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쓰려고 노력하는 일지가 하나 있다. 일지의 성격이 애매하긴 하지만 그 안에서 사적인 내용이 빠진 부분은 잡기 카테고리에 올려볼까. 일종의 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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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르니예의 산문집에서 아일랜드 사람들은 일주일 내내 금욕적인 생활을 하다가 주말에 곤드레만드레 취하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는데, 프랑스인들은 언제나 조금은 엷게 취한 듯이 생활한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이어지는 사랑과 관련한 생각. 사랑의 감정을 억누르다가 격정적으로 타오르고 또 다시 싸늘하게 식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항상 사랑을 하며 행복감에 적절히 취해 사는 사람이 있다. 뭐, 다양한 사람이 있는 거니까 판단하고 싶지는 않지만 나는 전자에 속하는 것 같고 점점 후자로 변해 가고 있는 듯하다. 일에 대한 것도 그랬으면 좋겠다. 일은 할수록 늘어나고 신나고, 공부도 할수록 늘어나고 신나는데 안 하겠다고 팔짱 끼고 물러나 있으면 아무 것도 내 영역을 침범하는 일 따위는 하지 않는다. 다만 내 자신이 그 안에서 침잠할 뿐이다. 기복이 심한 것은 내가 자기 콘트롤을 못 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수면욕과 식욕에 있어서 불규칙하고 무절제한 생활을 하다 보니, 이것 자체가 매우 명확하고 정당한 법칙이 되어버려서 건강하고 규칙적인 생활은 어느 날 문득 참을 수가 없는 것이다. 나이가 들면 좀 나아질는지, 하루키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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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는 아이디어. 화학공식으로 표현하기. 마녀가 솥단지에 개구리 뒷다리와 파리 눈깔을 넣고 국자를 휘저으며 노래하는 장면을 상상하면 된다. 화학공식이 아니라 조리법으로, 먹을 것으로만 표현한다면? 하루키의 공식은 와인 + 박하 + 계피. 식욕과 에로티시즘 사이. 화가들이 그리던 풍만한 몸매의 여성은 식욕에 대한 간접적인 표현과 더불어 맛과 에로티시즘이 함께 나타난 산물. 둥근 어깨를 과일 같은 어깨라고 표현하는 것이나 앵두 같은 입술, 등의 비유에 주목. 탐스러운 음식, 탐하다, 탐닉하다 표현 사이. 맛 소설 3부작과 영화 '초콜릿.' 식욕과 같이 본능적인 부분, 혹은 자연에서 빌려오는 비유들은 강한 향기를 지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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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트완 블롱뎅: “나는 나 자신의 문턱에서 사는 데 길이 들었다. 왜냐하면 안으로 들어가 보면 너무 어둡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