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TICE  |  말많은마리 070808
"와일드 플라워의 상냥해지기 프로젝트"


"들꽃에게는 들꽃 나름의 철학이 있다."

현대철학 강의실에서 교수님이 그 특유의 고갯짓을 갸우뚱, 손짓은 단호하게 '그렇지 않겠어요?'라신다. 요즘 한참 꽂혀 있는 문장이다. 지인 중 한 명이 전에 내게 같은 뜻으로 "니체를 읽지 않아도 니체보다 더 니체답게 사는 사람이 있지"라는 말을 던졌는데, 아무래도 니체보다는 들꽃이 더 향긋하지 않은가. 좋은 말이다. 멋져버려!

들꽃을 영어로 하면 와일드 플라워란다. 와일드 플라워라니! 누가 우리 들꽃을 와일드하게 만든 것이란 말인가, 흑. 영 마음에 들지 않는다. 본격적으로 와일드 해볼까? 비슷하지만 조금 다른, 잡초를 뜻하는 'weeds'는 어떨까?

잡초 雜草 Weeds: 경작지, 도로 그 밖의 빈터에서 자라며 생활에 큰 도움이 되지 못 하는 풀로, 여기에는 목본식물까지도 포함시키는데, 작물의 생장을 방해하고 병균과 벌레의 서식처 또는 번식처가 되고 작물의 종자에 섞일 때는 작품의 품질을 저하시킨다.

모을 잡, 자를 써서 아무렇게나 헝클어져 있는 머리채를 연상시키는 잡초는 태생적으로 바이러스 같아 도대체가 도움도 안 되며 괜히 열심히 살다가는 여기저기에 나쁜 종자나 뿌리고 다니는 팔불출처럼 묘사되어 있다. 들꽃은 야인의 뉘앙스,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을 것 같은 자유로움과 작고 애처로운 몸짓의 무언가를 연상하게 해서 나그네들에게 애용되는 반면에, 그 누구도 '너는 마치 잡초같구나!'라는 말을 칭찬으로 받아들이지는 않는다. '우리 강아지, 아주 그냥 잡초같이 잘 생겼구나!' 할머니, 곤란합니다

정민구 감독이 만든 애니메이션 에서조차 잡초는 할머니에게도 귀염받지 못할 것 같은 대접을 받는다. 잡초는 태생적인 이유만으로 리스트에서 제외되기 십상이다. 아무리 고개를 기웃거려봤자 이리 치이고 저리 치여서 혼자 걷게 된다. 선인장은 가시라도 있고 꽃이라도 피우지, 너는 도대체 뭘 하는 거냐? 라는 핀잔에 생의 모든 우울함을 짊어진 듯이 터벅터벅 걷는다.

누군가에게 사랑받을 수 있다는 기대에서 땅 위로 나온 우리 잡초는 여기저기서 상처받지만, 탓할 것은 웅덩이에 비친 자신의 모습밖에 없다. 내 머리에 솟아있는 것은 무성한 풀떼기 뿐이구나. 늦잠을 자다가 한참 늦게 일어난 꽃은 꽃이라는 이유만으로도 그런 우울함을 지고 살지 않아도 된다. 꽃은 잡초가 절망하고 간 그 물웅덩이에 발을 담근 것만으로도 화사한 꽃을 몇 송이 더 피울 수 있다. 잡초는 평생 가도 피우지 못 할 그 꽃을, 그렇게 쉽게 말이다.

그렇지만 꽃을 피우면 벌들이 떼지어 몰려와 그를 괴롭히기 시작한다. 동시에 억울하게 떠밀려 절벽으로 떨어진 잡초는 민들레 꽃씨를 타고 날아오른다. 풍성한 민들레씨는 어떤 꽃보다 아름답게 날아오른다. 바람을 타고 멀리 노을이 번지는 곳까지 닿을 듯이, 민들레가 된 잡초는 살랑이는 바람을 타고 들꽃이 되었다.

절망의 걸음도 긍정의 씨앗이 될 희망은 있다. 반대로 뜻밖의 행운은 아무런 예고도 없이 우리를 내치기도 한다. 쑥스러운 말이지만, 이렇듯이 삶은 기이하고 유연하게 흘러가는 싯구처럼 망설임이 없다. 쥐구멍에 볕 뜰 날이 있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볕 안 뜨면 어쩔껴? ... 아무도 잡초에게 희망을 강요하지 않는다. 못 생기고 꽃 못 피워도 꿋꿋하게 한 번 살아보라고 비아냥거리지도 않는다. 다만 그저 그럴 뿐이다. 모두에게 나름대로의 리듬이 있고, 철학이 있다. 정말 그런 것이다.

는 헛된 희망을 강요하거나 기다리라고 말하지 않는다. 살짝 보여줄 뿐이다. 이런 센스에 감사!

"문학을 들려주다"


기 간 : 2007/03/01 ~ 2007/06/28
공연장소 : 이리카페 & cafe FACTORY (홍대입구)
문의전화 : 010-2895-7255
홈페이지 : 없음
주 최 : 프로젝트 이리
티켓가격 : 전석 12,000원
공연시간 : 매주 목요일, 저녁8시


문학을 들려주다에 다녀온 짧은 감상.
이번에 도마에 올라온 두 작품은 정미경, [발칸의 장미를 내게 주었네]와 은희경, [빈처].

오픈마루 안테나 사람들과 하루 이벤트로 이리카페에서 하는 '문학을 들려주다'에 다녀왔다.
(작품 안 읽고 갔다. 연극인데, 뭐! 그래도 텍스트가 느껴지는 게 정말 신기하더라 히히)

연극은 문학을 읽어주다, 라는 취지는 좋았지만 사실 이야기하자면 조금 아쉬웠던 부분이 여럿 있다. 조금 더 적극적으로 각색을 했더라면 좋았을 텐데. 취지가 ‘문학을 들려주다’라서 문학을 그대로 들려준 것이었나? 그렇지만 어차피 문학은 그대로 들을 수 없다. 이미 배우들의 입을 통해서 우리는 그들의 억양과, 그들의 표정으로 한 꺼풀 덧대진 대사들을 눈과 귀로 만나게 된다. 맥락으로 보았을 때 애틋하게 읊어야 했던 부분에서 감상적인 표정으로 연기를 하거나, 글자로 봤을 때 즐거울 것 같은 현학적인 말들을 그대로 늘어놓기만 하여 지적 허영심을 가진 캐릭터가 부각되기 보다는 입에서 웅얼웅얼 뭔가 말이 많구나, 라는 인상만 남았을 때 이미 텍스트는 재구성되어 있었다.

빈처의 남자주인공을 맡은 배우는 그런 면에서 또박또박한 발음을 유지하면서 목소리의 크기로 공간의 긴장감을 조성하고 침묵 역시 대사의 한 부분으로 잘 짜넣었다는 인상을 받았다. 그래서 간간이 웃음이 터져 나왔다. 책으로 읽을 때에는 아주 사소한 부분에서 웃을 수 있는데, 배우들이 몸으로 연기를 할 때에는 그런 부분에 있어서 그들이 이끌어내야 하는 부분이 있다고 느꼈다. 웃어도 될 부분에 웃음이 부족한 경우에는 긴장감이 돌고, 그 긴장감을 메우기 위해 배우는 대사를 중얼거리다가 침묵은 또 다시 어색해지고, 그렇게 되면 연극 도중에 나는 지치고, 후에는 찝찝하다. 제대로 논 것 같지 않기 때문에.

관객인터뷰에서는 온통 좋은 이야기, 문학의 대사를 연극으로 옮겨오는 것이나 연극무대가 아닌 카페를 적극적으로 이용한 점, 최소한의 소품으로 똑똑하게 극을 꾸민 것에 대해 이야기했지만 단점으로는 공간을 더 적극적으로 활용하지 못했다는 점을 꼽고 싶었다. (하기야 이런 기획만으로도 솔직히 말하면 기뻐서 일단 단점은 차치하고라도 마구 좋아해주고 싶은 마음이 샘솟는다. 그렇지만 말을 해보자면) 문학을 그대로 읽어주는 것은 좋지만 발칸의 남자배우와 같은 경우에는 대사 전달력이 정말 현저하게 떨어져서 중간쯤에나 가서야 옆에 있는 저 여자가 아내가 아니라 애인이란 것을 알 수 있었고, 아무리 거리가 가까워도 TV드라마 연기 보는 것 이상의 감흥을 받지 못했다. 연극은 렌즈를 통하는 것도 아니고 가까이 다가가서 들을 수도 없는데, 뭔가 잘 들리지 않는 독백을 듣기 위해 애를 쓰곤 했다.

장점 모두가 뒤집어보면 단점이 될 수 있다. 카페와 같이 좁은 공간에서 호흡을 같이 하는 것이 장점이었고, 또한 실제로도 연극과 같은 무대예술은 무대 아래에서 더욱 빛을 발하며 생기 있게 숨쉰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배우들의 시선이 앞쪽을 향하고 있어 문을 통해 등장할 때는 문 안쪽의 사람들은 전혀 공감할 수 없어 귀만 기울이고는 멀뚱멀뚱 내 쪽을 바라보았다. 내가 정면에 있었으므로. 꼭 문이 거기 있다고 해서 문을 그렇게 이용해야 하는 것은 아닌데, 그런 면에 있어서 공간에 대한 연구가 부족했다는 생각이 든다. 소품이 간단했던 것은 좋았으나 배우들의 차림은 맡은 배역과는 멀어 보여서 솔직히 말하자면 처음에 몰입할 때 조금 힘이 들었다. 그런 면에서는 좀 더 신경을 써서 캐릭터를 살려 놓고 소품을 간소화한 다음 마임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면 관객들에게 더 어필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연극 중간중간에 음악 연주하는 분에게 온통 정신이 팔려 눈으로 그 손가락 위를 더듬곤 했다. 손끝에서 기타와 키보드의 음들이 튕겨 나와 공간을 가득 메웠다. 멜로디언이 그렇게 애절할 수 있다니. (내게는 '멜로디언'이라는 악기 이름조차 너무나 오랜만이라 혀끝이 낯간지럽다. 그, 입으로 호스를 부는 건반악기 말이다.) 적절한 타이밍에 노래가 나왔을 때, 대사가 가사가 되었을 때, 모두가 한이불을 덮고 있는 기분이었다. 웅숭깊은 호수 아래 마련된 공간에 모여앉아 한이불 주변에 다들 무릎을 감추고는 발가락을 꼼지락거리며 누군가 해줄 옛이야기를 기다리는 그런 기분. 끝나고 모두가 인사할 때 뒤에서 박수만 치고 계시길래, 나가기 전에 ‘음악 정말 좋았어요.’라고 이야기했는데 가볍게 웃으며 ‘감사합니다.’라고 말한다. 그런데 정말 좋았어요, 정말 두근거렸다니까요. 연극보다 지나치게 도드라지지도 않았고 대사에 잔뜩 힘이 들어가지도 않았고, 설탕이 아주 잘 녹아 들어간 달달한 원두커피를 마신 기분이었습니다.

다음에 또 간다.

4월엔 내가 좋아하는 두 작품, 이힛. 개구리군을 어떻게 읽을지 궁금하다.
(혹시 거기 가시는 분은 인사하세요! 얼굴이 아주 동글동글하고 커트머리에 붉은 뿔테 안경을 쓴 게 접니다. 저보다 둥근 사람 없으니 쉽게 찾을 수 있을 거에요 아하하하.)



2006-2 매체와 예술
유봉근 교수님

미술관, 지금처럼 해서 되겠습니까?
<이것은 미술이 아니다>에 대한 소고


사회과학계열 조지은

1. 서론

“예술이 병들었을 때, 공식적인 예술과 제도는 미술관/박물관을 증축으로 그것을 치유하려 든다. 따라서 미술관/박물관이야말로 공식적인 예술과 제도의 배려이자 선물이다. 모두에게 은혜를 베풀고 욕망을 충족시켜야 한다는 이 배려의 메커니즘은, 다른 은밀한 목적을 위해 모두를 현혹시켜야 할 필요를 느끼는 집단의 전략이다. 그러므로 이 같은 배려의 급수가 높은 사회일수록 상징이 손상되고 논리가 파산되었으며, 부조리와 불안과 권태가 만연한 사회이다.” - 장 보드리야르

박물관/미술관1)은 꼭 있어야 하는 겁니까, 예? 라고 물으신다면 뭐라고 대답을 해야 할까? 스타니제프스키는 <이것은 미술이 아니다>에서 줄곧 우리가 현재 ‘미술’이라고 정의하는 것들이 모두 근대를 거쳐서 발명되었다고 주장한다. 저자는 근대 이전의 모든 미술품을 ‘미술이 아니다!’라고 외치면서 ‘박물관’은 특히나 근대에 예술이 자율적인 영역으로 분리되어 스스로의 의미를 형성하는 것과 더불어 계획된 제도라고 한다. 실제로 ‘박물관’은 서구의 근대화 프로젝트 중 하나로 학교, 지역, 행정시스템과 더불어서 잘 맞물려 돌아가게 짜여졌다.

박물관은 그 자체가 미술품에서 전후맥락을 다 제거하고 그것을 개별적으로 떼어내 미학적 차원에서 감상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보기에 있을 수 있는 제도이다. 르네상스 이후에 예술을 자율적이고 독자적인 영역으로 보는 사상과, 국가에서 대중에게 문화민주주의를 전파하겠다는 계몽주의적 사상에 힘입어 박물관은 탄생할 수 있었다. 스타니제프스키는 구조주의적으로 파고 들어가 현대미술사를 다시 쓰고 있지만, ‘지금까지의 미술을 전부 부정하자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의 시각이 근대적 주체의 관점에서 상당히 영향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자’는 수준에서 논의를 끝냄으로써 미술사 개론서 이상으로 논의를 진전시키지는 못 하고 있다. 그것이 본래 이 책의 목적인 동시에 한계가 되어버린 셈이다.

그 점에 착안하여 나는 여기서 미술관 제도에 대해 좀 더 면밀히 고찰해보려 한다. 미술관의 사회적, 미학적 의의에 대해서는 글의 한계 상 생략하고 미술관의 대안 모색에 대한 내용을 주로 한다. 소위 미술관의 ‘이념적 폐허화’에 관한 의견에 대하여 좀 더 자세히 말하고자 한다. 웅장하고 화려한 facade의 미술관을 소위 ‘무덤’이라고 부르는 의견들에 대해서 말이다. 그 이유는 절망적인 의견을 반복함으로써 허무주의를 추구하려는 것이 아니라, 제한된 길이에서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하기보다는 스타니제프스키가 말하고 있는 ‘포스트모던 미술관’의 허점을 짚고 넘어가는 것이 더 유익하리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미술관 제도와 관련하여 아래 둘 중 한 권만 읽어도 가닥을 잡으실 수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이것은 미술이 아니다>는 개론서나 보충용으로 적합하다고 생각합니다.)
- 심상용 저, <그림이 없는 미술관>, 2000:서울, 이룸
- 이인범 저, <미술관 제도 연구>, 1998:서울, 한국예술종합학교 한국예술연구소

이것은 미술이 아니다 - 미술에 대한 오래된 편견과 신화 뒤집기  메리 앤 스타니스제프스키 지음, 박이소 옮김
'미술과 미술이 아닌 것, 그리고 그 외의 사물들이 어떻게 의미와 가치를 갖게 되는가에 대한 연구'를 담았다. 우리가 갖고 있었던 미술에 대한 고정관념의 전복을 시도하는 책으로, 미국의 미술사가 메리 앤 스타니스제프스키가 집필했다. 1997년 출간된 를 새로 편집하고 칼라 도판을 추가한 개정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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