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TICE  |  말많은마리 070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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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9/01 :: 엄마의 트라우마 -3 (18)
2006/09/01 :: 엄마의 트라우마 -2 (16)
2006/08/31 :: 엄마의 트라우마 (16)
고양이라고 하면 질색을 하던 우리 어머니와 동거를 하는 동시에 어찌어찌하여 고양이를 키우고 있는 내 신세도 참 기구하지만, 그런 엄마한테 살살 볼을 부비대며 집 안의 권력자에게 기생하는 냥이를 보고 있는 심정도 착잡하다. 강아지만 도합 육 년 정도를 키운 터라, 동물들이 집 안에서 가족구성원 간의 권력관계를 파악하는 데에는 나보다 더 빠삭하다는 사실은 이미 눈치 채고 있던 터. '언니'라고 하기도 뭐하고, 그렇다고 '엄마'라고 불리기는 싫은 나와 만두와의 묘한 관계에는 그래서인지 항상 긴장감이 맴돈다. 밥을 주고 화장실을 치워주는 것은 나지만, 어디까지나 집의 권력자는 어머니이기 때문.

요 머리 좋은 녀석이, 고양이는 깔끔한 동물이라 똥오줌은 '지대로!' 가려준다는 우리의 편견을 깨려는 정치적 의도에서였는지, 아니면 깔끔한 고양이들 사이에서 적응하지 못하고 고생하던 소수자였는지, 어느 날부터인가 이 방 저 방 이불에 오줌을 찍찍 갈겨댔다. 처음에는 걱정이 되었다.

"어디 아픈 거 아냐?"
"음 ... 모래를 바꿔서 적응을 못 하는 건가?"
"어떡하지, 내가 잘못하다가 정수를 줬나? 냉수 줬어야 하는 건데 ..."

일주일 경과.

"쟤가 모래에 적응을 못 하나 보다."
"나 제주도 갔다 오면 괜찮아져 있겠지? 그렇겠지?"

플러스 이주일 경과.

"젠장 제주도 갔다 와서 내 침대에서 잠을 잔 적이 없어."
"저 자식(우리 이쁜 아가 냥이)이 엄마 방에만 안 싸!!!"

원래 잘 생긴 사람은 좋아도, 지가 잘 생긴 것을 아는 사람은 꼴불견이다. 만두는 우리 앞에서 그런 류의 인간에 대한 우리의 혐오감을 수면 위로 부활시켰다. 호랑이라도 되는 냥 어슬렁거리는 자태로 태연하게 침대 위에 오줌을 싸고서는 실실 비웃음을 흘리며, '이미 너흰 나에게 빠져들었어. 날 어디로 보내는 것 따위는 생각하지 마.'라는 식의 썩소. 그러고서는 부엌에서 일 하던 엄마 앞에만 가면 발랑 배를 뒤집고, 풍뎅이 뒤집어진 마냥 팔 다리를 휘젓는다. 거북이가 뒤집어져도 저것보다는 볼 만 하겠네. 내 동생과 나는 또 다시 두 배의 부담스러운 썩소로 만두를 지그시 쳐다보는 시간이 점점 길어졌다.

그러나 덕분에 엄마의 트라우마는 많이 치료된 듯 하다.
그리고 오늘 나는 만 원 짜리 목줄을 사왔다. -_- 한 번만 더 싸면 화장실 주변에서 밥을 먹는 고통을 줄 예정이다. 어차피 깔끔한 냥이로서의 자태는 포기한 것 같으니, 쓰읍.
그것은 매우 뜻밖의 일이었다. 그녀는 눈을 어슴푸레 뜨며 서서히 다가오다가, 뿌듯해하고 있는 그의 표정에 경멸에 찬 눈빛을 던졌다. 그리고는 한발짝씩 뒤로 물러서기 시작했다. 냥이는 당황했다. 그는 white pig라고 불리는 저 소녀가, 자신에게 여태껏 일용할 양식을 제공해주었던 그 소녀가, 그런 걸음으로 서서히 멀어져가다가 재빨리 뒤로 손을 넣는 것을 보고 직감했다. 잠시 정을 주었던 자신을 책망하며, 순간 그는 슬퍼졌다.

'역시 인간은 알 수 없는 동물이군.'

놀란 white pig 는 뒤에서 소리를 지르며 손에 집히는 부엌식기들, 대부분 금속으로 되어 있어서 굉장히 위험한 것들,을 손에 집히는 대로 던져 댔다. 아마도 그 때의 기억이 살집둥이에게는 꽤 상처가 된 일이었던 것 같다. 그리고나서 다시는 고양이에게 정을 주지 않겠다던 그 소녀는 자라서 학교에 들어가고, 낙엽이 뒹구는 가을날 싯구를 노트에 적기도 했으며, 사랑을 하고 결혼을 해서 축복 속에 첫딸을 낳았다. 아장아장 겨우 걷던 그 딸이 이제는 자신도 누군가를 돌볼 나이가 됬다는 생각에 다시 냥이를 들여온다고 그녀의 트라우마를 슬슬 건드리고 있었다.

생각해보면 눈 앞에 애교를 떨던 냥이 녀석이, 피를 철철 흘리는 쥐새끼를 입에 물고 있을 것을 상상하면, 나도 다시는 냥이를 못 키울 것 같기도 하다. 게다가 한 때는 숱한 햄스터들에게 정을 붙이며 살았던 나로서는, 재미로 쥐를 물어뜯는다고 하니 말이다. 물론 햄스터의 엄청난 번식력에 한 번 기가 죽고, 배고프다고 낳아놓은 새끼 도로 입으로 해치워 핏자국만 톱밥 위에 선명할 때의 그 기억은, 또 나의 트라우마가 되었지만.

어쨌든 "내가 키울게, 응?응?"이라며 턱시도 냥이를 데려온 딸아이에게서, 엄마는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는 소리에 절절 가슴이 아려오며, 트라우마는 주머니에 살짝 넣어 두는 센스를 발휘하셔야 했다. 무심코 TV를 보다가도 거실에서 이제는 거의 매일, 음흉하고 날렵한 동선의 생물체가 자신과 동거하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 채기라도 하면, 본능적으로 움찔거리는 그 불쌍한 어머니의 잔근육들을 나는 못 본 채 했다.

나는 고양이를 한 마리 키우고 있다. 이름이 만두다. 애초에는 못 키울 줄 알았다. 어머니가 고양이라고만 하면 토끼눈을 뜨시며, "고양이? 하이구 야, 차라리 개를 키워라."라고 절레절레 하시는 분이셨으니. 다름이 아니라 어머니의 이런, 고양이에 대한 무조건적인 혐오감은 그녀의 어렸을 적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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