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TICE  |  말많은마리 070808
Cafe Page 에 해당하는 글 : 5 개
2007/01/23 :: 편하게 살기 (17)
2007/01/23 :: 두 다리는 건강하다 (19)
2006/12/24 :: Merry Christmas (21)


일요일 다락 회의.


월요일. 페이지에서 그림 그렸다. 드라마틱에서 무슨 인터뷰를 한답시고 공간을 빌렸다.
'주몽하고 같은 시간에 하는 드라마라 안 보시죠?'
사실 킴후도 나도 아무 것도 보지 않는데 당연히 주몽을 본다고 생각하는 모양.


허위허위 떠돌다가 신촌 칵테일바 마리아에 정착.

이날 낙서한 글들 중에서 하나 살짝. 친필로 보는 것이 좋은데 스캔하면 보는 것도 귀찮지요?;

지하철 역에 온통 죽지 않은 사람들이 걸어다닌다.

누군가 내게 걸어와서 무서웠다.
취한 걸음걸이에 얼굴이 벌겋고 시선은 초점을 잃었다. 무서웠다.
그는 내게 아무 짓도 하지 않았다.
성실한 행인처럼 길을 묻고 성실한 감사의 말을 남기고 갔다. 비틀어진 혀로.
나는 아무 것도 무서워할 필요는 없었는데 ...
그의 초라한 옷차림이, 꺼질 듯이 붉은 두 눈이 나를 겁먹게 했다.

덫에 걸리면 안 된다.

2007.2.12. 마리아에서.


모든 기억을 지우고 한 장면만 남겨야 한다면, 나는 내가 빛을 보던 날의 기억을 남기겠다. 젖살을 겨우 뗀 갓 스물 넷의 엄마에게서 나던 땀 냄새, 어쩔 줄을 몰라 담배만 뻑뻑 피워대던 비쩍 마른 스물 넷의 아빠, 지금보다는 흰머리가 덜 했을―꽤나 위엄 있는 시어머니였을 것 같은 우리 할머니, 손녀를 한복 바지에 앉히고 가지런한 이 모두를 하나도 빠짐 없이 드러내며 환히 웃으시는 할아버지, 아빠가 좋아하던 마당의 큰 개 한 마리.

두 번째 기억을 남기라면, 마당에서 털이 채 마르지 않은 새끼들을 감싸고 집안으로 숨어들던, 경계하는 눈빛의 우리집 개. 근처를 서성이던 나와 동생. 무심한 척, 추워 안으로 들어오라고 자꾸만 손으로 재촉하시던 할아버지의 큰 목소리. 유치원 선생님께 새끼 한 마리 드리겠다고 다짐했던 다음 날, 새끼는 한 마리도 남김 없이 모두 죽었다. 눈도 떠보지 못 하고, 햇볕에 보송보송하게 털 한 번 말려보지도 못 하고 모두들 쓸모 없이 죽어버렸다. 할아버지는 어미개를 팔았다.

오랜 기억 - 2007.2.12. 마리아에서.

때로는 아주 어렸을 적 기억이 너무나 강렬해서 나도 놀란다.


덧.
jose님, 오랜 기억에 대한 낙서를 하다가 최후의 기억이 궁금해진 거였어요.

옛날에 몇 사람이 상제上帝에게 하소연하여 편안히 살기를 꾀하려고 하였다.

그 중 한 사람이 "저는 벼슬을 호사스럽게 하여 정승 판서의 귀한 자리를 얻고 싶습니다"라고 하니 상제가 "좋다. 그렇게 해주마" 라고 허락하였다.
두번째 사람이 "부자가 되어 수만 금金의 재산을 소유하고 싶습니다"라고 하니 상제가 "좋다. 네게도 그렇게 해주마"라고 대답하였다.
세번째 사람은 "문장과 아름다운 시로 한 세상을 빛내고 싶습니다"라고 하자 상제는 한참 있다가 "조금 어렵지만 그래도 그렇게 해주마" 라고 답을 하였다.

드디어 마지막으로 한 사람이 나와 이렇게 말했다.
"글은 이름 석자 쓸 줄 알고 재산은 의식衣食을 갖추고 살 만합니다. 다른 소원은 없고 오로지 임원林園에서 교양을 갖추며 달리 세상에 구하는 것 없이 한 평생을 마치고
싶을 뿐입니다." 그러자 상제는 이맛살을 찌푸리면서 이렇게 답했다.
"이 혼탁한 세상에서 청복淸福을 누리는 것은 가당치도 않다. 너는 함부로 그런 것을 달라고 하지 말라. 그 다음 소원을 말하면 들어주겠다."


서유구, <산수간에 집을 짓고>, 안대회 엮어옮김, 돌베개, 2005



cafe page의 게시판에서 읽고 한참을 웃다가 올려요.
내일 (1월 24일 수요일) 저녁 여덟 시에 <천 개의 공감> 북포럼이 카페페이지에서 열립니다.
분명 즐거운 일들이 가득하겠죠? 저도 마실 나갈 예정인데, 많은 분들 오셔서 이야기나누면 좋겠어요.
앞으로 당분간은 무엇을 하면서 절박하게 하게 될 것 같다. 절박하게 살고 싶지는 않지만, 언제나 주머니에는 한 움큼의 여유를 갖고 다니면서 휘파람도 불고 하늘도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지만, 이 허무감은 떨칠 수가 없다. 내가 천재이자 영웅인 나의 세계를 포기하기가 힘들 뿐더러 동시에 내 인생이 아무 것도 아닌 것을 인정하는 데에서 오는 괴로움이다. 피할 수도 없다. 내 인생이 나에게만이라도 의미가 있기 위해서, 그 생이 생득적인 의미를 갖기 위해서는 어떠해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이 많다. 평생 고민을 하게 될 것이다.

그렇지만 한 달 여간 이렇게 고민하고 나서 하나 얻은 것이 있다면, 전보다 다른 것이 덜 무서워졌다는 사실이다. 까짓 무슨 짓을 해도 죽기도 어렵고 망하기도 어렵다. 인생은 언제나 잔인하게 내게 살아있을 것을 요구하고, 간사한 운명은 죽지 않을 만큼 나를 붙들어 놓는다. 무슨 짓을 해도 하면서 행복할 수 있는 것을 하다 보면, 굳이 이 밀려오는 허무감을 떨치려고 애쓰면서 나를 갉아먹지 않아도 조금은 삶을 견딜 수 있을 것 같다. 무엇이든, 내가 하면서 살아있다고 느낄 수 있는 일들을 좀 더 하고 싶다. 그리고 조금은 나를 풀어둘 생각이다. 지난 시간들 동안 너무나 심하게 몰아붙이면서 닥달하곤 했으니까. 2006년보다 2007년은 더 성실하고 여유롭게, 충분히 숨 쉬고 고민할 수 있도록.

요즘 글을 쓰는 게 나한테 그런 일이 아닐까? 잘 쓰고 못 쓰고를 떠나서 밤에 심연의 늪에서 건져올려진 듯이 축축한 두 손으로 아무 이야기든 그저 쳐내려가고 있다보면 어느새 웃게 된다. 그만큼 많이 울기도 하고. <천 개의 공감>에서 읽은 것들이 자꾸 떠오르는데, 과거의 기억을 글로 표현하면서 울거나 화가 나는 것은 그 때 그런 감정들을 충분히 건강하게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맞는 말인 듯 공감하고 있다. 가끔 나는 이십 년 밖에 살지 않은 내 인생에서 오 년이나 지난 일들을 갖고 쓰거나 읽으면서 목소리가 흔들리고 금세 붉은 눈물이 차오르는 것에 당황한다. 막상 나는 그 시기에 겨우 한 달에 한두 번 정도를 화장실에 쭈그려앉아 훌쩍였을 뿐인데. 내 안의 화해하지 못한 부분들이 앙금처럼 남아있다는 것은 그런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평소에 나는 주변 사람들에게 '어렸을 적 동화' '지금 이루고 싶은 꿈' '안다는 것' '어른에 대한 정의' 등등 궁금한 것에 대해 물어보곤 한다. 한 번은 이런 질문을 한 적이 있다.

"죄책감을 느낄 때는 어떻게 해?"

언니가 말했다.
"그럼 ... 글을 쓰지. 밤이 새고 날이 트도록, 아주 길고 긴 글을 써. 정말 끝도 없지 쓰지."

그게 언니의 생존방식이었던 것 같다. 그래서 청소녀기의 언니는 언제나 산뜻하고 건강했다. 항상 에너지가 끝도 없이 넘쳤다. 그리고 그 시기의 언니는 지금까지도 내게 말을 건다. 그렇지만 그 때로 돌아가면 언니를 꼭 안아주고 싶다.

오늘은 카페페이지의 리모델링 덕분에 하루 종일 몸을 움직이면서 페인트칠을 하고 찬바람을 맞으며 걸어다니고 책을 나르고 하다보니 하루가 저물어가는 시점에 그렇게 즐거울 수가 없었다. 초콜릿색으로 벽을 칠하는데 정말 사방의 벽에서 초콜릿이 줄줄 흘러내리고 있는 것 같아서 괜스레 마음이 따뜻했다. 사다리 위에서 흔들려가면서 두 다리에 내 몸을 받치고 페인트칠을 하는 순간에는 마음이 편안했다. 내가 매우 정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나는 평생 흔들리면서도 두 다리로 몸을 지탱하고 서서 무언가를 할 수 밖에 없으니까. 얼굴이든 손이든 잔뜩 더럽히면서 물렁이는 실리콘도 느끼고 까칠한 나뭇결도 만지면서 벽면을 채워나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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