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TICE  |  말많은마리 070808
한국의 정체성 에 해당하는 글 : 1 개
2007/02/27 :: 독서 후 메모 (18)
탁석산 [한국의 정체성]

이 책, 말이 친절하며 지나치게 논의를 확대하지도 않고 딱 고만한 분량에 어울릴 만한 내용을 무리 없이 전개해 나가서 좋았다. 생각이 잔가지처럼 뻗어나갈라치면 재빨리 다른 질문을 던지면서 본론으로 돌아오도록 유도하는 대목이 몇 군데 있었다. 집에 돌아와서 이와 관련된 [한국의 주체성]을 주문하려다가 목차를 보고서는 조금 망설였다. 그리고 [한국의 정체성]리뷰가 궁금해서 클릭을 해봤다. ‘이안’이라는 사람이 탁석산이 제시하는 것들은 진부하며 대중성에 대해 그런 식으로 협소하게 사고하고 옹호하면 '다수의 폭력'에 대해서 뭐라 할 말이 없다는 글을 남겼다.

그렇지만 여기서 말하는 것은 대중 파시즘이 아니지 않은가? ‘한국’이라는 집단의 정체성과 집단의 심리가 분명 관련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 책에서 탁석산이 대중성을 들고 나오는 이유는 ‘한국’의 정체성을 파악하는데 있어서, ‘한국인’들과 별개인, 그 자체의 속성을 고찰하는 일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한국의 정체성을 판단하는 기준으로서 대중성은 하나의 양식을 말하는 것이며, 이러한 양식은 ‘한국인’들을 빼놓고 보더라도 법률, 언론, 교육, 건축, 예술 등 변화하는 인간의 가치체계에 반드시 흔적을 남긴다. 정체성은 동일성을 인정받을 때에 확보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대중성을 고찰하는 작업은 ‘한국’이라는 집단의 동일성을 확보하는 작업, 즉 정체성을 탐구하는 작업의 연장선 상에 있다.

그러나 ‘이안’이 말하는 '다수의 폭력'이 무엇을 뜻하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렇기 때문에 더 이상 말을 할 수가 없다. 대중의 파시즘이란 다수의 사람이 의도적으로 권력을 쥐고 폭력을 행사하는 경우를 말하는 것인가, 아니면 대중의 기호가 매스 미디어나 이데올로기에 큰 영향을 받는 때에 대중이 갖는 파시즘적 속성 역시 대중성으로 인정하는 경우를 말하는 것인가?

전자의 경우, 문화 부분을 고찰하는 데 대중성을 옹호한다고 하여서 그것이 곧장 대중의 파시즘과 다수의 횡포를 옹호한다는 뜻은 아니다. 어느 학급을 탐구한 결과 운동회 때만 되면 이 반이 옆반과 격렬한 경쟁에 돌입하여 몸싸움까지 난다는 사실을 알았다. 어떤 이들은 욕을 하기도 하고 누구는 도발적인 문구를 옆반 벽에 적어놓기도 한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이 학급에서 개별자인 학생들이 표현하는 공격성을 근거로 학급 집단에 공격적(폭력적)인 성격이 있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이것이 학급 아이들이 다른 학급 아이들과 맞장 뜬다는 사실을 옹호하겠다는 의미는 아니다. 도덕적 판단은 별개의 문제이다. 탁석산이 말하는 대중성의 고찰은 어디까지나 정체성을 판단하는 기준으로서 대중성을 하나의 요소로 간주한다는 것이지, 대중성 그 자체의 정당함을 논하자는 것이 아니다.

탁석산이 말하는 대중성 탐구는 주로 문화 예술 분야의 창작물을 분석해서 이뤄지기 때문에 아마 ‘이안’이 말하는 '다수의 폭력 옹호'란 의미상 후자를 말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다수의 폭력'이라는 용어만 보자면 다수의 주체성이 강조되어 전자를 뜻하는 것처럼 보인다. 대중의 파시즘은 그런 의미에서 다수의 폭력보다는 좀더 넓은 뜻의 단어라고 생각한다.) 그쪽에서 조금 더 자세하고 친절한 비판을 조목조목 해줬더라면 더 깊은 성찰이 가능했을 텐데, 그렇지 않아서 아쉽다.

애초에 이 책을 읽게 된 이유는 흔히 사람들이 “한국인은 ~하다.”라는 데에 나는 전혀 동의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축구에 대해서 하나도 모르고 매운 음식을 좋아하지 않는다. 일식 집에서 정식을 먹다가 “나는 일식이 좋아. 스끼다시도 그렇고 회도 그렇고 일식은 대부분 마구 섞어놓지 않아서 하나하나 깔끔한 맛을 느낄 수 있잖아.”라는 내 말에 엄마가 대답하셨다. “너는 참 이상한 애다, 찌개 같은 거 안 좋아하고. 너는 한국 사람 아니냐?” “한국 사람이라고 다 그래야 하는 건 아니지, 한국에 그런 음식이 흔할 뿐이지. 취향은 사람 수만큼 있는 거잖아.” 그래서 오래 전에 사두었던 이 책을 들었고,(이제 질문이 생겼으니 읽을 때가 되었군!) 시작 부분에서 합성의 오류와 분할의 오류를 통해 ‘한국’과 ‘한국인’을 뚜렷하게 구별하는 데에 상당한 비율의 페이지를 할애하는 저자에게 호감을 가졌다.

[한국의 정체성]에서 제시하는 정체성의 기준—고유성, 창의성—과 정체성 판단의 기준—현재성, 대중성, 주체성— 역시 새로운 것은 아니지만, 이러한 단어들이 왜 꾸준하게 제시되고 있는지 차근차근 짚어 보는 것에 이 책의 의의가 있다고 생각한다. 또한 이 책에서 제시되는 예들이 진부하다면 그것이 많은 사람들에게 일정 시간 동안 인정을 받음으로써 가장 간단하고 안전한 표본이 되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예들은 그 자체로서는 진부할지 모르겠지만, 잘 구성된 글의 일부분으로서 들어가게 될 경우, 전체적인 글의 콘텍스트가 물 흐르듯 흘러갈 수 있도록 이음새 역할을 해주며 다시 빛을 발하기 마련이다. 글 잘 쓴다.


+ 이하는 흔히 많은 글에서 대중성과 상업성을 혼용하는 경우를 봤기 때문에 인용해둔다.

대중성은 흔히 상업성과 동의어로 쓰인다. 대중성을 확보했다는 것은 상업적 성공을 거뒀다는 것과 동의어처럼 쓰이고 있다. 하지만 양자는 물론 다른 개념이다. 좋은 품질과 저렴한 가격이 상업성의 요체라면 공감대를 자극하는 것이 대중성의 요체이다. 대중성과 상업성을 동일시하는 것은 대중을 얕보는 데에서 비롯된다. 대중이 좋아하는 것을 깔봄으로써 자신의 지적 우월감을 과시하고자 하는 것이다.

[한국의 정체성], 탁석산, 2000, 책세상, p.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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