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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단행동으로서의 예술
Howard s. Becker
예술이라는 것은 많은 수의 사람들이 협동으로 만들어낸 행동의 산물이라고 볼 수 있다. 즉, 이중 몇몇 사람들은 통상적으로 예술가로 간주되며 이외의 다른 사람들은 이들의 활동을 돕는 조력자로 간주되고 있다. 이때 조력자에 대한 예술가의 의존 정도가 예술가의 예술적 가치 실현 범위를 규정하게 된다. 이들 간의 협동 작업은 관례 (convention)라는 예술상의 약속 사항을 통해 합의점을 찾게 된다. 여기서 언급된 관례라는 것은 예술적 생산을 보다 용이하게도 하지만, 이와 동시에 예술적 혁신 (renovation)을 방해하기도 한다. 하지만, 예술가가 필요한 자원을 충당할 수 있는 대안적 수단을 발견했을 때 이러한 혁신은 가능해진다. 관례를 통한 각 행위자의 협동으로 만들어진 이런 아트 월드 (Art World)는 사회 조직의 사회학적 분석을 위한 함축적 가치를 가지고 있다.
사회학의 특정분야에서는 예술을 사회적인 것으로 보고 있다. 이런 입장은 문화적 생산품과 지식이라는 것이 그 기질 상 사회적 기반을 두고 있다고 보는 보다 일반적인 입장에 대한 하나의 구체적인 예라고 볼 수 있다. 지금까지 사회적 맥락과 아트 월드간의 관계를 설명하기 위해 다양한 시도가 있어왔는데, 우선 특정 사회의 문화적 강조점과 다양한 예술적 형태와의 상관관계를 밝히려는 노력에서부터 특정 예술 작품의 생산 과정상의 주위 조건을 고찰하려는 노력에 이르기까지 인문 사회학자들은 이 분야의 연구를 위해 많은 기여를 해왔다. (Albrecht, Barnett and Griff, 1970의 연구가 대표적인 예임)
하지만, 많은 수의 사회학적 연구들이 집단적 행동으로 조직과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는 구성원 즉, 사람에 대한 언급 없이 조직과 시스템을 논하고 있다. 예술을 사회적 산물로 간주하고 있는 연구에서도 대부분이 이들의 집단행동에 대한 고려 없이 상관관계와 일관성을 논하고 있으며, 사회적 구조를 만들어내는 이들의 행동에 대한 논의 없이 사회적 구조를 논하고 있다. 본 연구자는 지금까지 검토한 예술관련 문헌 (Blumer, 1966과 Strauss et al., 1964)과 아트월드에 대한 개인적 경험을 비추어 볼 때, 예술은 집단적 행동의 한 형태라는 개념화를 취하게 되었다.
이와 같은 개념화에 이르는데 있어 저자가 위에서 비판한 기존의 연구 내용을 참고로 하였으며, 본 연구에서 언급된 어떠한 예나 주지도 새로운 것이 아님을 밝혀 둔다. 하지만, 기존 연구에서는 본 연구에서 주목하고 있는 집단적 행동과의 연관성을 염두하고 있지 않다고 본 연구자는 보고 있다. 이들이 사용한 예는 이론의 근거로서 활용되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인간 삶과 예술이라는 것에 대한 이론이 반드시 고려해야할 일종의 자료로써만 활용되고 있다. 예술 분야에 집단행동이라는 개념을 적용함으로써 우리는 일반적 사회 조직에 대한 보다 폭넓은 이해를 가지게 되는데, 이 부분은 결론에서 보두 구체적으로 다루도록 하겠다. 본 연구에서 언급된 예들은 제시된 이론을 뒷받침하는데 반드시 필요한 증거로써 활용된다.
협동과 협동적 연결
모든 예술 활동의 측면에서 볼 때, 예술 작품을 위해 수행 되어야할 모든 활동들은 이것이 완성되었을 때 가시화된다. 예를 들어 심포니 오케스트라가 콘서트를 열기 위해서는 우선 악기가 발명 되어야하고, 생산되어야 하며, 유지 관리되어야 한다. 또한 기보법이 고안되어, 이를 통해 작곡이 이루어져야 하며, 사람들은 어떻게 악보를 보고 악기를 연주할 수 있는지를 배워야만 한다. 리허설을 위한 장소와 시간도 구비되어야 하며, 콘서트를 위한 광고, 티켓 판매 등도 결부되게 된다. 이와 함께 음악을 이해하고 공연에 대한 반응을 보일 수 있는 청중도 필요하다. 다른 예술 활동들도 이와 유사한 과정을 필요로 한다. 공연을 위한 도구나 전시 재료 등에 있어 약간의 차이는 있겠지만, 시각 예술이나 문학예술 또한 이에 대해 예외일 수는 없다. 일반적으로 말해, 그 과정상 필요한 행동으로는 예술 작품에 대한 아이디어를 납득시키고, 필요한 유형적 예술품을 만들어내고, 이를 표현하기 위한 통상적 언어를 고안해 내야하며, 통상적 언어를 이해하고 경험할 수 있는 예술적 개인과 청중에 대한 훈련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런 모든 과정상에서 특정한 공연이나 예술 활동에서 필요한 요소들을 적절히 배합할 수 있는 능력도 필요하게 된다.
극단적인 예로 한 사람이 이 모든 작업을 수행한다고 상상해 보자. 즉, 어느 누구의 도움이나 지원 없이 한사람이 이 모든 것을 만들어 내고, 고안해 내서 공연하고 그 결과물을 창조해 내서 새로운 것을 경험한다. 사실, 이런 상상의 현실화는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우리가 알고 있는 모든 종류의 예술이라는 것은 정밀한 협력의 네트워크를 수반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여기서 분업이 나타나게 된다. 통상적으로 많은 수의 사람이 예술 활동에 참여하게 되고, 이러한 참여 없이는 그 어떤 공연과 예술품도 생산될 수가 없다. 그러므로 예술에 대한 사회학적 분석은 노동의 분업을 보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다양한 역할들이 이를 수행하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분배되어 나가는 것일까?
그 어떤 예술 활동도 다른 예술 분야와 비교해 그들의 분업이 더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주장할 수 없다. 우선, 음악 공연과 음악 작곡 간의 관계를 생각해 보자. 교향악과 실내악 연주에서 보면, 일반적으로 두 가지 활동이 개별적으로 나타나게 된다. 다시 말해, 작곡가들이 공연을 하고, 연주자들이 작곡을 하는 경우가 일반적인 현상이지만, 우리는 이들 간의 관계가 반드시 필요한 것이라고 인식하지 않는다. 단지 경우에 따라 혼자서도 수행할 수 있는 두 가지 개별적 역할로써만 간주하게 된다. 한편, 째즈의 경우에서 보면, 작곡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표준화된 곡조는 단지 청중들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즉흥 연주에 필요한 틀을 제공하는 정도의 의미만을 가지게 된다. 또한 현대 대중 팝의 경우를 보면, 가수나 연주자가 자신의 음악을 직접 작곡하는 것을 이상적으로 간주한다. 만약 이들이 다른 사람의 음악을 연주한다면, 대중들은 이들에게 “copy band,"라는 다소 폄하적인 칭호를 사용하기 일수다 (Bennett, 1972) 이와 마찬가지로, 개인 프린트기만을 고집하는 사진작가가 있는 반면, 그렇지 않는 사진작가도 있고, 자신의 시를 독자들이 읽기 쉽도록 프린터기가 교정해 줄 것이라고 믿고, 자신의 필체에 대해서는 신경을 쓰지 않는 서양의 문인들과는 달리, 동양의 문인들은 서예라는 것을 통해 필체를 자신의 작품에 중요한 부분으로 간주하여 활용하고 있다. 예술 작업에 있어, 그 어떤 것도 보다 자연스러운 분업이라고 할 수 없다. 오히려 이런 분업은 상황에 따른 합의된 규정화의 결과라고 볼 수 있다. 일단, 이런 합의된 규정화가 이루어지면, 아트 월드의 참가자들은 이것이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인식하고 이를 바꾸려는 시도를 비자연적이거나, 비도덕적이며, 현명하지 못한 처사라고 생각하게 된다.
아트월드의 참가자들은 감각이나 특별한 재능을 요구하는 예술생산의 작업이 예술 작품을 더욱 예술적으로 만든다고 생각한다. 기획자의 사업 수완과 같이 이외에 수반되는 활동들은 재능과 감각을 요하는 활동에 비해 보다 일반적이고 예술적 냄새가 나지 않으며 예술적 성공에 미치는 영향이 낮은, 그 가치가 미비한 분야로 인식되게 된다. 이런 감각이나 특별한 재능을 수행하는 사람을 예술가 (artist) 라고 하고, 그 밖의 다른 사람들을 조력자 (Support Personnel)라고 한다. 이러한 명예로운 예술가의 타이틀을 누구에게 부여하는지 그리고, 이런 지위를 부여받을 수 있는 자가 선택되는 매커니즘에 따라서 아트월드의 성격은 달라지게 된다. 한 극단적인 예로, 길드와 학계 (Pevsner, 1940)에서는 장기간의 실습경험을 요구하는데, 경험이 없는 자는 예술 활동에 참여 할 수 없도록 규정한고 있다. 하지만, 이와 같은 선택권이 예술을 구매하는 일반 대중에게 주어지는 경우도 있을 수 있으며, 예술적, 비예술적 이라는 활동의 지위가 서로 바뀔 수도 있다. Kealy (1974)는 만약 녹음 기술자가 예술가가 나타낼 수 있는 표현의 가능성을 증진시키는 새로운 기술을 개발했다면, 이때 이 기술자는 예술가로 간주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기술이 일반화되고 다른 기술자들에 의해서 대체될 수 있는 음향효과라며, 이 기술자는 예술가로써의 지위를 잃게 된다.
그렇다면 개인이 자신이 예술가이며, 그와 같은 지위를 가지고 있음을 주장할 수 있는 예술 활동의 최저 수준은 어디까지일까? 예술의 마지막 결과물에서 작곡가가 실질적으로 기여한 기여도는 경우에 따라 너무나 다양하다. 19세기 르네상스 시대의 음악의 거장들은 작곡가의 악보를 수정보완하거나 즉흥 연주 등을 할 수 있었다. 이런 점에서 오늘날 작곡가들이 연주자가 기본적인 곡의 방향만을 감지할 수 있는 수준의 악보를 제공하는 것이 오늘날의 새로운 경향이라고만은 볼 수 없다. (작곡가들이 연주자가 곡을 수정하는 것에 대해 강력한 제약을 가하는 것이 보다 더 지배적인 경향이지만). John Cage와 Karlheinz Stockhausen (Worner, 1973)는 비록 곡에 대한 연주자의 재량권을 넓게 허용하고 있지만, 현대 음악 분야에 있어 이들은 작곡가로 인정받고 있다. 아트월드에서 규정된 예술이라는 분야를 예술가만이 담당하는 것은 아니다. 다시 말해, 건축가들이 자신이 디자인한 건물을 직접 짖는 일은 거의 없다. 조각가들은 세부 부분을 완성한 후 그 부분들을 조합하도록 업체에 부탁함으로서 작품을 완성한다. 또한, 예술 작품이라고 받아드려진 적이 없는 일련의 것들로 구성된 개념적 작품을 만들어낸 자에게 예술가의 칭호를 하사하는 것에 대해 사람들은 당황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Marcel Duchamp는 최근 상업적 목적으로 생산된 눈 치우는 삽에 자신이 서명하고 이를 예술적인 것이라 주장하였고, 모나리자의 그림에 콧수염을 붙여 이것이 예술작품의 가치를 가지고 있다고 주장함으로써 많은 사람들을 흥분케 한 적이 있다. 그는 또 Leonardo와 눈삽의 디자이너와 제조업자가 그의 예술 활동의 조력자라고 주장하였다. 이런 그의 주장은 예술이 마치 다른 사람들의 만들어 놓은 것을 조합하는 것이 전부인 콜라주 기법과 유사하다고 보는 매우 기괴한 발상인 듯 보인다. 위의 예를 통해 보여주고자 하는 요지는 무엇이 예술 활동에서 예술적으로 반드시 필요한 것으로 간주되고, 무엇이 예술가라는 지위를 부여하는 행위인가를 판단하는 것은 단순히 합의적 규정화의 문제라는 것이다.
예술가가 담당하지 않는 부분은 반드시 다른 사람에 의해 수행되어야만 한다. 그러므로 예술가의 작업은 최종 예술 작품을 만들어 내는 활동을 담당하는 사람들의 협동 네트워크의 중심적 위치를 차지하게 된다. 예술가가 조력자 중 누구를 의지하던 간에, 협동망은 존재한다. 이들과 예술가들은 예술 작업을 어떻게 마무리할 것인가에 대한 아이디어를 함께 공유하게 된다. 이 경우, 예술 활동에 참여한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부분을 각각 담당할 때 의견 수렴에 있어 일치점에 도달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그 결과 분업이 나타나게 된다. 즉 기능적으로 특수한 역할을 수행하는 특정 그룹은 나타날 수 없게 된다. 이런 현상은 지방에서 일반적으로 행해지는 square dance와 같이 일반 시민들이 가볍게 행하는 예술 활동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예를 들어, 19세기를 살던 고위층 미국인들도 르네상스 시대 사람들이 마드리갈 공연에 직접 참여하였듯이 Stephen Foster의 parlor song을 직접 즐길 수 있다. 다시 말해 예술 활동의 협동은 언제든지, 손쉽게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전문 예술가들이 예술 생산품에 반드시 필요한 예술 활동을 수행할 때, 예술 활동의 각 참가자들은 예술의 그것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특수화된 미학적, 재정적 의도를 가지며 경력 상의 이해관계를 생각하게 된다. 예를 들어, 오케스트라 연주자는 오케스트라 연주 그 자체보다는 자신의 연주가 그 공연에서 어떻게 들리는가 만은 염두 하는 것으로 악명이 높다. 그 이유는 고용주에게 자신의 연주에 대한 인상을 심어주는 것이 그들 자신의 성공의 당락을 결정하기 때문이다. (Faulkner, 1973a. 1973b) 이런 이유에서 연주자 자신의 이해와 작곡가의 이해가 상충될 경우, 연주자는 자신의 연주가 졸작으로 들린다는 이유로 공연에서의 연주를 거부하기도 한다.
물론 조력자와 예술가 사이에서도 미학적 충돌이 일어나기도 한다. 이것은 내가 알고 있는 조각가의 경험담이다. 그 친구가 석판술 인쇄공과 함께 일한 적이 있다. 석판 기술에 대해 아는 것이 거의 없는 그 친구는 인쇄공들이 석판 작업을 대신 해주는 것에 대해서 매우 기쁘게 생각했다. 이런 분업 작업은 비교적 일상적인 것이고, 고난위도의 특수 프린트 작업을 가능하게 한다. 그 친구가 인쇄공의 일을 보다 단순화하기 위해 넓은 면적에 한 가지 색깔만 인쇄하는 방식의 작품을 디자인하였다. 하지만, 이런 그의 배려는 오히려 그의 일을 어렵게 만들었다. 왜냐하면 인쇄공들이 돌 위에 잉크를 롤링 할 경우, 넓은 면적을 모두 칠해지기 위해서는 한번 이상의 롤링이 필요한데, 이 경우 롤링의 마크가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자신의 작업에 대해 자부심이 유난히 강했던 이들은 나의 친구에게 디자인한 작품을 인쇄할 수는 있지만, 롤링 마크가 남을 수 있기 때문에 매우 어려운 작업이라고 말했다. 롤링 마크에 대해서 아는 것이 없던 그 친구는 그럼 롤링 마크를 내 작품의 하나의 디자인으로 하면 안 되겠냐고 제의하였다. 그러나 그 인쇄공들은 인쇄 작품에 롤링 마크가 남는 것이 자신들이 한 작업의 수준이 떨어진다는 증거가 되기 때문에 절대 그렇게 할 수 없으며, 롤링 마크가 있는 그 어떤 작품도 자신들의 작업장 밖으로 나가서는 안 된다며 그 친구의 제의를 거절하였다. 다시 말해, 내 친구의 예술적 호기심은 장인 인쇄공들 자신만의 기준에 적합하지 않기 때문에 실현될 수 없었다. 위의 이런 이야기는 어떻게 특수화된 조력자들이 자신들만의 기준과 이해관계를 나타낼 수 있는가에 대한 적절한 예라고 볼 수 있다.
내 친구는 결국 그 자신이 석판술에 대해 아는 것이 없었기 때문에 인쇄공의 결정을 수용해야만 했고, 이는 예술가들이 조력자와의 협동 작업에서 직면하게 되는 여러 가지 선택의 기로 중에 한 예라고 볼 수 있다. 구체적으로 보면, 그 친구는 기존의 조력자 그룹이 원하는 방식으로 예술 작품을 만들 수도 있고, 자신의 방식을 고수할 수도 있고, 아니면, 자신의 방식대로 해 줄 수 있는 조력자를 기를 수도 있고, 아니면, 자신 스스로가 그 일을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어떤 방식도 기존의 표준 방식보다는 시간적으로나 금전적으로 더 많은 비용을 치뤄야만 한다. 결국 기존의 이런 협력 망에 예술가가 의지하고 이들과 함께 작업을 할 경우 이는 다시 예술가가 창출하는 예술 작품의 제약요건으로 작동하게 된다.
이와 유사한 경우는 예술의 어느 분야에서든 쉽게 발견할 수 있다. e.e. cummings는 그가 첫 번째 시집을 출판할 때 인쇄공들이 그가 제시한 괴상한 레이아웃대로 출판하기를 꺼려했다. (Norman, 1958) 영화 제작이 있어서는 이와 유사한 문제가 훨씬 다각적으로 발생하게 된다. 즉 배우는 자신이 부각되는 방향으로 영화가 진행되기 바라고, 시나리오 작가는 자신이 사용한 어휘가 바뀌지 않기를 원하며, 카메라 감독은 자신이 익숙하지 않는 방식의 기법을 사용하려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예술가들은 종종 기존의 장비로 연출할 수 없는 작업을 연출하려 하는데, 예를 들어, 박물관에 전시할 수 없을 정도의 무겁고 매우 큰 구조물을 조각하길 원하는 조각가도 있고, 기존의 조직이나 연주자보다 더 많은 수의 그것을 필요로 하는 곡을 작곡하는 작곡가도 있고, 청중의 기호에는 너무나 긴 극본을 쓰는 극작가도 있다. 이와 같이 예술가들의 예술 작품이 기존의 제도적 수용력을 초과하게 될 경우, 이들의 작품은 상영되지 못하고, 전시될 수도 없다. 이런 이유에서는 대부분의 예술가들이 크지 않고 무겁지 않는 조각품을 조각하고, 기존의 연주자의 수에 적절한 곡을 작곡하며, 적정 수준의 길이의 극본을 쓰게 되는 것이다. 이용가능한 자원에 자신의 예술적 개념을 적합 시키기 위해 예술가들이 아트월드에서 형성된 협동 작업으로 나타난 제약요건들을 그대로 수용하게 된다. 즉, 필요한 작업을 타자에게 의지해야하는 경우에 직면하게 되면, 예술가들은 이런 제약 요건을 그대로 수용하든지, 아니면, 다른 방식으로 하기 위해 부가적으로 시간과 에너지를 투자해야 하는 부담을 감수해야 한다.
예술 활동이 현실화되기 위해서 예술가는 반드시 이런 협동 작업을 수반해야한다고 말하는 것이 협동작업 없이는 예술작업을 할 수 없다는 식으로 이해되어서는 안 된다. 다시 말해, 비록 예술 활동이 그 자체로만으로 형상화될 수는 없지만, 여러 가지 형태를 취할 수는 있으며, 그 형태중의 하나는 타인의 도움 없이도 형상화될 수 있는 타입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시인들이 출판업자나 인쇄공들의 지원을 필요로 하지만 (cummings의 예처럼), 이들의 도움 없이 시를 쓸 수 있는 시인들도 있다. 러시아의 시인들은 Emily Dickinson도 그랬듯이, 자신들의 작품을 개별적으로 복사한 타자 본을 통해 배포한다.(Johnson, 1955) 이 경우, 시인들은 출판업자의 검열 및 재출판과 같은 제약조건을 고려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자신들의 작품이 기존의 방식대로 배급되지 않게 된다. 즉, 시인들은 스스로 자신의 작품을 배급하거나, 아예 배급을 하지 않기도 한다. 하지만 이들은 여전히 시를 쓴다. 여기서 본 글의 요지가 예술가의 협동 작업은 반드시 필요하며 예술가가 비용을 치르면서라도 협동 작업을 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하고 있는 기능주의의 시각과는 명백히 차이가 있음을 밝혀 두고자 한다.
지금까지 논의된 문제들이 전시 공간, 인쇄, 기보법과 같은 예술 활동의 외부적인 문제에 주목하여 왔다. 협동과 제약요건의 관계는 예술적 창작활동과 구성의 모든 과정을 관통하고 있으며, 이런 경향은 예술적 관례 (conventions)의 기능과 본질을 살펴보면 더욱 명백해 진다.
관례 (Convention)
예술 작품을 생산한다는 것은 특수화된 개인들 간의 정밀한 협동방식을 필요로 한다. 그렇다면, 이들은 어떻게 자신들의 협동 작업에 대한 상호 합의에 도달하는 것일까? 물론 이들은 상황에 따라서 그때그때 다른 방식을 채택할 수 있다. 음악가들의 경우를 보면, 어떤 사우드를 음조로 사용할까, 어떤 악기를 사용하여 그 사운드를 만들어 낼 것인가, 어떻게 하면 이런 사운드가 음악적 언어를 만들어 내기 위해 융합될 수 있을까, 그리고, 이런 음악적 언어가 특정 방식으로 소집된 특정 크기의 청중들이 즐길 수 있고 기존의 악기 수와 배합되는 길이의 작품으로 창출될 수 있을까와 같은 문제를 논의하고 합의를 도출하게 된다. 하지만, 이런 일련의 질문들은 새로운 연출방식을 추구하는 예술가 그룹이 있을 경우에만 답변이 필요한 질문이다. 또한 위와 같은 질문의 답변에 새로운 어떤 것이 나타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예술 작품을 생산해 내기 위해 협동하는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새로운 것을 결정하지 않는다. 그 대신 거의 관습적으로 여겨지고 있는 이미 이전에 합의된 사항을 기초로 하고 있으며, 이런 합의는 예술 활동의 관례적 방식의 한 부분이 되는 것이다. 이런 예술적 관례는 비록 예술 활동의 성격에 따라 특정 관계가 수정되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이 기존의 아트월드에서 생산된 예술 작품에 대한 존중 속에서 결정되게 된다. 음악가가 자신의 음악에 사용될 음조를 기존의 온음계, 5음계, 반음계와 같은 일련의 방식에 적용할 것을 받아드릴 때, 관례는 사용될 예술에 재료 (materials)를 지정하는 역할을 하게 된다. 또한 관례는 특정한 아이디어나 경험을 표출하기 위해 사용되는 추상 작용을 지정해 준다. 미술가들은 3차원적인 환영을 전달하기 위해 원근법을 사용하고, 사진작가들은 색깔과 빛의 상호 작용을 전달하기 위해 회색, 흰색, 검정색을 사용하는데, 이 경우가 대표적인 예이다. 이 밖에도 관례는 재료와 추상작용이 합치되는 형태를 지정해 주는데, 이는 음악의 소나타 형식이라든지 시의 소네트 형식 등에서 찾아볼 수 있다. 결국, 관례는 예술 활동의 적절한 차원을, 음악과 드라마의 적절한 길이를, 그림과 조각의 적절한 크기와 형태를 제시해준다. 이와 함께, 관례는 예술가와 청중의 관계를 통제하면서 이들의 권리와 의무에 대해 구체적인 방식을 제시한다.
예술 역사가, 음악 연구가, 문학 비평가와 같은 인문 학자들은 예술가들이 청중의 감성적 반응을 불러일으키기에 적절한 예술 작품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점에서 예술적 관례라는 개념이 요긴하다고 주장한다. 그 이유는 음계와 같은 음조의 관례적 구조를 통해 작곡가는 다음에 어떤 음이 나올 것이라는 기대를 청중에게 심어주게 된다. 이때 작곡가의 작품이 이들의 기대에 미치지 못할 경우, 긴장이 나타나게 되고, 청중을 만족시켰을 때, 이완이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Meyer, 1956, 1973; cooper and Meyer, 1960). 즉, 예술가와 청중이 같은 경험과 지식을 관례를 통해 공유하기 때문에 예술작품은 정서적인 효과를 발생시킬 수 있다. Smith (1968)는 시인들이 어떻게 시의 형식에 내제되어 있는 관례적 방식을 교모하게 이용하는지 그리고, 시의 내용을 명쾌하게 하기 위해 어떤 시어를 사용하는지, 과거의 작품을 통해 자리 잡고 있는 기대치에 적절히 부합할 수 있는 만족스러운 결론을 이끌어내는지에 대한 연구를 발표한 바 있다. Gombrich (1960)는 또한 예술가들이 관객들이 마치 이들이 세상의 어떤 현실적인 부분을 보고 있는 것과 같은 환영을 시각적 관례가 어떻게 만들어내는지를 분석하였다. 이 모든 경우에서 보면 (무대 디자인, 춤, 영화와 같은 다른 경우에서도), 예술가와 청중이 작품에 대한 어떤 감성을 자아낼 때 사용되는 일련의 관례들로부터 예술적 경험은 가능하게 된다.
관례는 또 어떤 면에서 예술을 가능하게 하는 기능을 한다. 왜냐하면, 신속히 결정되고, 관례적 방식에 따라 계획이 즉시 진행되기 때문에, 예술가들은 실질적으로 자신의 예술 작업 활동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관례는 예술가와 이들의 조력자들이 보다 쉽고 효과적으로 이들의 활동을 협동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예를 들어, Ivins (1953)는 그림자 표현하기, 모형 만들기 및 기타 기법의 관례적 방식을 통해 여러 명의 그래픽 예술가들이 single plate (?)를 어떻게 협동해서 만들어내는지를 분석하였다. 이때 동일한 관례는 관객들이 그림자와 모형에 있어 근본적으로 무엇이 임의적이 것인가를 볼 수 있게 해준다. 이런 점에서 보면, 관례라는 개념은 인본주의자와 사회학자간의 접점을 제공해 준다. 즉, 관례는 사회학에서 말하는 규율, 규칙, 공유되는 이해, 관습 및 풍속과 같이 사회적으로 익숙한 상호 교환 가능한 개념이며, 사람들이 공유하며 인식하고 있는 이해와 아이디어를 의미하는 것이고, 이는 또한 사람들의 협동 작업에도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풍자극 코메디언들은 3인으로 구성된 극을 리허설 없이 무대에 올릴 수 있다 왜냐하면 극에 필요한 일련의 관례를 이들은 알고 있고, 그 중 하나를 정해서 각 파트를 할당하기만 하면 되기 때문이다. 댄스 음악가들의 경우 곡에 대해서 전혀 아는 것이 없어도 그 타이틀 (“Sunny Side of the Street," in C)만 보면 연주를 할 수 있고, 탬포를 주기 위해 4 비트를 세어서 등분할 수 있다. 즉, 타이틀은 멜로디와, 함께 가는 하모니, 관습적인 배경 상징도 알 수 있게 해준다. 특징과, 드라마틱한 구조의 관례에서부터 멜로디, 하모니, 탬포에 이르기까지 이들은 청중들이 적절히 반응하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을 정도로 익숙한 것이다.
비록 표준화되어 있다 하더라도, 관례가 전혀 바뀔 수 없고, 확고부동한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관례가 무엇을 어떻게 해야하는가에 대한 매우 세세한 곳까지 규정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아무리 그렇다 하여도 협상이나 관습적 해설을 통해 해결해야하는 부분은 반드시 있기 마련이다. 공연의 전통적 방식은 종종 책의 형태로 규정화 되어 있는데, 주로 공연자가 어떻게 악보를 해석하고, 공연할 드라마 극본을 어떻게 이해하는지를 말해 주고 있다. 예를 들어, 17세기 악보를 보면, 상대적으로 적은 양의 정보를 실고 있다. 하지만, 오늘날의 책은 기악 편성법, 음표의 비중, 즉흥 연주, 음악을 더 꾸미고 장식하는 방식 등을 설명하고 있다. 연주자는 이런 해석의 모든 관습적 스타일에 기초해서 음악을 이해하게 되고 자신들의 예술 활동을 조정하게 된다. (Dart, 1967) 이와 같은 상황은 시각 예술에도 나타나게 된다. 이탈리아 르네상스 종교 그림의 색과 상징, 그 내용은 관례적으로 주어진 것이다. 하지만, 이 밖의 부가되는 많은 수의 결정들이 예술가에게 맡겨져 있기 때문에, 엄격한 관례 하에서도 다른 형태의 예술 작품이 만들어질 수 있는 것이다. 관례적 방식을 따르는 것이 청중들이 작품에 대해 보다 많은 감흥과 이해를 가질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관례에 대한 관습적 해설 자체가 관례가 되어버린 경우에도 예술가들은 문제를 서로 다르게 동의하고 협상을 통해 변화를 가능하게 할 수 있다.
관례는 예술가에게 강한 제약 요인으로 작용한다. 왜냐하면 관례는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복잡한 상호 의존 시스템 하에서 나타나게 된다. 이런 까닭에 경미한 변화도 다른 관련 행위의 포괄적인 변화를 필요로 하게 된다. 관례 방식은 도구, 재료, 훈련, 이용 가능한 시설, 장소, 표시법등과 같은 문제를 수반하게 되는데, 이 모든 것은 하나가 변하게 되면, 함께 변화해야만 한다.
옥타브간의 음계가 기존의 12음계에서 42 음계로 바뀔 경우, 어떤 일이 벌어질까를 생각해 보자. 이런 변화는 Harry Partch (1949)에 의해 시도된 바 있다. 기존의 서양식 악기로는 이런 미세한 음을 쉽게 연구할 수 없고, 심지어 연주가 불가능한 경우도 있다. 이런 까닭에 기존의 악기들을 42음계를 연주하기 위해 개조하거나(Partch가 그랬듯이), 새로운 악기가 개발되어야만 한다. 이 경우, 악기가 새로 개발되었기 때문에 이 악기를 어떻게 연주해야하는지를 아는 사람이 한명도 없을 것이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사람들을 훈련해야 한다. 이와 함께, 기존의 서양식 음계가 42 음의 음악을 소화시키기에 부적절하기 때문에, 새로운 음계가 고안되어야 하고, 연주자는 고안된 악보를 읽을 수 있도록 훈련 받아야 한다. (12음계를 이용할 경우, 이런 일련의 과정들은 필요가 없게 된다) 결국, 기존의 방식으로 작곡된 음악을 연주하는 것이 비교적 적은 시간과 리허설을 통해 가능하게 되지만, 42 음계를 사용한 연주는 보다 많은 시간과, 노력, 자원을 필요로 하게 된다.
Partch는 자신의 이런 음악을 연주하는데 1년의 시간을 소모하였다. 우선, 가을에 Partch는 관심 있는 학생들을 모집하였고, 이들은 Partch가 고안한 악기를 그의 지시 하에서 제작하였다. 겨울에 학생들은 이 악기를 연주하는 방식을 배웠고, 그가 고안한 음계 보는 방식을 배었다. 봄이 되어서야 수차례의 리허설을 통해, 결국 연주를 무대에 올릴 수 있었다. 2시간의 연주를 위해 7-8개월의 시간을 소모한 것이다. 이런 장시간의 작업은 기존의 방식을 이용한 훈련 받은 관현악 음악가들이 8시에서 10시간의 리허설을 통해 무대에 올린 연주로 대체될 수도 있다. 이 두 연주 간의 소모되는 재원의 차이는 관례적 시스템 하에서 얼마만큼의 제약요건에 직면하게 되느냐의 문제와 직결된다.
사진술에서도 보면 어떤 사진이 잘 찍은 사진인가를 구체적으로 명시한 관례가 있는데, 그 내용은 예술로써의 사진이 미학적으로 어떻게 보여져야하는가라는 문제뿐만 아니라, 사진 관련 부품 제조업자들이 만들어 놓은 표준화된 도구나 용품들의 복잡하고 다양한 제약조건들과 잘 부합되는가라는 문제도 수반한다. 사용 가능한 렌즈의 종류와, 카메라, 셔터의 속도, 조리개, 필름, 프린팅 종이 이 모든 것들이 제약을 가하게 되고, 선택을 통해 이 모든 것이 조합되면서 수용 가능한 사진이라는 것을 만들어내게 된다. 물론 정교한 작업을 통해 공급업자가 제공할 수 있는 효과이상의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하지만, 왕년에 일반화된 사진기법이였다 하더라도 그 관련 용품이 더 이상 생산되지 않기 때문에 그 기법을 사용할 수 없게 된다. 예를 들어, 일반화된 인쇄용지 재료로 은염류를 사용하고 있으나, 1937년까지만 하더라도 백금염류를 사용했었다. (Newhall, 1964, p. 117) 물론 지금도 훨씬 부드러운 효과를 낼 수 있는 백금염류로 프리트 용지를 만들 수도 있다. 하지만, 사진작가 자신이 스스로 만들어야만 한다. 대부분의 사진작가들은 이런 제약 요건을 그대로 받아드리고, 쉽게 구입할 수 있는 은염류를 선호하면서 효과를 극대화시키고 있다. 다시 말해 이들은 표준화를 선호하고 대량 생산된 사진 재료들을 구매한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예가 세계 어디서나 구입 가능한 코닥의 Tri-X 필름이라고 볼 수 있다.
관례적 방식으로 인해 한계가 항상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만약 예술 행위에 더 많은 노력을 투자할 의향이 있고, 자신의 작품의 배급이 축소될 것을 감수할 수 있는 사람들이라면 타인과 다른 방식으로 예술 활동을 할 수 있다. 작곡가 Charles Ives의 일화가 그 대표적인 예이다. Charles Ives가 일반적인 연주자의 대열에 오르기 전에 다조성과 폴라리듬과 같은 특이한 연주법을 시도한 적이 있었다. 그의 작품 연주를 시도했던 한 뉴욕의 연주자는 그에게 이 작품의 연주는 불가능하다 말했는데, 왜냐하면 그들이 가지고 있는 악기는 그 곡을 연주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Ives는 결국 이들의 의견을 받아드리기는 했지만, 이런 형식의 곡을 계속해서 작곡했었다. 자서전에서 그는, 이런 작업을 하면서 매우 재미있는 부분을 발견했다고 전하고 있다. (Cowell and Cowell, 1954). 재미있는 점은 비록 힘든 작업이긴 했지만, 작업을 통해 그는 엄청난 해방감을 맞볼 수 있었다고 말한다. 만약 아무도 이 곡을 연주할 수 없다면, 연주자들이 연주할 수 있는 곳만을 쓸 필요가 더 이상 없어지고, 작곡가와 연주자의 협동 작업을 용이하게 하기 위해 취해진 관례의 규제에서 자유로울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그의 음악이 연주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작곡 작업을 반드시 마무리할 이유가 없다. Ives는 John Kirkpatrick의 선구자적인 업적인 Concord Sonata가 정확한 것이라고 인정하기를 꺼려하였다. 왜냐하면 정확한 것이라고 인정할 때 우리는 그것을 바꿀 수 없기 때문이다. 더 이상 기존의 관례를 통해 행해지는 재정적 지원을 고려해서 자신의 작품 활동에 제약을 가하지 않아도 되고, 결국 그는 세 개의 오케스트라를 위한 Fourth Symphony를 작곡하였다. (하지만, 관례에 대한 도전으로 나타나는 추가 비용은 시간이 갈수록 줄어들게 된다 ; Leonard Benstein이 1958년에 초연한 작품이 오늘날 수차례 연주되고 있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일반적으로 기존의 관례와 사회적 구조와 물질적 인공의 조건들을 부순다는 것은 그만큼의 어려움을 예술가에게 가져다주고, 그만큼 예술가의 작품은 많은 대중에게 찾아가기가 힘들어진다. 하지만, 관습으로부터 실질적으로 탈출할 수 있고, 기존의 관례와는 다른 대안적 선택을 할 수 있게 됨으로써 예술가의 자유는 그만큼 증가하게 된다. 만약 이것이 사실이라면, 우리는 예술 작품을 관례적 편의성과 성공, 비관례적 어려움과 이에 따른 일반 시민의 인식 부족이라는 갈래 길에서 예술가가 선택한 결과물이라고 이해해도 괜찮을 것이다. 이를 통해 우리는 예술가들이 처하게 되는 여러 가지 구조적, 상황적 조건과 경험을 감지하게 된다.
관례의 상호의존적인 시스템과 협동 작업의 구조는 매우 안정적이고 변하기 어려운 듯 보인다. 비록 장기간 동안 관례가 종속되는 경우가 있기도 하지만, 혁명적 변화와 개혁이 전혀 일어나지 않는다는 의미는 아니다.(Meyer, 1967) 관례적 예술 활동에 대한 기대치가 증가되고, 그 기대치를 이것이 만족시키지 못함에 따라 새로운 형태로의 변화가 천천히 조금씩 나타나게 된다. Meyer (1956)는 이런 일련의 과정을 현악기 연주자들이 비브라토 사용을 예로 분석하였다. 한때, 현악기 연주자들은 비바라토 기법을 사용하지 않았다. 그랬기 때문에 이 기법은 매우 특별한 것으로 여겨졌고 기존의 관례적 기법과는 동떨어진 것으로, 연주의 긴장감을 높이거나 감정적 반향을 불러 일이키는 목적으로만 사용되었다. 하지만, 청중의 감정적 반향을 갈구하는 연주자들이 늘어나면서 이전에는 사용하지 않았던 부분에까지 비브라토 기법을 사용하기 시작했는데, Bartok와 같은 작곡가들이 대표적인 예이다. Meyer는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설명하면서, 기존의 관례와 상반되는 것으로 여겨졌던 것이 다시 관례를 간주되는 과정이 매우 일반적인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이런 변화는 기존의 예술적 전통에 대한 점진적 개혁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정치적 과학적 혁명의 수준과 거의 유사한 보다 더 폭넓고, 파격적인 변화도 일어난다. (Kuhn, 1962) 이런 큰 변화는 기존의 예술적 관례에 대한 정면 공격을 수반하게 되는데, 우리는 이런 경우를 미술의 인상파와 입체파 화가들이 캔버스에 그림은 사물을 그대로 나타내는 것이라는 기존 미술의 시각적 언어를 어떻게 개편했는지를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다시 말해, 관례에 대한 도전은 단순히 특정한 아이템을 바꾸는 되서 끝나는 것이 아니다. 모든 관례는 미학적 가치관을 수반한다. 이런 가치관은 관례라고 여겨지는 것을 표준적인 것으로 만들 수 있고, 그 표준적인 것을 통해 예술적 아름다움과 효율성이 평가받게 된다. 예를 들어 고전적 틀에서 벗어난 연극은 단순히 기존의 것과 다른 것이라고만 여겨지는 것이 아니다. 전통적 틀이 극적 가치의 정교한 기준이라고 보는 사람들의 눈에는 매우 야만적이고, 추하며, 혐오적인 것으로 받아드려진다. 결국, 기존의 관례에 대한 공격은 이와 관련된 미학적 가치관에 대한 공격이라고도 볼 수 있다. 하지만 사람들은 자신의 미학적 가치관이 임의적이고 관례적인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은 모든 자연스럽고, 적절하며, 도덕적인 것이라고 주장한다. 더 나아가, 관례와 미학적 가치관에 대한 이런 공격은 도덕성에 대한 공격으로도 받아드려질 수 있다. 음악적, 극적, 시각적 관례의 파격적 변화를 신랄한 반감을 가지고 받아드리는 청중들 통해 미학적 가치관과 도덕적 믿음이 서로 결부되어 있음을 우리는 감지 할 수 있다. (Kubler, 1962)
특정 관례에 내제된 신성화된 미학적 가치관에 대한 공격은 결국에는 기존의 계층 구조에 대한 공격이기도 하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예술 활동의 관례적 방식은 기존의 협동적 네트워크 이용을 수반하게 된다. 이런 협동적 네트워크는 조직화된 아트월드로써 기존의 미학적 가치관에 준하는 관례를 능수능란하게 이용하는 자에게 유리한 시스템이다. 고전 발레의 전통적 기술과 관례를 통해 조직된 댄스라는 아트월드를 보자. 만약 이런 관례적 방식과 기술을 내가 습득했다면 나는 최고의 발레리나로써의 자격을 가출 수 있게 된다. 결국 최고의 안무가는 나를 위해 발레를 안무할 것이고, 최고의 작곡가는 나의 춤을 위해 작곡을 해주고, 공연을 위한 극장은 어려움 없이 서배 할 수 있게 된다. 결국 많은 경제적 수입을 얻게 되고, 청중들은 나를 사랑하고, 나는 유명인사가 되는 것이다. 하지만, 뛰어난 재능을 갖춘 새로운 인물이 등장하여 새로운 관례를 창출한다면 나는 나의 미적 가치관뿐만 아니라 댄스 분야의 나의 높은 지위도 함께 공격받게 된다. 이런 이유에서 물질적 불이익을 받는 사람들이 미학적 가치관의 공격이라는 형태로 격렬한 저항을 하게 된다.
예술가 이외에도 기존의 관례에 투자를 한 사람들은 새로운 관례가 나타나면 자신들이 투자한 것을 잃게 된다. 1평방마일의 목초지에 블도우저를 이용해 창출되는 대지예술을 생각해보자. 이런 예술품은 수집될 수도 없고 (비록 몇몇 골수 팬들은 수집해서 인증을 받거나, 자신의 소유임을 증명하기 위해 사진을 찍기도 하지만), 전시관에 진열될 수도 없다. (비록 수집가가 모은 유물들은 전시되기도 하지만). 만약 이런 대지 예술이 중요한 예술의 형태로 자리를 잡으면, 예술가의 경력과 예술 운동에 지대한 영향력을 미치던 미술관 전시 작품 수집을 담당하던 사람들은 전시 작품 선정에 있어 자신의 결정권을 잃게 된다. 왜냐하면 대지 예술은 전시관 전시가 필요 없기 때문이다. 같은 이유로 수집가, 큐레이터, 갤러리스, 판매업자, 예술가들과 같은 전시관 작품 전시와 관련된 인력들은 어떤 형태든 손해를 감수해야만 한다. 아트월드를 구성하는 모든 협력 네트워크가 무엇이 가치 있는 것인가에 대한 각 구성 맴버들의 합의를 통해 가치를 창출한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Levine, 1972; Christopherson, 1974) 새로운 인물이 새로운 월드를 창출하여 기존의 것과 다른 관례적 행위를 가치 있는 것이라고 규정할 때, 이전의 월드에 종사하던 사람들은 새로운 곳에서 자신들의 입지를 유지할 수 없게 된다.
모든 아트월드는 표준화된 지원 방식을 개발하고, 예술가는 이런 수단을 통해 자신의 예술 활동을 수행하며, 협동 작업으로 인해 나타난 여러 제약요건을 감안한 미학적 가치관이 등장하게 되는 것이다. Rosemblum (1973)은 사진작가의 미학적 가치관이 경제적 채널에 따라 다르다고 지적하고 있는데, 경제적 체널을 통해 이들의 작품이 관습적 스타일과 같은 방식으로 배급된다고 보고 있다. Lyon (1974)은 준 전문 극단을 대상은 미학적 결정과 자원이 동원 방식의 상호의존성을 분석하였다. 그 분석에서 한 가지 사례가 의존성의 본질을 잘 보여 주고 있다. 여기서 저자는 극단은 자신의 업무를 수행하기 위해 자원 봉사자의 도움에 많이 의지하고 있으며, 자원 봉사자들은 주로 비예술적인 일을 하고 있지만, 이들은 언젠가는 공연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가지고 있다. 이런 까닭에 극장주는 이런 기대를 가지고 있는 자원 봉사자에게 많은 정신적 빚을 지게 되고, 결국 이들에게 보상하기 위해 공연에서 많은 수의 사람을 케스팅해야 하는 제약을 받고 있다는 것이다.
결론
만약 우리가 특정한 예술 활동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면, 우리는 예술 작품을 만들어내기 위해 협동하는 사람들 간의 네트워크를 사회 조직으로써 간주하는 것이 유용하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우리는 종종 같은 사람들이 반복적으로, 심지어 정기적으로 비슷한 작품을 생산하기 위해 비슷한 방법으로 협동하는 것을 보게 된다. 이들은 작품의 소비와 생산 활동에 참여하는 자들 간에 형성된 관례라는 것을 통해 협동 작업을 조직하게 된다. 같은 사람이 모든 경우에서 함께 일을 할 수 없게 되더라도, 교체자는 관례라는 것에 익숙하고 그것에 통달해 있기 때문에 협동 작업을 무리 없이 다시 진행시킬 수 있게 된다. 관례는 집단행동을 보다 단순화시켜주고 시간과, 에너지 기타다른 자원의 사용을 감해준다. 하지만, 여기서 비관례적인 것이 절대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은 아니다. 단지 많은 비용이 들고 변화시키기 어렵다는 것이다. 우리가 종종 봐왔듯이, 변화에 필요한 자원을 모을 수 있는 방법을 누군가 찾아낸다면 변화는 일어나게 된다. 즉, 관례적 협동의 방식과 집단행동이 반드시 순환적으로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지속적으로 새로운 행동의 방식을 만들어내고 이를 현실화시키는데 필요한 자원을 발견하기 때문이다.
이런 일련의 과정은 예술이 사회적이라는 단정 이상의 것, 그리고 사회적 조직과 예술적 스타일과 주제 간의 일치점을 보여주는 것 이상의 것이다. 즉 이런 접근은 예술이 함께 행동하는 사람들의 네트워크를 창출한다는 의미에서 사회적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이와 함께 서로 다른 집단행동의 방식이 조정되는 기본적 틀들이 연구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시하는 것이다. 이 경우, 우리는 예술의 집단행동과 다른 형태의 집단행동들 간의 유사점을 이론적 비교연구를 위해 활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집단행동 연구 분야의 기존의 연구 질문들을 다시 제시하게 된다.
예술이 집단행동이라는 논의는 사회조직 분석의 일반적인 접근을 제시하는 것이다. 우리는 어떤 이벤트에 초점을 맞추고 (여기서 이벤트란 예술작품의 생산을 특별한 케이스도 포함시키는 개념이다) 사람들 간의 네트워크가 형성될 것이라고 기대한다. 하지만, 이 경우 네트워크의 규모는 훨씬 방대하다. 이런 집단행동을 통해 이 이벤트는 현실화되게 되는 것이다. 결국 우리는 이들의 협동적 행위가 반복해서 나타나는 네트워크가 형성되거나 일반화될 것이라고 기대하게 되고 관례가 보다 구체적으로 등장하게 되면서 각 구성원들은 자신의 역할을 이 관례를 통해 조정해 나가게 된다.
이렇게 순환적으로 나타나는 네트워크와 행동을 칭하는 은유적 표현의 방식으로 사회구조, 사회조직이라는 용어를 사용할 것이라고 우리는 기대할 수 있다. 하지만, 이 경우, 이것이 은유적 의미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망각해서는 안 되며, 단순히 연구를 통해 발견된 은유적인 것을 사실로 간주해서도 안 된다. 사회학자들이 사회구조나 사회 시스템을 논할 때에 집단적 행동은 규칙적으로 또는 종종 나타나는 것이고 이 과정에 수반된 사람들은 보다 다양한 이벤트를 창출하기 위해 함께 행동한다는 은유적 접근을 감안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여기서 실증적 자료를 통해 우리가 예술이라는 학문을 연구하듯이 집단적 행동의 방식이 위의 이런 설명을 뒷받침할 수 있을 만큼 순환적이고 일상적인지를 말이 아닌 실질적 조사를 통해 반드시 규명해야 한다. 어떤 형태의 집단행동은 자주 일어날 수 있고, 어떤 것은 때때로 일어나고, 또 어떤 것은 매우 드물게 나타날 수도 있다. 이와 마찬가지로, 어떤 예술 작품의 생산을 위해 함께 네트워크에 참가하는 사람들이 다른 활동에서는 함께 일하지 않을 수도 있다. 이런 문제들도 반드시 직접적인 조사를 통해 연구되어야 할 것이다.
집단적 행동과 이들이 만들어낸 것들은 사회학적 조사의 기본 단위이다. 사회조직은 같은 사람들이 순환적 방법으로 서로 다른 다양한 어떤 것을 함께 만들어내는 특수한 케이스들로 구성된다. 사회조직은 (혹은 이와 유사한 것들은) 개념이아니라, 실증적인 발견물이다. 우리가 가족, 친구 집단과 같이 소수의 사람들의 집단적 행동을 말하든, 전문 집단, 계층 시스템과 같은 많은 수의 사람의 집단적 행동을 말하든지 간에, 우리는 항상 이벤트를 생산해 내기 위해 실질적으로 누가 함께 협력하는가에 대해 질문을 던져야 한다. 예술 활동에 대한 이론에서부터 일반화를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모든 종류의 사회적 조직에 대한 연구를 해야 한다. 이는 특정 이벤트를 생산하는 협력적 네트워크에 대한 문제, 협력 네트워크간의 중복되는 부분, 참가자들인 자신들의 행동을 조정하기 위해 사용하는 관례의 방법, 그리고, 어떻게 기존의 관례들이 협력적 행동을 가능하게 하고, 제약을 가하는지, 변화를 가능하게 하기 위해 자원은 어느 정도 확보되어야 하는지 등의 문제를 함께 고려해야 한다. (이런 나의 주장은 일반적인 것이 아니지만, 그렇다고 새로운 것도 아니다. 아래의 글에서 이와 같은 입장을 발견할 수 있다. Simmel [1898], Park [1950, 1952, 1955 passim], Blumer [1966], Hughes [1971, esp. pp 5-13과 52-6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