사람 중에서 female macho의 어법을
구사하는 이들 때문이지 않을까? 그리고 말이 되지 않는 말을 구사하기도 하니까. 근데 그들이 제일 활발해!!! 맨날 싸워.

그러니까 페미니스트 집단이 있다면, 다른 사람들이 그들 말을 들어주지 않았을 때 아쉬운 건 그쪽이라고.
그러면 그것을 위해서 언어를 좀 더 다듬는 작업을 해야 하지 않아? 선동하지 말고.
‘오히려’ 여자가 더 이해를 못한다는 식으로 말하는 것은 어폐다. 같은 맥락에서 ‘여성해방주의’도 말도 안 되는 번역. 네가 뭔데 날 해방시켜? 나에 대해서 무엇을 전제하고 있는 거냐? 네가 전제를 하든 말든 일단 말하고 싶으면 그런 식으로 말을 하면 안 되지 않나?

그런 식은 어떤 식?

너는 잘못 살고 있다. 깨어나라. 이런 식의 또 다른 우월주의.
우리 같은 사람들이 ‘많다.’ 우리는 다수다. 그러니 인정하라. 이것은 스스로를 소외시키는 말.
다수와 소수. 도대체 수준이 얼마나 천박하길래 백만 인 정도 서명을 트럭으로 갖다 대야 이슈가 되는 건가?
나 혼자, 단 한 명이 말을 해도 들어줄 수 있어야 하지 않나? 그런 식으로 숫자에 목매게 되면 결국 무관심과 냉소만 사게 된다. 나는 한 명이지만, 내가 이렇게 느낀다, 나는 이게 정말 불편하고 싫다, 가만 살고 싶은데 자꾸 이렇게 해야한다는 말들이 들어온다, 그게 왜 그런 것인지 모르겠다. 이렇게 일상어로 푸는 게 좋지. 그리고 그게 꼭 페미니즘의 맥락에서 읽히냐? 아니란 말이다. 어쨌든 그냥 말을 하면 되는 거고, 굳이 페미니즘을 들이대지 않아도 된단 말이다. 게다가 페미니즘을 들이댔을 때 더 많은 담론들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을 거라는 나의 생각은 바뀜. 반감을 갖고 있는 사람들에게 페미니즘이란 단어 자체는 콘크리트 벽 쌓는 거나 마찬가지. ‘그건 네가 하는 말이지, 현실은 다르다.’ 그렇지만 인정하기 싫어도 둘 다 현실이란 말이지.

페미니즘 용어의 어폐.
백 년 전에 feminine의 어원에서 페미니즘이란 단어를 쓰게 된 것은 좋다, 그래 그게 통했겠다.
여성의 시각에서 소수자 시각을 발견할 수 있을 테니까.
그런데 이미 여자들이 많아지지 않았나? 그걸 여성주의나 여성해방주의라고 말 할 수 있나?
이게 ‘오히려’ 여자들이 이해 못 한다는 것이 말도 안 되는 이유.
이 쪽에서는 그런 여자들이 있을지 몰라도 저쪽에서는 알파 걸들이 초국적 권력 위에 하이힐을 신고 다닌단 말이지.
그리고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공감해달라고 끌어당기지 말란 말이다.
남자라는 이유만으로 죄책감 갖게 하지 말란 말이다.
그래서 나는 일다 인터뷰에서 여성만 다루는 것이 싫다. 그러면 딱 보기 싫은 사람은 안 보거든.

이렇게 낡은 것을 이야기할 수는 있겠다. 대자보 붙이고 열라 글씨를 써봤자 내 눈에 들어오는 건
그래서 어쩌라고? 뿐이잖아. 그러니까 영화제도 기획하고 다양하게 접근할 수 있는 여지를 여는 것 아닐까?
요즘 사회적 기업과 대안적 기업을 구분하는데, 그것은 어불성설. 기업은 어쨌든 기본이 이윤창출.
그게 아니라면 시민단체나 NGO 같은 것이겠지, 새로 용어를 만드는 것은 뭐지?
기획력이 있는 사람들은 기업에서 사회공헌 프로젝트도 하고 영화제도 하고 축제도 열고 전시도 하고
그런 식으로 다양하게 접근한단 말이지. 그런데 낡은 방식으로 접근하는 사람들은 여전히 선언문을 쓰고 있고.
뭔가 하고 싶다는 것은 알겠으나 이미 보기 싫으면 안 보면 그만인 세상인데. 어필해야 하잖아.
기업이고 시민단체고 그런 구분보다는 결국 기획력 있는 사람들은 자본과 함께 위에 있다.
머리 좋은 사람들은 기업으로 간다. 왜? 돈이 있으니까. 그리고 더 잘 할 수 있으니까.

해석의 문제.
뭐야 난 안 그래, 저건 또 뭐냐, 저런 마초랑은 안 논다, 이것은 일차원.
분명 그 모습이 내 안에 있단 말이지.
분명 맥락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사람은 구성되잖아.
그러니까 그 모습을 네 안에서 발견하라고. 그런 식으로 접근을 해야지.
누구에게 죄책감을 주고 누구를 탓하고 그러지 말자니까. 탓하기 전에 자기부터.
함께 비난하기 전에 성찰부터.

결국은 다 잘 살자고 하는 짓 아니겠어요?
싸우는 게 목적이 아니란 말이지.

라고 생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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