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TICE  |  말많은마리 070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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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멍은 아버지, 시험이 싫어요. 라고 말하는데 나는 ‘아,’ 다음에 누구를 부를지 생각을 해보니 할 말이 없다. 오늘 잔뜩 들고 다닌 가족 사진 속에는 분명 가족이 있는데, 왜 내가 부를 사람이 한 명도 없는 것일까? 엄마는 오늘도 들어오지 않았다. 아빠는 살아있나? … 문득 내가 너무 가족에게 신경을 안 쓰는 것이 아닌가 죄책감이 든다. 그렇지만 가족을 만들 힘도, 의욕도 없다. 난 내 몸 하나 챙기기도 힘든데 … 핑계 같지만 말이다. 사실 이유는 하나다. 애정이 없다, 혹은 애정을 발견하지 않거나 잊고 있다. 원래 내게 ‘집’이란 곳은 물질적으로 존재하긴 하지만, 실질적으로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데 오늘은 ‘집’이 갖고 싶어졌다.

오늘처럼 집에 오는 내내 무릎 관절이 삐그덕 거리고 볼이 발갛게 트도록 추운 날, 건조한 손에 아몬드 크림을 잔뜩 바르고 미끌거리는 손을 주머니에 쑤셔박고 걷다가 들어오면 나른하게 잠이 오는 집 말이다. 그리고 그 집에는 꼭 누군가 있으면 좋겠다. 아마 나이가 들면 이런 생각에서 결혼을 하는 것일까? 꼭 남편일 필요는 없다. 누구든 집에 있으면 좋겠다. 기왕이면 사람으로다가. 그리고 함께 따뜻한 우유를 데워 마시고 이불을 덮고 가만히 자는 것이다, 서로의 등을 쓸어주면서. 상상만 해도 달콤한데.

누군가 내 머릿속의 ‘집’에 사는 사람이 있으면 좋겠고, 실제로 그렇게 되어서 따뜻한 코코아를 같이 마신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그런 사람이 있을까? 어쨌든 사람은 혼자 살고, 각자의 인생이 있고, 서로를 배려해야 하기 위해 노력하고, 가난하면 살 수 없고, 일상은 무엇보다 근사하다고 생각하지만 한편으로는 한없이 초라하기 마련인데. 그래서 오늘은 백석의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생각이 간절하다. 아까는 한 장을 프린트 해서 편지 봉투에 곱게 접어 넣었다. 어제오늘처럼 눈이 푹푹 나리는 날이면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라고 말을 해도 괜찮을, 그런 때니까. 이래 놓고 '더러운 세상, 더러운 세상!' 하면서 머리를 쥐어뜯으며 레포트를 써야겠지만.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 백석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

나타샤를 사랑은 하고
눈은 푹푹 날리고
나는 혼자 쓸쓸히 앉어 燒酒를 마신다
燒酒를 마시면서 생각한다
나타샤와 나는
눈이 푹푹 쌓이는 밤 흰 당나귀를 타고
산골로 가자 출출이 우는 깊은 산골로 가 마가리에 살자

눈은 푹푹 나리고
나는 나타샤를 생각하고
나타샤가 아니 올 리 없다
언제 벌써 내 속에 고조곤히 와 이야기한다
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

눈은 푹푹 나리고
아름다운 나타샤는 나를 사랑하고
어데서 흰 당나귀도 오늘밤이 좋아서 응앙응앙 울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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